PRESS (2006-12 월간 더 뮤직) 허원숙 서른 번째 피아노 이야기 \"울며, 애통하며...\"
2007-11-26 13: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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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The Music 2006-12월호


<Musician>


허원숙 

서른 번째 피아노 이야기

“울며, 애통하며...” Weinen, Kla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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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마무리 하는 마지막 달, 사람들은 흐르는 시간을 잠깐 붙잡아 추억할 일을 만들고 싶어 한다.

“생트 오를랑 (Saint Orlan)이라는 프랑스의 사진작가는 전시회를 할 때마다 자신의 얼굴 사진을 찍어서 전시회를 한다는데, 그것도 성형수술을 해서 달라진 자기의 모습을 찍어 전시회를 한답니다. 자신만의 투철한 목표를 가지고 서양 남자들의 눈으로 본 왜곡된 미에 대한 편견에 몸소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모나리자의 이마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 나오는 비너스의 뺨 등을 자기 얼굴에 만드는 것입니다. 아홉 차례나 뜯어 고친 얼굴도 모자라 이제는 이마에 임플란트를 집어넣어서 뿔이 돋아난 것처럼 성형을 한다는군요. 인종이 달라지고 문화가 달라지고 시대가 달라진다면, 악마처럼 기괴한 그 모습도 아름다운 표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답니다.”

피아니스트 허원숙 교수(호서대)의 밑 모를 이야기에 빠져들며 이번 독주회에 대한 그의 깊은 뜻을 알게 된다.

“처음엔 정신 나간 작가라고 생각을 했는데 문득 온 몸을 던져, 목숨을 던져 자신의 예술 세계를 작품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하는 것은 뭔가..., 뭐 그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도착지점은 ‘변주곡’이었습니다.”

올해를 마무리하는 그만의 시간 (연주회)에 대해서 그는 뭔가 다른, 뭔가 다를 수 있는 변주곡을 들려주자고,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이번 독주회라는 설명이다. 선택된 변주곡들은 멘델스존의 <진지한 변주곡> (엄격 변주곡이라고 잘못 설명되고 있다고 부연하며),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그리고 리스트의 <바흐의 모티브 ‘울며, 애통하며’에 의한 변주곡> 이렇게 4곡이다.

“멘델스존과 라흐마니노프, 리스트의 변주곡은 모두 ‘슬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멘델스존의 주제에 나타나는 하강하는 반음의 모티브는 ‘마음의 아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모티브는 라흐마니노프의 주제 시작에서부터 나타나고 있고 라흐마니노프 말년의 작품에 집요하게 나타나는 죽음의 테마이기도 하죠. 또한 리스트의 변주곡에서도 시종 일관 흐르고 있습니다. 리스트가 <울며 애통하며>의 곡을 작곡하게 된 동기는 26살 된 자신의 딸의 죽음 때문이었습니다. 곡 전체에 비장하게 흐르는 고통과 죽음과 슬픔의 선율들이 마지막에는 기도와도 같은 코랄을 거쳐 부활의 확신을 나타내는 상승 음계로 나타납니다. 마지막으로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슬픈 세 작품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끼워졌습니다. 너무 슬프면 힘이 빠지니까요.”

 


무대에서만 느끼는 기쁨

“예전에 마흔을 바라보면서는 남이 알아주건 말건 스스로 느끼는 뿌듯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쉰을 바라보는 시점이 되고 보니 뿌듯함보다는 ‘고작 요것뿐이었나’하는 불만족과 창피함이 있습니다. 물론 음악이 좋고 연주가 좋긴 하지만...

무대 뒤에서 진짜 연주를 할 때만 느끼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 기쁨은 누가 알아주어서도 아니고 나를 표현해서도 아니고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무대 올라가기 1분전에도 모르는 그런 기쁨입니다. 곡 자체에 대한 깨달음일 때도 있고 내안에 들어있었지만 발굴되지 않았던 내가 튕겨져 나오는 순간에 대한 기쁨일 때도 있는데 실제 연주가 아니면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나오지 않습니다. 진짜 연주회를 할 때에만 나오는 그 무엇입니다. 신기하죠?”

 


감동을 나누기 위해서 하는 음악

“음악을 하는 것은 나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들과의 수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연습을 거치면서, 감동과 신선함이 다 달아난 그 곡에서 진짜 감동을 찾아주는 수업입니다.

‘이 곡이 이렇게 좋은 곡이었구나’라는 반응과 깨달음을 학생들에게서 되받을 때 가장 보람이 있습니다. 청중도 마찬가지죠. 음 하나 하나가 청중의 마음을 파고 들어가 온 몸의 세포가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감동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게 제가 음악하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연습은 일기를 쓰듯 고백을 하듯 해야겠죠.”

 


피아노만 치는 일상 꿈꿔

“지난 일 년 동안 거의 4개월에 한 번씩 완전히 다른 프로그램으로 독주회를 했고 그 외에 협연과 실내악, 매주 방송진행까지 엄청 바쁘게 지냈습니다. 이번 독주회를 끝내고 나면 몇 달만이라도 쉬고 싶습니다. 방송은 KBS FM에서 매일 밤 10시부터 12시까지 하는 ‘당신의 밤과 음악’의 토요일 코너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에 고정 출연하고 있습니다. 음악가들의 삶과 음악을 이야기와 음악으로 엮어서 소개하는 코너인데 한 주도 거를 수 없는 방송의 성격상 쉬고 싶어도 못 쉬고 수험생처럼 준비를 한답니다. 청취자들이 재미있다고 하시니 하는 날까지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만 할 수만 있다면 평생 피아노만 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제 마음이랍니다.”

 


‘남이 써 놓은 곡을 연주하는 것도 이렇게 가슴 벅찬 감동이 있는데 내가 곡을 잘 쓸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요’ 라는 그의 감동을 이번 독주회를 통해 나누며 올 한 해 마지막을 장식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글 _ 김애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