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2005-05 피아노음악 "마음의 무게는 시간으로 쌓아간다"..이종철 기자
2009-06-20 1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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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 피아노음악 (이종철기자)

 

음악의 오솔길

마음의 무게는 시간으로 쌓아간다

 

 

 

친근한 이름의 피아니스트 허원숙. 꾸준한 연주 활동과 함께 호서대학교 교수로 교편 활동을 겸하면서 늘 가까이 있는 연주자였던 허원숙은 우리가 꼭 기억하며 만나봐야 할 아티스트이다. 허원숙이란 이름에는 순수한 믿음과 정겨운 삶이 자연스레 녹아 있다.

피아니스트 허원숙을 처음 만나는 사람은 먼저 소탈한 성격에 놀란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일종의 탐색전 같은 것이 있을 법한데, 그녀에게서는 아무리 훑어보아도 도무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까마득히 오래 전에 만나고 근래에 다시 만난 사람이더라도 넉넉한 웃음으로 표현하는 반가움 외엔 그 흔한 제스처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를 만날 때면 서먹서먹하게 적응해가는 시간이 별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늘 한 자리에, 언제나 가까이 있었던 듯이 호방한 웃음으로 대하는 사람, 이처럼 친근한 이름의 피아니스트가 또 있었을까.

 

제1악장 버리며 산다는 것

 

지난 1월에 이사를 했어요. 상도동에 있는 아파트로 집을 옮겼는데 전에 살던 집에서는 47년을 살았어요. 그때는 넓어서 좋은 집이었는데…. 주방에는 수납장이 많아서 그릇도 충분히 넣을 수 있었고 방에 두기 뭣한 물건은 지하실에 놓을 수도 있었거든요. 원래 버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초등학교 성적표도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데, 이사를 하면서 어느새 짐이 많아졌는지 감당을 할 수가 없더라구요. 별수 없이 많이도 버렸죠. 아깝다는 생각이 들곤 해도 한편으로는 삶이란 게 버리면서 사는 게 맞겠다 싶기도 하고.

 

지난해는 개인적으로 참 힘든 한 해였어요. 손을 다쳤는데 쉽게 회복이 되지 않더군요. 그전에 순회 연주회가 있었는데 무리가 가는 곡을 잇달아 쳤었어요. 왜 있죠, 몸의 나이보다 마음 속의 나이가 너무 젊다는 것…. 기계는 녹슬어 있는데 ‘내가 그걸 못해?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것 말이죠. 의욕이 넘쳤던 걸까, 지방 연주회가 거의 끝나고 마지막 연주회 한번이 남았을 때 리허설을 하다가 약간 힘이 들어가는 감을 느꼈어요. 그래도 연주회는 잘 끝났는가 싶더니 결국 얼마 안되어 무리가 오더군요. 피아노를 멀리해야 할 만큼 힘들었어요. 물론 지금은 거의 회복되었지만 그렇게 쓰디쓴 경험을 겪으니 ‘자만하지 말자’라는 각오가 생겼어요. 세가지, 그러니까 기억력·손·건강….

 

3월 18일에 익산에서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연주해요. 연주할 때쯤이면 손도 완전히 회복되겠죠. 10월에는 독주회 일정이 잡혀 있는데 이 기간 사이에 연주할 기회가 많을 것 같아요. 이제는 다르게, 편안하게 쳐야겠다는 계획이에요. 마음도 나이가 들어야겠구나 생각도 하구요.

 

제2악장 부끄럼이 많은 피아니스트

 

별다른 취미는 없어요. 주말에 텔레비전을 조금 보는 것 외에는. 손도 어느 정도 낫다 보니 한동안 못했던 피아노 연습을 더 많이 하고 있어요. 이사한 집이 5층이라 집중적으로 하지는 못하고 플롯처럼 나누어서 하고 있죠. 가능한 한 선율적인 곡으로 연습을 하니까 다행히 위아래 층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문을 두드리는 일은 없었어요(웃음).

 

요즘엔 ‘있는 것 관리 잘하자’라는 마음이 들어요. 제가 뽀빠이처럼 될 수도 없는 일이고, 있는 그대로 관리를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죠. 운동을 하면 건강해 질 것 같지만 사실 지금의 건강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말이 맞겠죠. 열심히 공부하면 똑똑해진다는 말도 사실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한다는 것이 맞는 것이죠. 친구를 보더라도 새로 사귀기보다는 제 곁에 있는 친구 관리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등산을 좋아하는 친구, 수다를 좋아하는 친구, 모두 한자리에 모일 기회는 적은 게 사실이죠. 또 많은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구요. 그러고 보니 전 조금 부끄럼이 많은 것 같기도 해요. 연주회는 그럼 어떻게 하냐구요? 그러니까 빨리 치고 나와야죠(웃음).

 

제3악장 나의 어머니

 

저의 어머니는 여느 어머니들과 달랐어요. 요즘에 음악을 전공으로 하는 아이라면 보통은 어머니들이 적극적이잖아요. 어떤 분들은 연습 시간을 직접 체크하시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녀가 보는 악보 말고 따로 ‘어머니용 악보’를 마련해 놓는 분도 있다는 말을 들었죠. 참 열성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저의 어머니는 그런 걸 해주시지는 않았어요. 제가 스스로 연습하고 피아노를 전공하기로 마음을 먹고 유학을 결심하면서도 흔한 간섭도 하지 않으셨어요. 다른 분들은 아마 ‘어떻게 가만 내버려둘 수 있었을까’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저는 그게 너무 감사한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 제가 피아노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저는 ‘방을 치워라’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어요. 간단하게 방에 정리가 안되어 있다면 방을 치워라, 마당이 지저분하면 마당을 청소해라 말하면 될 것을 어머니는 ‘방에 무엇이 있더구나’ 하시며 암시를 주셨죠. 그것이 방정리를 하라는 말씀이셨어요.

 

그런 기억이 있다 보니 유학 시절이나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점들이 참 많았어요. 재능있는 학생은 많은데 나중에까지 음악 활동을 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너무 힘들게 공부해서 그럴 수도 있고, 정작 음악을 배웠어도 무엇 때문에 음악을 해야 하는지 생각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죠.

 

저 혼자 생각이지만 제 어머니도 그랬다면 저는 아마 지금쯤 굶고 있을지도 몰라요(웃음). 스스로 의지를 갖도록 마음을 써주셨고, 그렇다고 정말 아이를 방치하셨던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느껴지게끔 신경을 써주셨죠. 오히려 이것이 더 힘든 일이 아니었을까요…. 뭐, 여느 모녀처럼 웃고 울리기도 하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