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ORMANCES 1994-05-30 제12회 독주회
2007-11-27 11:08:34
허원숙 조회수 2612

1994-05-30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프로그램:

 

베르크 소나타, 작품 1
베토벤 소나타, 작품 31-2
프로코피예프 토카타 d단조
리스트 소나타 b단조

 

<연주에 앞서...>

 

오늘 연주되는 작품들은 문학작품을 소재로 한 소나타 (베토벤, 리스트)와
20세기 초의 새로운 기법이나 시대적 조류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 (베르크, 프로코피예프) 입니다.

 

베토벤의 소나타 작품 31의2는 작곡가 자신이 밝힌 것처럼
셰익스피어의 희곡 '폭풍'에 이해의 열쇠를 두고 있으며,
절망, 혼돈, 위로의 낭만적 정서의 표출이 매 악장마다 염격한 소나타 형식 안에 녹아있습니다.

 

리스트의 소나타 나단조는 부제는 달고 있지는 않지만 괴테의 파우스트를 내용으로 한 표제음악으로,
소나타라는 형식을 빌었으나 주제의 나열이나 전개방식이 기존 소나타 형식보다는 오히려
작은 동기에서 자라나는 무한 선율의 성격을 띄고 있으며,
맨 처음 나타난 메피스토의 음산하고 교활한 동기가 리듬과 화성을 달리하여
그레첸의 아름다운 선율로 또는 간절히 애원하는 기도의 선율로 바뀌는 모습에선
어떤 씁쓸하고 허전한 아이러니까지도 느낄 수 있습니다.

 

베토벤이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면서 고전기의 음악을 완성하고
낭만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역할을 했듯이 베르크와 프로코피예프도
19세기와 20세기라는 전환기를 맞이하여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됩니다.
프로코피예프가 받은 20세기의 변화는 거의 충격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
산업의 기계화와 발전에 따른 인간성의 상실과 물질화, 숫자화는
프로코피예프의 토카타에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단3화음과 반음계의 수학적인 나열,
음색이나 감정을 고려치 않고 타악기의 기능만을 강조한 단순하고 기계적인 선율은
이 음악을 비인간적이며 반음악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알반 베르크의 소나타 작품 1은
그의 스승 쇤베르크의 영향으로 12음기법 또는 음렬주의로 가는 과정 중에 작곡되었습니다.
두꺼운 화음층, 반음계적 진행, 4도 병행과 아울러, 일정한 조성을 거부하려는
주제의 잦은 조성 탈피와 새로운 제시 등은 앞으로 올 음렬주의의 모태가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막아도 막아도 어쩔 수 없이 터져나오는 낭만주의적인 감정의 표출이나
곡 처음과 끝에 안간힘을 쓰고 매달려 있는 나단조의 조성은
우리 시대의 감성이 12음기법으로 묶여질 성질의 것만은 아니라는 강한 암시를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