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30분만 지나면\"...미켈란젤리 3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4-08
2007-11-27 18:56:06
허원숙 조회수 3303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04월 08일 원고.... 아르투르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3) 30분만 지나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미켈란젤리를 말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이 비밀스럽게 베일에 가려진 사람이라는 말일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인터뷰를 할 때에도 거짓말을 할 때도 있었구요, 사실이긴 사실인데 아주 부분적인 이야기만을 전체인 것처럼 이야기할 때도 있어서, 도무지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조차도 모를 때가 많았다고 해요.

미켈란젤리는 이탈리아 선생님한테서만 피아노를 배웠는데, 내 선생님은 독일 사람이다, 또는 오스트리아 사람이다 라고 말 할 때도 있었구요, 자기 조상은 오스트리아 귀족의 후손이다, 베네딕트 교단의 성직자다, 등등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게 사실이 아닌 말을 하고 다녔다고 해요.

결혼도 쥴리아나 구이데티와 1943년에 했는데, 그 부인은 미켈란젤리의 최고의 조언자이면서 또 비서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부부가 함께 남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사람들은 미켈란젤리가 독신인 줄 알았다고 하죠.

아마 완벽주의자의 또 다른 모습, 그러니까 자기 자신의 모든 면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성향이 심했던 거겠죠.

 


DVD 자료 중에 1962년 Turin의 RAI(이탈리아 국영방송)에서 만든 미켈란젤리의 피아노 연주 자료가 있는데요, 흑백화면인데, 베토벤의 소나타 32번과 3번 연주가 담긴 건데요, 32번은 연주회 실황을 담았고, 3번은 스튜디오에서 녹화했는데, 카메라는 최소한으로만 설치하고 얼굴에 가까이 카메라 들이대지 말라는 요청에 맞추어 정말 간단한 녹화장비로 녹화를 했는데, 대가의 실제 연주모습을 (편집이 거의 없는) 볼 수 있어요.

음악에는 정말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들어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얼굴로 표정도 드러내지 않고, 연주하는 동작도 최소한의, 음악에 필요한 움직임만... 속내를 드러내는 게 싫은 건지 아니면, 걸러지지 않은 내면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경박하다고 생각해서였을까요...

비밀스러운 걸로 말하자면 글렌 굴드도 <한 비밀>하는 사람인데요, 글렌 굴드와 다른 점은, 스위스로 망명을 가서 살면서 자기의 피아노 연주 소리가 집 밖으로 새어 나갈까봐 꼭꼭 걸어 잠그고는 피아노를 쳤다고 하죠. 글렌 굴드는 오히려 오두막에서 연습하면서 사람들을 불러들여서 같이 보내는 시간도 많았다던데요.

 


미켈란젤리하면, 나이들어서는 그냥 그렇지만, 젊은 시절에는 정말 조각처럼 멋있고, 차가운 표정과 어울리게 연주복의 자태도 멋있었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18년동안 같은 연미복만 입었다고 해요. 춘하복과 추동복 단 두 벌로요.^^

 


연주회 때마다 피아노를 가지고 다닌 걸로 유명한 미켈란젤리는 연주회를 취소하는 걸로도 유명했는데, 날씨, 음향상태, 그리고 자신의 건강 상태가 물론 연주회 취소의 주요 원인이 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지고 간 피아노의 상태가 나쁘면 연주회를 취소했다고 하죠.

한번은 일본 공연에 갔는데, 장시간 여행을 한 피아노의 상태가 아주 나빴대요. 당연히 미켈란젤리는 공연을 취소했고, 유럽에서였더라면 또 그러나보다 하고 지나갔겠지만 일본은 예민하게 반응을 했대요. 미켈란젤리의 여권을 압류하고 위약금을 물게 한 거죠. 미켈란젤리는 당연히 그 후로는 다시는 일본에 안 갔구요.


미켈란젤리는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해요. 부인 줄리아나 구이데티는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남편의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연주회를 기획하고 일정을 잡고 재정관리를 맡아했는데요, 그분의 말을 빌자면, 자기 남편은 자신의 연주회 개런티가 아주 높은 것을 믿을 수 없는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연주회가 끝나고 나면, 자기 부인한테, “ 봤지? 이렇게 많은 박수환호와 많은 관중도 30분만 지나고 나면 다 사라지고 이전보다 더 쓸쓸해지는 거야”라고 말했다고 해요.

 


음악 듣겠습니다.

미켈란젤리가 연주하는 Mozart piano concerto K.450 중에서 제3악장 Allegro입니다. Cord Garben이 지휘하는 NDR-Sinfonieorchester(북독일방송 심포니오케스트라)의 함부르크 연주실황입니다. (9:54)

 


*******

 


미켈란젤리는 연주가로서 뿐 아니라 교육자의 역할도 충실히 한 사람이었는데요, 제자를 키우는 일을 무슨 종교사역을 하는 것처럼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해요.

제네바 콩쿠르에서 1등을 수상한 1939년부터 1941년까지 볼로냐의 마르티니 콘서바토리에서 교수로 있었고요, 그 이후에는 볼자노 콘서바토리를 비롯해서 이태리와 스위스 등지에서 <완벽한 연주와 피아니스틱한 해석을 위한 국제 코스>라는 이름을 붙인 매스터코스를 조직해서 수년간 학생들을 가르쳤고요, 브레시아에서 인터네셔널 피아니스트 아카데미를 창설하고, 예술감독으로 1969년까지 직책을 맡다가, 1973년에는 플로렌스 근교의 빌라 스키파노이아 (Villa Schifanoia) 여름 코스의 교수직을 맡아서 전세계에서 엄선한 재능이 뛰어난 젊은 피아니스트들을 가르쳤지요.

그가 가르친 제자 중에는 Martha Argerich, Hanz Fazzari, Maurizio Pollini, Remo Remoli 도 있었구요.

미켈란젤리는 연주회 수입이 물론 많았었지만, 그 돈의 대부분을 그의 베스트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에 썼다고 해요.

알프스 산자락에 사설학교를 만들고 레슨하는 곳과 숙식하는 시설까지 다 갖추고 아주 우수한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이 제자들 가르치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60년대에는 돈을 딴 곳에서 조달했어야 했다고 해요. 그의 레슨이나 매스터 코스는 무료였다고 하죠.

그는 음악은 마땅히 가져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권리이기 때문에 그런 재능있는 제자들에게는 가르침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멋있죠? 이게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예요.

 


미켈란젤리는 1988에 보르도에서 무대에 올라가서는 쓰러졌는데, 병명은 동맥류였다고 해요. 그리고 채 1년도 못 되어 함부르크, 브레멘 등지에서 연주를 다시 시작했고요, 1992년 80세의 첼리비다케의 지휘로 뮌헨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연주, 1993년 5월 함부르크에서의 연주를 마지막으로 1995년 6월 12일 심장마비로 쓰러져서 스위스 Lugano 근교의 Pura 라는 곳의 작은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는데요, 본인의 유언에 따라 묘비도 없이 모셔졌다고 하죠.

 


마지막 곡입니다. 뭘 들을까요?

피아노의 연금술사인 미켈란젤리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곡입니다.

드뷔시의 전주곡 중에서 <달빛 쏟아지는 테라스>와 <불꽃놀이>를 감상하시겠습니다. (3:54+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