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클라라라는 이름 때문이었나...\" 클라라 하스킬 2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8-19
2007-11-28 10:07:23
허원숙 조회수 3005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08월 19일 원고.... 클라라 하스킬 (2) “클라라라는 이름때문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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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하스킬의 부모가 딸에게 클라라라는 이름을 지어주게 된 계기가 있어요.

그것은, Clara Moscona 라는 클라라의 이모 이름이었는데요. 클라라 모스코나는 정말 재능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고, 18살에 부카레스트 음악원에서 1등상을 받았는데, 더 놀라운 것은 이 클라라 모스코나가 14살에 처음으로 피아노를 시작했고 아주 빠른 속도로 발전을 했다는 거죠. 그런데.... 불행히도 이 클라라 모스코나는 20살에 결핵으로 숨지게 되지요.

그래서 그런가.....?

클라라 하스킬은 그 이름 때문인지, 이모의 재능도 닮았지만, 이모처럼 아까운 나이에 불치의 병에 걸리게 되었어요.

 


클라라 하스킬의 소녀 시절의 사진을 보면요, 정말 빼어나게 아름다운 모습이에요. 얼굴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자세도 아주 바르고요, 허리도 곧게 세우고.... 아주 지적인 미모의 소녀인데요...

18살이 되던 해에 뇌와 척수의 백질(백혈구?)이 파괴되면서 신경계에 종양까지 동반하는 무서운 병에 걸리게 되어서 4년간 깁스 코르셋을 하고 투병 끝에, 등뼈와 허리뼈가 휘어버리는 곱추가 되어서 병상에서 일어나게 되지요. 얼마나 절망했겠어요?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몸은 일그러졌지, 피아노는 앞으로 칠 수나 있을지 모르지....

이렇게 7년이나 고통스럽고 긴 세월을 고독하게 지냈다고 해요.

그런데 정말 다행인 것은, 그 긴 투병 중에도 팔 근육에는 이상이 없어서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된 것이었죠. 물론 피아니스트에게 척추가 팔만큼 중요하긴 한데요,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피아노로 재기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었죠. 그 대신 레파토리에 제약이 생겨서 모차르트를 들고 무대에 서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클라라 하스킬을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라고 알고 있지만, 아프기 전에는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였어요.

당시 기록을 보면요, 모차르트의 작품도 물론 많이 연주했지만, 그보다는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 브람스 파가니니 변주곡,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등을 더 많이 연주했다고 해요. 현대작품으로는 힌데미트, 바르톡의 작품도 자주 연주했다고 하고요. 손가락도 엄청나게 길고 넓게 벌어졌다고 하죠. 손을 펼치면 부채가 펴진 모양이 되었고, 새끼 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이 손목에 직접 붙어있는 것 같이 보였다고 해요.

음악 들을까요?

클라라 하스킬이 연주하는 슈만의 작품 중에서 골랐습니다.

Abegg 이름에 의한 변주곡, 작품 1입니다. 네덜란드의 Hilversum에서 1951년에 녹음한 음반입니다. (연주시간 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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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에 병에 걸려서 투병 끝에 다시 피아니스트로 극적인 재기를 한 하스킬은, 이자이, 에네스쿠, 카잘스 같은 사람들과 소나타 연주를 하게 되는데요. 연주가 끝나면 극도의 공허함과 불안감에 시달리곤 했대요. 아무리 자기한테 칭찬을 해 주더라도 나는 이 사람들과 같은 위대한 천재들과 진정한 교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요.

독일 피아니스트이면서 교수인 Peter Feuchtwanger의 글에 보면 클라라 하스킬은 두 가지 공포에 시달렸는데, 하나는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이제 곧 내 삶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고 해요. 게다가 워낙 수줍어하는 성격이어서 사람들은 “하스킬은 벽에 붙어서 살금살금 걸어다닌다” 고 말했다고 하죠.

 


그래도 이젠 좀 연주생활도 하고 나아지려나 싶었는데, 이제는 2차 대전이 터졌어요.

유태인이었던 하스킬은 파리에서 있다가, 파리가 나치에 점령되는 바람에 다시 피난길에 올라서, 남프랑스에 마르세유에 사랑하던 고양이와 단둘이 숨어 지내게 되지요.

극도의 공포와 피로로 뇌졸중에 걸려 시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게 되고, 또 척추측만(축색경화증, 세포경화증)의 2차합병증인 신경 종양이 발병해서 수술을 받지 않으면 살아나기 힘든 상황이 됩니다. 다행히 유태인 의사가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 우여곡절 끝에 달려와서 어려운 수술 끝에 실명의 위기를 넘기고 목숨을 건지게 되는데요.

말년에 클라라 하스킬이 말한 것을 보면요,

“나는 행운아였습니다. 나는 항상 낭떠러지의 끝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인해 한 번도 낭떠러지 밑으로 굴러 떨어지지는 않았고,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요, 그것은 신의 도우심이었습니다.”

이 말처럼, 항상 어려움이 닥쳐도 감사했고 겸손했다고 하죠.

그리고 자신의 연주에 대해서는 “차라리 청소부나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청소하는 것 외엔 무엇 하나 몸에 익힌 게 없으니....”라고 한탄했는데, 사실은 연주가 성공적으로 끝난 뒤에도 이렇게 한숨짓곤 했대요.

하스킬은 최초의 녹음이 52세가 된 1947년도인데요, 이것도 사실은 겸손함과 수줍음 때문이었다고 하죠.

당시의 프로듀서들은 차라리 하스킬이 조금만 재능이 덜 하던지, 아니면 좀 덜 수줍어했더라면 훨씬 많은 음반과 업적을 남겼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죠.

 


음악 듣겠습니다.

클라라 하스킬이 연주하는 베토벤 소나타 작품 31-3 중에서 제1악장 Allegro와 제2악장 Scherzo입니다. 1952년 뮌헨의 Seidlhaus에서 있었던 실황 녹음입니다. (5:5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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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Feuchtwanger 가 쓴 글에 보면요, 1956년 브장송 음악 축제에서의  클라라 하스킬의 연주에 대한 글이 있는데요, 무대 위에 등장하는 하스킬의 모습은 제 나이보다 20살은 더 들어보이는 외모에, 만지면 부서질 것 같고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의 모습이었다고 해요.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연주 내내 두통과 또 허리, 등뼈의 통증에 시달리면서 연주를 했다고 하고요,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전에도 들어본 적도, 또 앞으로도 들어볼 수 없을 것 같은 감동적인 소중한 연주였다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