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절대적인 리스트 연주\"...호르헤 볼레트 4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12-29
2007-12-31 01:25:34
허원숙 조회수 4445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12월 29일 원고....호르헤 볼레트 Jorge Bolet (4) “절대적인 리스트 연주”

(November 15, 1914–October 16,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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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볼레트와 함께 하는 4번째 시간입니다.

볼레트는 연주할 때 손을 납작하게 펴서 연주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요, 사실 피아니스트의 손의 자세로는 그렇게 모범적인 자세는 아닌 것으로 생각되죠. 우리들도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할 때 계란을 손에 쥔 모양에서 약간 푼 상태로 피아노를 쳐야 한다는 설명을 누누이 들었잖습니까? 그런데 볼레트의 손 모양은 납작하니까 그것 때문에도 사람들한테 많은 말을 들었었나봐요. “아, 볼레트? 그 손 납작하게 펴서 연주하는 사람? 나 그 사람 연주회 안 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대요.

하지만, 볼레트는 말하죠. 손을 동그랗게 해서 낼 수 있는 음색과 납작하게 펴서 낼 수 있는 음색은 확연히 다르다고. 예를 들어 스카를랏티는 동그란 손 모양으로 연주하는 것이 맞지만, 쇼팽의 녹턴은 동그란 손 모양에서 날 수 있는 음색이 너무 한정되어 있지 않는냐는 것이죠.

그러면서 손 자세도 물론 중요하지만, 몸의 자세 또한 연주의 질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인인데, 긴장을 풀고 안정된 모양으로 자세를 잡고 연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소리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피아니스트의 연주 자세 중에서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자세가 있는데 머리를 들어서 하늘을 응시하는 자세로 연주하는 사람이라고 해요. 그러면서 반문하기를 “뭘 보나? 하나님?” ..^^

최상의 자세로 연주하는 사람은 라흐마니노프라면서 상체를 전혀 움직이지 않고, 음역에 때라 좌우로 약간의 이동만 하는 자세가 가장 좋은 자세라고 말하죠. 몸을 비틀거나, 튀어오르거나, 또는 하늘을 쳐다보거나 하는 것들은 음악적인 자세는 전혀 아니라는... 쇼맨쉽과 음악은 다르다는 무서운 말씀....

그리고 콩쿠르가 피아니스트를 알려지게 하는 가장 중요한 지름길인 것은 사실이고, 자신 또한 콩쿠르 심사를 몇 차례 한 적은 있지만, 만약 자기가 콩쿠르에 나간다면 당연히 1차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을 거라면서, 콩쿠르에서 원하는 기준대로 연주를 할 수도 없고, 또 내 안에는 너무나 내가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했죠. 유행가 가사 같은데...?

이렇게 연주 방법에서나 자세에서나 음악적인 내용에서나 보편적인 방식과는 동떨어진 볼레트이지만, 그가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 바로 음악 때문이죠.

호르헤 볼레트를 일약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다시 태어나게 한 역사적인 연주회 실황을 보내드립니다. 1974년 카네기 홀 연주회 실황인데요. 60세 때죠? 거의 새로운 의미에서의 데뷔 연주라고 할 수 있는 연주회. 이 날의 연주회 프로그램은, 바흐-부조니의 샤콘 d 단조, 쇼팽의 프렐류드 전곡, 그리고 바그너-리스트의 <탄호이저-서곡>이었는데, 그 중에서 쇼팽의 전주곡 OP.28 중 제16곡~제 24곡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호르헤 볼레트의 1974년 카네기홀 연주회 실황입니다. (연주시간: 약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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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레트는 리스트가 살았던 시대에 바이마르에 살았더라면 아주 흥미로웠을 것이라고 말하죠. 그것은 리스트 때문만은 아니고요, 그 당시 리스트 주변의 사람들, 그러니까 바그너, 베를리오즈, 폰 뷜로, 달베르, 타우지히... 같은 사람들을 모두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신났겠냐면서, 하지만 이제 나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고, 내가 사는 이 시대 또한 아주 행복한 이유는 박하우스, 프리드만, 호프만, 라흐마니노프, 모이세이비치의 연주를 보면서 자라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들을 언급하면서 특히 모이세이비치는 라흐마니노프보다 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을 더 훌륭하게 연주해냈고, 또 라흐마니노프가 편곡한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 중에서 스케르쵸의 Transcription 을 아주 훌륭하게 연주했고, 수정없이 한 번에 녹음을 했다고 말하죠. (기회 되면 소개하도록...)

하지만, 호르헤 볼레트의 진정한 신(神)은 요셉 호프만과 라흐마니노프라고 합니다. 왜냐면 호프만과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는 다른 사람들의 연주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이라죠. 그 중에서 호프만의 연주는 정말 훌륭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연주하려고 하지 않는데, 그것은 호프만의 연주는 너무나 개인적인 연주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볼레트는 호프만의 연주를 신성불가침한 영역이라고 말을 할 정도로 경외심과 존경심을 나타냈는데요, 하지만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자신은 스스로 말하곤 한답니다. “바로 이게 내가 내려던 소리다”라고.

그리고 현대 피아니스트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예전의 대가들에 비하면 등급이 많이 떨어지는 현실이라면서, 그 중에서 괜찮은 피아니스트를 집어내라면 에밀 길렐스가 있다고 말하고요, 현대곡으로 좋은 작품은 Ginastera의 피아노 협주곡 1번, John Corigliano의 피아노 협주곡 등을 사랑하고 연주한다면서 예전에 내가 20살이었을 때에는 어떤 곡도 하룻밤이면 뚝딱 연습을 마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이 곡들 공부하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하고, 이후로는 현대곡을 내 레퍼토리로 만드는 것을 포기했다고 말하죠. 너무 인간적인, 너무 존경스러운....

볼레트는 피아노 이외에 남미와 중미에서 사진전을 열었을 정도로 사진을 좋아하고, 또 스포츠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50년 후의 모습을 상상하라는 말에는 이렇게 말하죠.

“50년 후 사람들은 나의 음반을 들으면서 말할 것입니다. ‘글쎄~! 구식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사람이군.’하면서. 결국 나는 이렇게 꼬리표를 달고야 말겠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이 구식피아노 연주의 표본이라고 평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대단한 칭찬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내가 들은 최고의 칭찬은 해롤드 숀버그가 몇 년 전에 나에게 대해 한 말인데요, ‘그런 식의 피아노 연주란... 그는 라흐마니노프, 호프만, 레빈의 방식으로 피아노를 치는 몇 안 되는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하나이다. 참으로 그는 유일하다.’ 얼마나 좋아요? 내 이름이 그렇게 위대한 인물들과 함께 거론된다는 것. 거기에 무슨 말을 더 붙이겠습니까?”

볼레트는 1984년에 A&E Network 방송에서 만든 3부작 <볼레트 라흐마니노프를 만나다 Bolet Meets Rachmaninoff>으로 라흐마니노프 3번 협주곡의 매스터클래스를 열었고요, 1988년에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해서 1989년에 뇌수술을 받고 회복이 되지 않아서 1990년 10월 심장마비로 숨을 거둡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볼레트의 1974년 카네기홀 연주실황 중에서 바그너-리스트 <탄호이저 서곡>입니다.

(연주시간: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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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레트의 1974년 카네기홀 연주 포스터에 이런 말이 써 있네요.

“그의 리스트 연주는 오늘 이 세상에서 절대적인 것이다.”

“진정한 경외심을 일으키는 피아니스트”

“그의 연주는 비평을 허락하지 않는다”

“생존하는 몇 안 되는 수퍼 피아니스트 중의 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