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건학 30주년 기념음악제에 부쳐
2008-11-06 17:22:54
허원숙 조회수 2758
 

호서 건학 30주년 기념음악제 인사말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중에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화>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어떤 화가가 도리안 그레이라는 사람의 초상화를 그립니다. 그림의 주인공이 된 도리안 그레이는 세월이 흘러가도 젊은 모습 그대로인 초상화와 달리, 현실의 자신의 모습은 늙어갈 것을 안타까워하지요. 그래서 말합니다. 자신은 젊은 모습 그대로이고 대신 그림이 늙어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던 어느 날, 도리안 그레이는 우연히 초상화 속의 자신의 모습이 변해가는 것을 발견합니다. 언젠가 그가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실제 모습이 세월이 지나도 젊고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인 대신, 그림 속의 자신의 모습이 늙어가고 있었던 것이죠. 그림이 무서워진 도리안 그레이는 드디어 자신의 초상화를 다락방에 감추어버립니다.

피아니스트 얼 와일드가 1986년에 71세의 나이로 가진, 리스트 서거 100주년 기념 독주회를 본 어떤 평론가의 리뷰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 정말 믿을 수 없지만, 그는 70년이나 된 오래된 손가락으로 수백만 개도 넘는 음들을 너무나도 신선하고 정확하게 연주하였다. 마치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화>처럼, 혹시 얼 와일드도 자신의 낡아빠진 몸은 지붕 밑 다락에 숨겨둔 것은 아닐까...”


호서대학교 건학 30주년을 맞이하여 음악학과에서 기념음악회를 준비했습니다. 30 이라는 숫자는 한 시간으로 따진다면 지나간 30분과 새로 올 30분이 교차하는 지점이며, 거기에는 반절의 과거와 반절의 미래가 담겨있습니다. 또한 인생에서 30이라는 숫자는 진정한 인생을 시작하는 성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11월. 호서대학교 음악학과에서는 이제 서른 살, 비로소 어른이 된 호서대학교의 건학 3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제를 개최합니다. 이 음악제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다가올 30년은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처럼, 다락방에 숨겨두고 영원히 젊음을 과시했던 피아니스트 얼 와일드의 모습과도 같이, 젊고 힘차고 재치있는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이 되도록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2008.11월

 

음악학과장 허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