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다시 연습하자!\"...루빈슈타인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2-04
2007-11-27 18:51:55
허원숙 조회수 3334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02월 04일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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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연습하자! -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1”

 


오늘 이야기드릴 피아니스트는요, 타고난 재능과 기질을 가졌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자기 반성을 거쳐서 비로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대명사가 된 분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인데요.

어릴 적부터 천부적인 재능과 기질을 타고난 피아니스트로서 소위 말하는 성공이라는 것들을 누린 피아니스트였었죠.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최고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는데, 그렇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연주의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이었다고 하죠.

루빈슈타인은 악보를 그냥 보는 즉시 곡을 외울 수 있었다고 하죠. 리사이틀을 할 때에도 보통 한 번 쓱 훑어보고는 거의 연습 없이 무대에 나갔다고 하고요, 파데레프스키 소나타가 출판된 다음 날에 이 곡을 자신의 리사이틀에서 연주했다는 일화도 있고요, 기차 안에서 프랑크의 <교향적 변주곡>을 완전히 외웠다고 하고요, 한 밤중에 깨워서 서른 여덟 곡의 중요한 협주곡 가운데 어느 곡을 부탁해도 정확히 칠 수 있는 유일한 피아니스트였다고 하죠.

피아니스트에게 손은 정말 중요한 조건인데, 루빈슈타인은 정말로 타고난 피아니스트의 손을 가졌다고 해요. 도에서 솔까지 충분히 닿았고요, 손가락 하나하나도 정말 튼실한 손이었다고 하죠.

손도 좋지, 초견도 좋지, 암보도 좋지... 피아니스트로서 나무랄 데 없었던 루빈슈타인에게 치명적이라고 할 만한 나쁜 습관이 있었는데, 그것은 게으름이었다고 해요.

루빈슈타인도 스스로 이 점을 인정하고 연습에 몰두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결혼이었어요. 1886년 생인데 1932년에 결혼했으니까 40도 훌쩍 넘겨버린 나이였죠.

결혼한 후에 루빈슈타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나봐요.

“과연 나는 위대한 피아니스트였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의 처와 아이들에게 훗날 과연 이같은 평가를 유산으로 남겨줄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말이죠.

사실, 1906년에 뉴욕에서 데뷔연주를 했었고 그 이후에도 여러 번 미국에서 연주했었는데 한 번도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거든요.

루빈슈타인 스스로가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평가하면서 말했어요.

“젊었을 때 나는 게을렀다. 나는 재능은 있었지만 내 인생엔 연습보다 훨씬 중요한 일들이 훨씬 더 많았다. 맛있는 음식, 좋은 시가, 훌륭한 술, 여인들....

내가 라틴어권 나라들, 즉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연주했을 때 사람들은 나의 기질때문에 나를 사랑했었구, 러시아에서 연주했을 땐 나와 이름이 같은 루빈슈타인, 안톤 루빈슈타인 덕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왜냐면 그 곳 청중들은 안톤 루빈슈타인의 틀린 음표에 길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영국이나 미국에서 연주했을 때 사람들은 자기들이 돈을 내고 음악회에 들어왔기 때문에 모든 틀린 음표에 대해서 권리를 갖고 있다고 느꼈다. 그 시절에 난 많은 음표를 빼먹었다. 아마도 30퍼센트는 족히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청중들은 내 연주를 듣고 사기를 당했다고 느꼈겠지.”

그 이후의 루빈슈타인은 정말 철저하게 연습에 몰두했다고 해요. 그리고 1937년 11월 27일에는 이른바 루빈슈타인의 “위대한 뉴욕 재입성의 날”이라고 불리는 성공적인 뉴욕 재기 무대를 마련할 수 있었고요, 비평가들도 비로소 “금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라고 기꺼이 부르게 되었습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루빈슈타인의 연주로 Falla 의 El amor brujo 중에서 Ritual Fire Dance 를 듣겠습니다. 1947년 녹음입니다. (연주시간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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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세요, 두 손을 쫙 벌리고 높이 쳐들어서는 피아노 건반을 내려치는 루빈슈타인의 모습이 떠오르죠?

루빈슈타인의 연주모습을 보면 이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요, 그렇게 연주하다 실수한 이야기도 있죠.

그리그의 A 단조 협주곡을 연주할 땐데요, 오케스트라가 A 단조 화음을 트레몰로로 부르르르르르~ 하고 연주했대요. 루빈슈타인은 언제나 그랬듯이 손을 쫙 벌리고 하늘 높이 치켜올리고서는 한껏 폼을 잡고 A 단조 선율을 친다는 것이 그만, 한 음 옆으로 빗겨가서는 G 장조 자리에 도착한 거였어요. 한음씩 좌악 밀렸으니, G장조도 아니고 단조도 아니고 이상한 음계가 되었겠죠. 그래도 일단 시작했으니 어쩌나요, 그냥 쳐야죠. 그래서 빠~ 빠바밤 빠바 바바바 바바바 바아~~후루루루룩 빠밤 후루루루룩 빠밤~ 하고 나니 놀란 지휘자가 눈이 동그래져 가지고 류빈슈타인을 봤겠죠? 체면을 구긴 루빈슈타인은 멋쩍어서 피아노 치던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어깨를 한 번 으쓱!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계속되었다고 하죠. ^.^

 


재능은 넘치나, 게을렀던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고, 자신의 연주의 허점을 깊이 깨달은 루빈슈타인은 그야말로 와신상담 호되게 자신을 갈고 닦으면서 이전에 레퍼토리를 전부 다시 연구했구요, 방대한 레코딩 작업도 시작했다고 해요. 쇼팽의 거의 모든 작품. 베토벤, 슈만, 리스트, 브람스, 인상주의의 많은 작품들, 베토벤에서 포레에 이르기까지의 실내악곡들, 그리고 낭만주의 협주곡 거의 전부를요.

 


음악 한 곡 더 듣겠습니다.

기차 안에서 외웠다던 프랑크의 <교향적 변주곡>입니다.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의 피아노, 알프레드 월렌슈타인의 지휘, 오케스트라는 Symphony of the Air입니다.

1958년 녹음입니다. (연주시간 1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