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어떻게 하면 푸가 연주를 잘 할 수 있을까요?
2007-11-27 18:48:21
허원숙 조회수 3185

다음 글은 호서대 작곡전공 2005 작품발표회 <바흐에게 길을 묻다> 중에서

<어떻게 하면 푸가 연주를 잘 할 수 있을까요?> 라는 허원숙 교수의 코너 내용입니다.

연주회를 주최한 작곡 전공 학생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꾸며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푸가 연주를 잘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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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야, 잘 지내지?

바흐에게 길을 묻는 일, 잘 진행되고 있는 거지?

어떻게 하면 푸가 연주를 잘 할 수 있을까?

사실.... 나도 평생 해결해야 할 내용이기도 한데.....

 


미로 찾기 게임이라구 있지?

거기에 내가 빠져들어갔다고 생각해보자.

어떻게 하면 길을 잘 찾아 나올까?

우선, 길을 잘 봐 둬야겠지.

왼쪽으로 갔더니 막다른 골목이더라. 거긴 더 이상 안간다.

오른쪽으로 갔더니 두 갈래 길이 나오더라. 그 둘 중의 하나다.....

어떤 길을 가던지 유심히 길을 잘 봐두고,

또 한 번 간 길은 구조가 어떻게 되었는지 꼭 외어둔다.....

이리 저리 부딪히면서 방향을 틀을 때에

절대로 중심을 잃으면 안 되는 것.

그게 가장 핵심이겠지.

 


푸가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게 있어.

복-잡-함!

왜 복잡할까?

주도권을 쥐고 있는 선율이 너무 많아서 복잡한 거지.

그저 아름다운 선율 하나에, 도솔미솔 도솔미솔... 반주가 따라와주면 편할텐데...

 


복잡한 선율이 얽혀있는 푸가를 한번 해체해 보자.

한 성부씩 선율을 연주해보자.

노래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성부만 쳐 보자.

 


영모야!

너 글렌 굴드 알지?

바흐의 독창적인 해석과 연주로 전세계를 뒤집어 놓았던 피아니스트.

그 사람이 두 세 살 먹은 아기였을 때

엄마 무릎에 앉아 피아노를 쳤는데

도오오오오오오------------

자기가 친 음이 다~ 사라지고 나서야 다른 음을 쳤대.

소오오오오오오올-----------

바흐를 잘 치던 천재 피아니스트의 탄생은 그거였어.

한 번 시작한 음을 끝까지 듣는 자세 말야.

그러니 너도 한 번 해보렴.

한 번 시작한 선율이 다 사라질 때까지 그 성부를 집요하게 노래 불러봐.

푸가라는 말이 무슨 뜻이지?

도망간다는 뜻이거든.

도망간 사람을 잡으려면 끝까지 쫒아가야지?

그러니 한 번 시작한 주제나 어떤 선율은 꼭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말이야.

 


그렇게 한 성부씩 모든 성부를 따로 따로 노래하면서 연주해봐.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모든 성부를....

그리고 나서 이젠 두 성부를 엮어봐.

소프라노와 알토,

소프라노와 테너,

소프라노와 베이스,

알토와 테너,

알토와 베이스,

테너와 베이스.

처음에 한 성부만 쳤을 때보다 한 성부 더 늘어났으니

두 성부를 집요하게 놓치지 않으면서 노래해야 돼.

그게 얼만큼 잘 되기 시작하면, 이젠 3성부를 노래해봐.

소프라노, 알토, 테너

소프라노, 알토, 베이스

소프라노, 테너, 베이스

알토, 테너, 베이스

이번엔 선율이 세 가지라 좀 더 복잡해졌어.

각각의 성부를 놓치지 말고 노래하는 것 잊지말고.

그게 다 되면 이젠 뭐 남았지?

네 성부 한꺼번에 노래하기.

노래가 잘 되는지 모든 성부를 추적하면서 노래해야 돼.

 


와! 다 끝났다!!!

이제 푸가 잘 치게 됐다!!!

영모야, 너무 좋아하지 마.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거든?

 


그렇게 네 가지 성부를 다 들으면서 칠 수 있게 되면,

그 다음엔 곡을 분석해야지?

주제가 어떤 성부에서 시작해서 어디까지 계속되었는지?

응답은 어떤 성부에서 어떤 모양으로 받아나오는지?

주제나 응답이 나올 때, 대위 성부는 어떤 모양을 갖추었는지?

4성부 곡이라면, 주제 하나에 대위선율이 세 가지나 있을 때도 있지?

그거 다 파악하구....

그 다음엔 경과구의 모양을 잘 관찰해야겠지?

첫부분에 나온 주제와 응답, 대위선율이 이번에는 어떤 조성으로 시작해서

어디를 향해 가는지....

주제가 갑자기 두 배로 느린 템포가 되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주제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 마치 아기를 등에 업은 것처럼,

여러 개의 주제가 포개어져서 등장하는 부분은 없는지...

그리고 곡을 마무리하는 코다의 모습도 살펴봐야겠지?

 


어때, 힘들지?

이제 거의 다 왔어, 조금만 참아.

 


이젠, 지금까지 연습한 것들을 커다란 덩어리로 놓고 봐봐.

비행장의 관제탑에서 비행기들이 뜨고 내리는 것을 지시하는 사람처럼,

전체를 놓고,

처음 주제는 어떤 색깔로 연주할지,

경과구는 어떻게 표현할지,

클라이맥스는 어디에 어떻게 표현할지,

코다는 어떤 표현이 어울릴지...

그 모든 것을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어떤 구성을 하는 것이 좋을지 여러 가지로 시도를 해 봐.

다이내믹이 정해져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바흐처럼 악보에 지정해 주지 않은 곡을 연주한다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다 연습해 보는 게 좋을거야.

마치 옷을 코디할 때

입어보지 않고도,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한 번에 쫙!

멋있게 코디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 옷에 저 모자, 그 양말, 어떤 목도리...

몸에 대어보고, 함께 입어보면서 어울리는 모양을 선택하잖아.

그러니,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 노래를 몇 성부나 갖고 있는

푸가의 경우에 요렇게 혹은 조렇게

성부를 코디해 보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

 


영모야, 힘들어?

이미 작곡해 놓은 푸가 치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새로 푸가를 작곡하는 사람들도 있어.

대-단-하-지?

그리고 그걸 주제로

호서대 작곡 전공의

“바흐에게 길을 묻다”라는 음악회도 있어.

자-랑-스-럽-지?

 


2005년 12월 15일

허원숙 선생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