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2008-11 인터네셔널 피아노 허원숙 연주평 (장인종)
2008-11-09 14: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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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허원숙 피아노 독주회

 

10월 11일 세종체임버홀

쇼팽 4개의 발라드, 브람스 4개의 발라드 op.10, 리스트 발라드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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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허원숙은 할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오랫동안 음악방송의 진행자를 맡았을 테고, 이날 연주회의 제목조차 ‘나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로 명명했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을 위해 이번 공연에도 단지 피아노만 준비되지 않았다. 혹자는 피아니스트는 연주로 이야기하면 되는 것이라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허원숙의 이야기는 단지 연주되는 음악에 달아놓은 주석이 아니다. 그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음악과 세상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의 결과이면서 음악을 수용하는 모든 이들과의 소통 문제에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별도의 논의가 필요한 이야기겠지만, 근대 한국 사회의 궤적은 세상과 적극적으로 교통하고자 했던 여성들에게 남성성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허원숙의 짧은 머리와 연주복 바지가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남성성”은 무엇보다도 허원숙의 피아노에 배어 있었다. 1부에서 연주된 쇼팽의 발라드 전곡은 격렬하고 거칠면서도 당당함으로 채워진 연주였다. 때론 그러한 면면이 악곡을 무리하게 끌고 가기도 했지만, 한순간도 침잠하는 법 없이 적극적으로 발걸음을 떼어나가는 패시지들은 강건한 총체를 이루었다. 허원숙의 발라드는 쇼팽의 발라드가 아닌 상드의 발라드가 아니었을까.

 

2부에서는 브람스의 발라드에 대한 허원숙의 패설에 이어 <발라드1번, op.10>의 배경이 된 헤르더의 시 <에드워드>를 연극배우 박혜진이 낭송했다. 혹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되지 않을까 했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시 낭송은 한 작품에 대한 실감나는 해설의 역할 뿐만 아니라, 공연장내에 낭만주의 시대의 감성과 분위기를 일순간에 형성 할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다. 그로 인해 이어서 연주된 브람스 <발라드, op.10> 의 4곡과 리스트 <발라드 2번>은 청중에게 더욱 생생한 감성을 전달해 냈다. 예술은 이러한 지점에서 이렇게 교류하는 법이다.

 

공연 프로그램 표지에는 연주자의 50세 나이를 말하는 빨간 테두리의 동그라미 표시와 함께 ‘이제 인생의 시속, 50 km’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세월은 가속도가 붙어 흘러간다. 하지만 간단한 물리학 공식을 상기한다면 생의 후반의 시간에는 더 큰 힘과 의미가 발생하지 않을까. 훗날에 들려줄 ‘60세 미만 청취 불가’의 이야기는 무엇일지 기대하게 하는 ‘50세 허원숙’의 공연이었다.

 

글. 장인종 (음악칼럼니스트)

인터네셔널 피아노 2008-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