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2007-01 월간 인터내셔널 피아노) 새로운 예술적 에너지를 채운 시간...허원숙 독주회평
2007-11-26 13:28:07
관리자 조회수 2486

2007-01 월간 인터내셔널 피아노

<concert review>


새로운 예술적 에너지를 채운 시간

허원숙 피아노 독주회


벌거숭이 남자가 매달려 있는 나무 십자가에 ‘울며 애통하며’라는 타이틀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프로그램을 넘기자 연주에 앞선 한 편의 시들이 눈에 들어왔다. 역설적인 비유로 변주곡을 논하는 시와 태양과 비바람과 어둠을 묵묵히 견디며 그곳에 홀로 외로이 서 있는 십자가를 그리는 시였다. 피아니스트 허원숙의 서른 번째 피아노 이야기 ‘울며 애통하며’는 이렇게 시작했다.

피아니스트 허원숙이 단연 뛰어난 기량으로 연주한 멘델스존의 <진지한 변주곡>은 ‘울며 애통하며’의 서곡이었다.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는 결코 쉽게 풀어낼 수 없는 인생의 난해함을 그리는 듯 했다. 이어진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애틋하고 간절한 심정으로 사라져가는 생명을 노래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리스트의 <바흐의 모티브 ‘울며 애통하며’에 의한 변주곡>은 상처받고 쓰러져 우는 인간의 애절한 모습을 보는 듯했다.

오랜만에 듣는 허원숙의 연주는 시종일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의 연주는 결코 가볍지 않고 항상 진지했다. 물론 오늘의 연주도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울 만큼 진지했다. 그러나 오늘은 무언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조금 더 엄숙한 면도 있었지만 반면에 시적이고, 다분히 유머와 끼가 배어 있음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조금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여유로운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그동안 꼭 필요하지 않았던 짐들을 많이 비운 듯하다. 그 속에 새로운 예술적 에너지가 채워지고 이로 인해 생명력이 보다 충만해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

울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마친 허원숙의 서른 번째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춥고 눈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이 겨울 우리 마음의 빈 구석을 채워주는 소중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글_ 정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