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1997-11 음악춘추) 커버스토리:피아니스트 허원숙 -피아노의 매커니즘 담아내는 에메랄드 빛 연주자
2007-11-26 13: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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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1 음악춘추)

 

커버스토리:피아니스트 허원숙

 

-피아노의 메커니즘 담아내는 에메랄드빛 연주자

 

                글:염신아 기자 (음악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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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제나 당당하다. 진지하면서도 자만하지 않는 자신감 때문일까.

무대 위에서 생활 속에서 신념을 가지고 펼쳐보이는 이야기들이 진솔하기 때문일까. 이 모든 이유에 덧붙여 무엇보다도 그를 당당하게 하는 것은 남보다 두 배 노력하고 철저히 탐구하는 자세와 지치지 않는 성격으로 부지런히 생활하는 자세 때문일 것이다.

 

무대를 열 때마다 커다란 연주회를 하나의 작품으로 생각하며 독특한 색깔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온 피아니스트 허원숙 (호서대학교 부교수 앙상블 프리즈마 단원). 이러한 수고가 일구어낸 결과는 음악계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며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1993년 음악동아 '1993년을 빛낸 국내 베스트 연주가' 선정 KBS 기획 '한국의 연주가' CD 제작 독주회 실황 CD 제 1,2집 출반 등에서 이미 자신을 부각시키며 1997년에는 4월의 브람스 음악회를 시작으로 매 월마다 특색있는 프로그램으로 이미지를 구축한 것이다.

 

피아노가 마냥 좋았던 진지한 음악도

 

서울대 음대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졸업하고 비오티 발세시아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 비오티 국제 콩쿠르 포촐리 국제 콩쿠르 마르살라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입상하였다. 이탈리아 빈 러시아에서 순회 독주회, 초청 독주회 협연 및 다수의 실내악 연주와 루마니아 오라데아 국립교향악단과의 협연을 비롯하여 교육용 악보 <간추린 소나티네 앨범> <피아노 명곡집> <피아노 소곡집> <어린이 바로크> <바흐 인벤션> 등 주석및 편집 등의 화려한 프로필과 달리 피아노와의 처음 만남은 평범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재능이 있으니 음악 공부를 시작해 보라'는 선생님의 권유로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어요. 장래 희망을 말할 기회가 있으면 막연하게 피아니스트라고 대답했지만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전공을 생각 못했지요."

 

주위에 음악에 대한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어서 어떤 선생께 배워 어느 학교를 가야할 지 막막했다. 다행히 타고난 재능과 스승을 잘 만나 무리없이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때까지 좋아하는 피아노에 파묻혀 지냈다. 어떤 일이건 시작하면 대충 못 끝내는 성격인지라 습관적으로 열심히 했지만 피아노를 치는 어느 누구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최선을 다했다. 대학을 마쳤지만 음악을 행한 채워지지 않는 충족감은 허탈하기만 했는데 한마디로 치아노를 잘 치고 싶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유학이었고 미국보다 진득하게 공부할 수 있는 유럽을 선택했다.

 

"손가락만 잘 돌아가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작게 치더라도 노래가 자연스럽게 흐르는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가 되고 싶었어요. 나름대로 여러 책을 보면서 공부해도 잘 모르겠고 답답하더라구요. 유럽의 여러 학교에 원서를 접수했는데 독일 쾰른 음대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지요."

 

막상 쾰른 음대에 입학했지만 해야 할 공부는 산더미같은데 2년 뒤의 졸업 걱정부터 해야 하는 분위기에 갈등했다. 대학 4년을 졸업하고 유학 2년을 마쳐도 배운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너무 한심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학업에 일정한 기간을 둘 수는 없지만 시간 투자를 많이 해서 연구하며 알차게 배울 수 있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다시 선택했고 비엔나 서머 캠프로 이미 익숙한 그 곳에서 음악에 흠뻑 취해 8년 동안 열심히 했다. 아직도 공부는 안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학교의 채계적인 시스템 속에서의 공부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충실히 생활하는 가운데 한 가지 욕심이 더해졌다. 같은 클래스에 있는 친구들이 콩쿠르를 통해 부쩍 성장해 있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동급생들의 탈바꿈이 부러웠고 스스로 잘 친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지만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어 콩쿠르에 출전했다. 비오티 발세시아, 비오티, 포촐리, 마르살라 국제 콩쿠르 등에 참가하면서 진짜 값진 경험을 했다. 우선 규모가 큰 레파토리의 준비과정에서 작품을 폭넓게 보는 안목이 생겼고 같은 목적으로 모인 경쟁자들과 이야기하며 여러 나라 음악도들의 관심사를 들을 수 있었다.  심사위원들의 조언, 평가를 받으며 차츰 콩쿠르에 재미가 붙었고 선생과 1;1의 10시간 수업보다 무대 위 20~30 분 동안 많은 것을 배워 방학 때마다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새 음악적으로 많이 성숙한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끼며 귀국한 그는 쉼없는 음악 행보를 시작한다.

 

'변화하는 무대 그 안에서 나만의 특징을 찾도록 하라'

 

"처음 귀국 독주회는 시대별로 준비해서 '이렇게 공부했습니다'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꾸몄습니다. 연주회를 끝내고 앞으로 단순히 피아노만 잘 치는 것이 아니라 내 스타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피아니스트 허원숙을 떠올리면 개성있는 연주자라는 평가를 받고 싶었던 거죠. 대중 가수 서태지 김민기의 색채가 있듯이요. 그래서 다양한 레퍼토리이지만 일관된 통일성을 가지고 형식을 벗어난 프로그램을 준비해 무대를 만들어 왔습니다."

 

지금까지 1년에 4번의 독주회와 그외 여러 주제로 마련되는 음악회를 통해 변하지 않는 의지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무대가 변하고 발전하지만 그 안에서 자신만의 특징을 찾도록 하라'는 어느 음악인의 한 마디가 큰 보탬이 되었다. 해마다 작곡가를 늘려가면서 레퍼토리를 넓혀갔는데 지금까지 몰랐던 곡이라도 연주회 구성에 필요하면 공부해서 곡목으로 선정하는 열정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고정 관념이 생기지 않고 정체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새롭게 무대를 바꾸고 프로그램 배열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정성을 쏟았다.

 

이러한 노력은 스스로의 발전 뿐만 아니라 그의 독주회를 찾는 아마추어 음악인에게까지 영역이 확대된다. 클래식 음악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이라도 친숙하게 음악을 즐기며 연주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오리엔테이션을 생각한 것이다. 직접 작성하여 곁들인 프로그램 해설은 음악회 5분 전에 읽는 성의만 갖는다면 어렵다고 생각되는 클래식을 쉽게 감상할 수 있는 방향 설정이 되었다. 연주자와 객석이 편하게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반응이 좋아 어렵고 귀찮지만 계속하고 있는 작업이다. 일련의 활동은 한 명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청중에게 클래식에 대한 설레임과 거부감을 주지 않고 다가가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어요. 쉬운 음악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50~70대도 수준 높은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감상 수준을 끌어올리는 연주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곡 설명과 전체적인 통일성을 생각하고 음악회를 구성해야 하는데 여간 고된 작업이 아니예요. 그러나 게을리 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되어 작업을 늦추지 않으려 합니다."

 

그를 좋아하는 팬들은 이런 노력에 찬사를 보내며 어김없이 연주회장을 찾는다. 클래식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평이다. 한마디로 그의 의도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확신 심어주는 지도자로 다방한 재능인 육성 전력

 

피아니스트 허원숙. 그는 이제 자신만의 색채를 가진 개성있는 연주자이며 그만의 노하우를 가진 현명한 피아니스트이다. 치고 싶은 곡은 많지만 참으며 나를 나타낼 수 있는 작품만 연주하여 스스로를 다치지 않게 보호할 줄 아는 것이다. 절대 무리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절제된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그.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신의 실력에 견디기 힘들 떄도 있지만 그는 슬럼프를 초월한 연주자라고 말해야 할까.

 

"항상 저는 2류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해요. 내가 최고라는 자만심을 가지면 현실적으로 안받쳐주는 부분때문에 슬럼프에 빠지곤 하는데 '지금 안되면 나중에 잘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연습하며 무대에 서면 결코 슬럼프를 겪지 않습니다."

많은 연륜이 쌓이지는 않았지만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피아노와 동거하면서 테크닉과 전체적인 느낌이 나아지는 변화를 겪고 있다. 그래서 조금씩 만족하고 있다.

 

이런 만족감에 편승하여 앞으로 더욱 더 정성을 쏟아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교육자로서의 제자 양성이다. 소신을 갖고 가르치는 학생들이 음악적인 부분에서 혼돈때문에 좌절하지 않도록 좀 더 확신을 심어 줄 수 있는 교육자가 되고자 한다. 지도자로서가 아닌 인생 선배로서도 친밀해지고자 함께 영화를 관람하며 대화도 많이 나눈다. 덧붙여 요즘 학생들이 공부 이외의 것에 기본적인 소양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안타까워 공부 1등이 인생 1등이 아님을 항상 강조하며 연습 때문에 다른 부분을 소홀히 하지 말고 피아노 이외의 것도 잘 하는 음악인이 되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피아니스트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극성스럽게 배웠으면 아마 질려서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지금 그는 질리도록 열심히 피아노에 매달려 살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꾸준히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독주회를 끝내고 그동안 미루었던 일을 하다보면 1~2달이 금방 가버려 빨간 신호가 오기도 하는데 그 때마다 각성하며 나태해지지 않도록 채찍질을 늦추지 않는다.

 

완벽에 완벽만을 기하는 독주회는 CD로 만들어져 2집까지 발매되었다. 스튜디오 녹음이 아닌 실황을 앨범으로 만드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무대에서 뻔뻔해지지 않도록 실황 음반을 만들고 있어요. 음악회 오는 사람만 제 연주를 듣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저의 음악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구요. 1집은 고전과 현대의 조합, 2집은 피아니즘을 모아 주제별로 꾸몄습니다. 3집도 독주회 녹음이 모아지면 모티브를 만들어 출반할 겁니다."

 

10월 2일 호서대학교 예체능대학 연주홀에서 호서대학교 발전 기금 모금 연주회 두 번 째 시리즈로 피아노 독주회를 마쳤고, 독주 무대와 더불어 앙상블에도 매력을 느끼고 있는 가운데 10월 28~30일까지는 이예찬 바이올린 독주회에 피아노로 호흠을 맞추어 역시 허원숙이라는 갈채를 받았다. 성공적인 무대를 뒤로 하며 11월 1일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상해시립교향악단과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공연한다. 교향악단과는 오랜만의 협연이라 기대가 되고 설레인다. 12월에는 슈베르트와 1997년의 마지막을 함께 할 예정이다. 그의 탄생 2백주년을 기념해 연주회를 여는데 슈베르트의 작품은 청중과 연주자 모두에게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다양하게 프로그램을 구성할 계획이다.

 

어떤 상황도 핑계대지 않는 연주자가 되고자 하는 허원숙. 몸이 두 개 있어도 해내기 힘든 일들을 억척스럽게 해내는 그를 보면 환갑 잔치 음악회는 완성된 그릇 속에 피아노 매커니즘의 진국만을 담아내는 그의 음악이 들리는 듯하다.

 

글:염신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