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ORMANCES 2011-04-06 금호아트홀--허원숙 피아노 독주회
2011-02-10 12:19:25
허원숙 조회수 2769
 


 
 
 

연주에 앞서



날 것 그대로의 정찬(正餐)


저는 오늘 여러분을 저녁식사에 초대합니다.

식탁 위에는 아무런 장식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물론 흔한 식탁보도 깔려있지 않습니다.

그저 투박한 그릇 안에 날 것 그대로의 식재료만 올려놓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날 것 그대로의 음식을 맨 손으로 움켜쥐고 드셔야만 합니다.

불편해서 어쩌죠.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익히지 않고 가공하지 않은 질감과 맛에 여러분은 처음엔 놀라고 당황하시지만,

군더더기 없는 본질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차츰 본연의 모습에 취하게 되실 것입니다.


베토벤의 32개의 변주곡은 오로지 베토벤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작품입니다.

당시 음악에서 널리 사랑을 받던 음악 장르였던 변주곡은

기존의 완성된 노래에 덧입힌 화려한 수식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기존 주제와는 전혀 다른, 극도로 단순한 음계에

당시 잊혀져갔던 샤콘이라는 춤 리듬을 합쳐

32개의 변주로 광대하고 비장한 드라마를 펼쳐놓습니다.

주제로 사용된 소재는 이미 날 것 그대로인데

그 변주 또한 치장과 수식과는 거리가 먼,

치밀한 계산과 설계로 농축된 본질 그 자체들입니다.

그것들을 베토벤은 곡 한 가운데의 C장조군(群)을 중심으로

양파 단면의 모습처럼 대칭적으로 치밀하게 심어놓았습니다.


32개의 변주곡과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는

같은 무렵에 작곡하기 시작한 <운명 교향곡>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끓어오르는 용암을 가슴에 품은 화산과도 같이,

투쟁적이며 열정적이며 격렬한 이 작품의 제1악장의 저변에는

<운명의 동기>가 때로는 압도적으로, 때로는 냉소적으로 깔려있습니다.

변주곡 형식의 제2악장은

슬픔과 투쟁과 열정이 울부짖는 날 것 그대로의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 사이에서

안식과 위로로 중심의 균형을 잡아줍니다.


리스트의 소나타에는 그 바탕에 괴테의 <파우스트>가 깔려 있습니다.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의 아름답고 처절한 사랑 이야기 이면에는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의 은밀한 거래와, 그로 인한 범죄와 타락과 비극이 있습니다.

그리고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고 구원을 받는 극적인 반전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상징하는 5개의 유도동기같은 선율은

곡 전반을 누비며 때로는 날 것 그대로,

때로는 화려한 수식으로 그 모습을 감추어 등장합니다.


program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32 Variations in C minor, WoO 80

(베토벤: 32개의 변주곡 C단조)


Piano Sonata in F minor, op.57

"Appassionata"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F 단조, 작품 57, “열정”)

1.Allegro assai

2.Andante con moto

3.Allegro ma non troppo


intermission


Franz Liszt (1811-1886)

Piano Sonata in B minor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 단조)

 

 

 

Epilogue



어찌할 바 모르는 세 곡을 가지고

얼마 전부터 씨름을 하였다.

너무 커서 어찌해야할지...

너무 무거워서 어찌해야할지...

그런데

사실,

가장 힘들었던 이유는

너무 날(生) 것들이라

어찌해야할지...


감정을 걸러 표현한다는 것.

참 어렵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걸러서 표현하는 것들은

언제나 해 왔던 것들이다.

교육이라는 포장으로 가려지고

교양이라는 리본으로 장식되어서

어쨌든 걸러져서 표현되었던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 날 것을 그대로 먹으려한다.
그래서

어려움이 컸다.


가슴 속 응어리진 불덩어리를

꺼내보고 싶다.
만지고 싶다.

그 불에 데고 싶다.


하지만 누가 말했던가.

“냉정함을 잃지 않는 사람만이 열정 소나타의 미칠 듯이 날뛰는 패시지나

격렬하게 움직이는 선율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힘을 느낄 수 있다” 라고.

불을 표현하려면

일단 얼음을 손에 쥐라.

그것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