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ORMANCES 2006-12-15 제30회 독주회 <울며 애통하며>
2007-11-27 12:57:56
허원숙 조회수 2178

 

 

W o n - S o o k  H u r  P i a n o  R e c i t a l

허원숙의 서른 번째 피아노 이야기 “울며, 애통하며”.....Weinen, Klagen


2006년 12월 15일 늦은 8시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

주최:라인아트매니지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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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에 앞서...

생트 오를랑(Saint Orlan) 이라는 프랑스의 작가가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멀쩡한 얼굴을 수술대에 올려
성형외과 의사들로 하여금 그녀의 디자인대로
자르고 깎고 꿰매게 하여
모나리자의 이마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뺨 같은
최고의 미를 조합한 얼굴로 만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미를 합해 놓았다는 그녀의 얼굴은
아름답다기보다는 기괴하기가 이를 데 없었고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이마에 임플란트를 넣어
조그만 뿔 같은 혹이 불거져 나온
엽기적한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생트 오를랑은
최고의 미를 모델로 아홉 차례나 뜯어고친 얼굴이
최고의 미의 완성이 아닌 기괴함이 되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고
또 이마에 흉측하게 뿔처럼 돌출한 혹도
인종에 따라서는,
그리고 시대에 따라서는
최고의 아름다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역설합니다.

작곡가에게 변주곡이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원곡에 뭔가를 더하고 빼고 나누고 곱하는 것일까요.
복선으로 깔아 놓은 반복의 의미인가요.
드러내고 반복하면
속내를 들켜버릴 것 같은 조바심에
더하고 빼고 자르고 붙이고
형체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어쩌죠.
이미 다 알아버렸는데...

아픔이 많은 멘델스존의 마음도
사랑으로 넘치는 브람스의 마음도
죽음을 준비하는 라흐마니노프의 마음도
사랑하는 딸과 이별하는 리스트의 아픔도
다 알아버렸는데,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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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AM


멘델스존 : 진지한 변주곡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
Variations Sérieuses op.54


브람스 :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Johannes Brahms (1833-1897)
Variationen und Fuge über ein Thema von Händel, op.24


intermission


라흐마니노프: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Sergei Rachmaninoff (1873-1943)
Variations on a Theme of Corelli, op.42


리스트 : 바흐의 모티브 “울며,애통하며”에 의한 변주곡
Franz Liszt (1811-1886)
Variationen über das Motiv von Bach: Weinen, Kla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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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허원숙 (Hur, Won-Sook)

서울음대 기악과 졸업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피아노과 졸업 및 동대학 실내악과 수학
발세시아 국제 콩쿠르 1위 입상
비오티 국제 콩쿠르, 포촐리 국제 피아노 콩쿠르, 마르살라 국제 콩쿠르 입상
루마니아 오라데아 국립교향악단, 상해방송교향악단, 팔레르모 유스 오케스트라,
충남교향악단, 마산시립교향악단, 천안시립교향악단, 강남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협연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국제 음악 페스티벌 초청 독주회
KBS FM 기획 <한국의 음악가> CD 출반
독주회 실황 CD 제1,2집(서울음반) 출반
실황 CD "바람아 너는 보았니...“ (아울로스 뮤직) 출반
KBS FM 의 음악작가 역임
현재 호서대학교 교수
현재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에서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 코너 진행중
홈페이지 www.hur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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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ologue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집이었더랬습니다.
소박하게 하얀 색으로 칠을 한
그런 집이었더랬습니다.
무심코 그 집 모퉁이를 돌았습니다.
아무 것도 없을 것만 같았던 하얀 벽에
나무 십자가가 붙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엔
반벌거숭이 남자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교회 건물 안에 모셔놓았으면 딱 좋을
그 남자를
바람맞는 빈 벽에 덩그라니 붙여놓기가 민망했던지
어처구니없게도
십자가 위에는 나무로 덮개를 해 놓았습니다.
해라도 가려질까
비라도 막아줄까
그리고 그 앞엔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가로등 하나가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습니다.
밤이면 그 빛이
위로가 될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나라는 인간은
어쭙잖은 덮개이며
황당한 가로등이라는 것을.
그리고 사실
십자가와 반벌거숭이 남자가 아니라
그 덮개며 가로등이
비를 피할 수 있고,
밝은 눈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그 많은 이야기를 해 주려고
오늘도 그 십자가는 묵묵히
태양을 이겨내며
비바람을 맞아가며
어둠을 참아가며
견디고 있나봅니다.
울며... 애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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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 월간 인터네셔널 피아노


새로운 예술적 에너지를 채운 시간
허원숙 피아노 독주회

 

벌거숭이 남자가 매달려 있는 나무 십자가에 ‘울며 애통하며’라는 타이틀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프로그램을 넘기자 연주에 앞선 한 편의 시들이 눈에 들어왔다. 역설적인 비유로 변주곡을 논하는 시와 태양과 비바람과 어둠을 묵묵히 견디며 그곳에 홀로 외로이 서 있는 십자가를 그리는 시였다. 피아니스트 허원숙의 서른 번째 피아노 이야기 ‘울며 애통하며’는 이렇게 시작했다.
피아니스트 허원숙이 단연 뛰어난 기량으로 연주한 멘델스존의 <진지한 변주곡>은 ‘울며 애통하며’의 서곡이었다.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는 결코 쉽게 풀어낼 수 없는 인생의 난해함을 그리는 듯 했다. 이어진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애틋하고 간절한 심정으로 사라져가는 생명을 노래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리스트의 <바흐의 모티브 ‘울며 애통하며’에 의한 변주곡>은 상처받고 쓰러져 우는 인간의 애절한 모습을 보는 듯했다.
오랜만에 듣는 허원숙의 연주는 시종일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의 연주는 결코 가볍지 않고 항상 진지했다. 물론 오늘의 연주도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울 만큼 진지했다. 그러나 오늘은 무언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조금 더 엄숙한 면도 있었지만 반면에 시적이고, 다분히 유머와 끼가 배어 있음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조금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여유로운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그동안 꼭 필요하지 않았던 짐들을 많이 비운 듯하다. 그 속에 새로운 예술적 에너지가 채워지고 이로 인해 생명력이 보다 충만해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
울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마친 허원숙의 서른 번째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춥고 눈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이 겨울 우리 마음의 빈 구석을 채워주는 소중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글_ 정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