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ORMANCES 2002-12-05 제25회 독주회 <___ 다시 부르는 노래>
2007-11-27 12:28:10
허원숙 조회수 2906

 

 

 

허원숙의 피아노 이야기

<___________다시 부르는 노래>

2002년 12월 5일 (목) 오후 7시 30분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

주최: pianoforte
협찬: 한국 피아노 복원연구소
아울로스 뮤직

 


허원숙의 ‘_____ 다시 부르는 노래’에 부쳐


글. 정행순(음악춘추 기자)

 

12월. 모두들 한해를 마무리하느라 바쁜 이즈음, 피아니스트 허원숙은 반대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느라 자못 부산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언제나 큰 기대를 갖게 하던 그의 여느 무대보다 더한 기대와 감동을 싣고 우리를 찾는다.
평상시 소탈하고 온갖 제스처를 섞어 가며 우스개 소리도 잘하는 허원숙이지만 음악을 앞에 두고는 ‘섣부른’, ‘대충대충’이란 수식어는 그에게 감히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연주에 대한 강한 책임감의 발로이기도 하며 그의 연주를 들으러 오는 청중에게 그가 깍듯한 예우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무대도 예외일 수 없다. 의미가 담긴 레퍼토리 선곡에서부터 연주와 관련된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 그의 고민의 밤을 함께 하지 않은 것이 없기에.
어딘가 애처로운 사연을 품은 듯하지만 중단된 희망이 부활하는 이중적 의미가 풍기는 ‘_____ 다시 부르는 노래’를 이번 연주의 주제로 정하고 허원숙은 그간 담아둔 마음의 속내를 그의 분신인 피아노를 통해 토로할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켜있다거나 너무도 사적인 넋두리로 우리를 지겹게 만들거나 하지 않을까 염려할 필요는 없다. 분명 자신에게 철저하고 굳은 강단의 소유자인 ‘허원숙’이기에 그의 음악도 내적으로 충분히 다듬고 정화되어 결정체로 승화시켜 우리에게 내보이는 것이 분명하기에 말이다. 또한 감정의 남발이나 뛰어난 쇼맨쉽으로 청중을 현혹시켜 억지 공감을 강요하는 연주가 아닌 절제의 미학과 여백의 미덕이 주는 여운이 얼마나 오래도록 가슴을 치는지 우리는 일찍이 그의 연주에서 보아왔으니...
피아니스트 허원숙은 다시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간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털어놓겠다고 말한다. 그 절실했던 이야기를, 눈 속에서도 은은한 자태를 드러내는 에델바이스의 이야기에 이제 귀를 기울이자.


 

피아니스트 허원숙 (HUR, Won-Sook)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졸업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피아노과 졸업 *동대학 실내악과 수료 *비오티 발세시아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 *비오티 국제 콩쿠르 입상 *포촐리 국제 피아노 콩쿠르 입상 *마르살라 국제 피아노 콩쿠르 입상
*루마니아 오라데아 국립교향악단, 상해방송교향악단, 충남교향악단, 마산시립교향악단과 협연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국제 음악 페스티발 초청 독주회 *실내악 연주 다수
*KBS FM 기획 <한국의 음악가> CD 출반 *독주회 실황 CD 제1, 2집(서울음반), *실황 CD “바람아, 너는 보았니...”(아울로스 뮤직) 출반
현재 호서대학교 교수

 


J.S.Bach-Busoni........Chaconne in D minor, BWV 1004

F.Chopin................... Berceuse, op.57

                ................Barcarolle, op.60

                ................Polonaise-Fantaisie, op.61

IeDon Oh .................The Rhodora :
                               On Being asked, whence in the flower? (2002)

S.Rachmaninoff ........6 Moments Musicaux, op.16
                                  1. Andantino
                                  2. Allegro
                                  3. Andante cantabile 
                                  4. Presto
                                  5. Adagio sostenuto
                                  6. Maestoso

 

<연주에 앞서...>

 

정신 없이 달렸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초록 신호등을 따라잡을 듯이 달렸습니다.
내내 초록색일 것 같은 신호등은 얄궂게도 빨간색으로 바뀌었습니다.
“나 원 참, 하필 내 앞에서 신호등이 바뀔 게 뭐람...”
원망 반, 조바심 반으로 길 한복판에 멈추어 섰습니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초록색 신호등이 들어왔습니다.
부웅~
새로운 출발과 함께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합니다.
“내 앞에서 빨간 신호가 들어온 게 아니라,
내 앞에서 초록 신호가 시작되는구나....”

시인 김경미 님의 시 중에 <흉터>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 . . . 빈 옷처럼 겨우 일어나 창밖을 내다본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온갖 꽃들이 다 제 몸을 뚫고 나와 눈부시다
나무들은 그렇게 제 흉터로 꽃을 내지 제 이름을 만들지
내 안의 무엇 꽃이 되고파 온몸을 가득 이렇게 못질 해 대는가. . .”

오늘 연주하는 작품들을 “_____ 다시 부르는 노래”라는 끈으로 묶어봅니다.
바흐의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D 단조 중 샤콘느는 부조니에 의해서 피아노 독주곡으로 다시 탄생합니다.
1828년 슈베르트가 발표한 <악흥의 순간>은 그로부터 68년 후 라흐마니노프에 의해서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탄생합니다. 곡의 제목과 즉흥성은 슈베르트로부터 빌어왔지만, 음악의 구조나 규모는 스물 세 살의 젊은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것이었지요.
오이돈의 소프라노와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노래 중 두 번 째 곡인 <...if>는 피아노를 위한 패러프레이즈 <로도라, 왜 그 꽃이 피어났을까 라는 질문에>로 새롭게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거기에, 쇼팽의 세 작품들은 같은 반주형태를 바탕에 깔고 끊임없이 변신해가며 나타나기도 하고 (자장가, 뱃노래), 틀 안에 짜여져 늘 정돈되고 탄탄할 것만 같은 폴로네즈를, 형식과 틀의 울타리를 넘어선 자유분방한 환상곡으로 휘저어 놓기도 (환상 폴로네즈) 합니다.

그래요.
다시 시작합니다.
빨간 신호등에서 멈춰 섰어도, 기다리면 다시 초록 신호등이 되는 것처럼.
그 초록 신호등이 나에게 제일 먼저 길을 열어주는군요.
그리고 생각합니다.
내 안의 무엇이 꽃이 되고 싶어 내 몸에 흉터를 내고 뚫고 나올 것인지...
그리고 다시 노래를 부릅니다.

 


<프로그램에 관하여>

오늘 연주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다시”라는 말입니다. 그 뜻은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끊어진 것을 “다시” 연결하여 미래로 나아간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 두 가지 복합적인 의미를 생각하면서 작품을 골랐습니다.
과거로부터 소재나 제목, 아이디어를 빌어온 작품으로는 부조니의 <샤콘느>, 쇼팽의 <환상 폴로네즈>, 오이돈의 <로도라...>, 라흐마니노프의 <악흥의 순간>를 골랐고, 한 작품 안에서 같은 아이디어가 계속적으로 반복하여 나타나는 작품으로는 쇼팽의 <자장가>, <뱃노래>를 골랐습니다. 반복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샤콘느>도 4마디, 혹은 8마디를 주기로 똑같은 음형을 반복하고 있군요.
쇼팽의 <자장가>와 <뱃노래>에서는 여러분과 함께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자장가>에서는 꿈으로의 여행, <뱃노래>에서는 연인과의 행복한 물위의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계속 똑같은 화성을 반복하여 최면을 거는 <자장가>는 마지막 부분에 드디어 다른 화성을 펼쳐 보입니다. 만일 그 전에 잠이 든다면 자장가로서의 임무는 성공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마지막 반전은 잠들어 놓치기에는 너무 아름답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뱃노래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뱃노래와 서양의 뱃노래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의 뱃노래는 노동요이고, 서양의 뱃노래는 사랑의 노래라는 점일 것입니다. 쇼팽의 <뱃노래>를 들으면, 출렁이는 파도의 리듬을 따라, 쳐다보면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이 작열하는 태양이 내리쬐는 첫 장면, 고이 간직해둔 아름답고 소중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 그리고 지나간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이 연상됩니다.
쇼팽의 <환상 폴로네즈>에서는 폴로네즈 리듬과 함께, 여백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환상곡을 경험하십시오.
오이돈의 <로도라...>는 같은 제목으로 된 에머슨의 시를 소재로 먼저 소프라노와 피아노를 위한 가곡으로 작곡했다가, 피아노를 위한 패러프레이즈로 개작한 것입니다. 작품설명보다는 에머슨의 시를 실어달라는 작곡자의 주문에 따라 시만 소개해 드립니다.

 

The Rhodora
On Being Asked. Whence Is the Flower?
-Emerson

In May, when sea-winds pierced our solitudes,
I found the fresh Rhodora in the woods.
Spreading its leafless blooms in a damp nook,
To please the desert and the sluggish brook.
The purple petals, fallen in the pool,
Made the black water with their beauty gay;
Here might the red-bird come his plumes to cool,
And court the flower that cheapens his array.
Rhodora! if the sages ask thee why
This charm is wasted on the earth and sky,
Tell them, dear, that if eyes were made for seeing,
Then Beauty is its own excuse for being;
Why thou wert there, O rival of the rose!
I never thought to ask, I never knew;
But, in my simple ignorance, suppose
The self-same Power that brought me there brought you.

 

가끔씩 어떤 충동을 느끼는 순간이 있지 않으십니까? 망가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적도 있고, 내가 아닌 나를 꿈꾸는 충동을 느끼는 적도 있고, 때로는 죽음의 충동을 느낄 수도 있겠지요. 라흐마니노프의 <악흥의 순간>은 그런 의미로 해석하고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여러 가지 충동을 느낄 수 있는 순간 중에서 라흐마니노프는 음악에 빠져들고 싶은 바로 그 순간을 움켜쥐었습니다. 제1,3,5곡은 느리면서 관조적인 내면의 음악, 제 2,4,6곡은 빠르고 역동적이며 폭발할 것만 같은 열정적인 음악으로 배치하였는데, 전곡을 통해 공통적으로 어떤 작은 단상들이 즉흥곡처럼 꼬리를 물고 거칠게 스케치되어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악흥의 순간>연주가 끝나고 나면, 저는 마지막으로 여러분 가슴에 아름다운 곡을 한 곡 더 선사할 예정입니다. 열다섯 살 먹은, 눈동자가 맑고 조숙한 소년의 작품인데요, 작곡자 이름과 곡명은 연주할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마우신 분들>

초전박살, 유비무환... 다시 건강한 모습을 찾게 해 주신 국립암센터 이은숙 박사님.
에머슨의 시가 아름다워? 더 멋진 음악을 붙여주지... 작곡가 오이돈 교수님.
예쁘게 찍어줄까, 자신있게 찍어줄까... 멋진 모습으로 찰칵! 사진작가 주명덕 선생님.
시집 <쉬잇, 나의 세컨드는>속에 담긴, 가슴 에이는 시를 허락해주신 시인 김경미 님.
아름다운 글과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채워주신 음악춘추의 정행순 기자님.
뭘 도와드릴까요... 아울로스 뮤직의 임용묵 이사님과 디자이너 김윤경님.
뚝딱 뚝딱... 말씀만 하십쇼... 한국 피아노 복원연구소 김두회 님.
항상 곁에서 용기를 주는 친구들.
늘 친구같은 우리 어머니, 아 어머니....
................당신 덕분입니다.


 

글.구성:허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