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ORMANCES 1996-05-20 제15회 독주회
2007-11-27 11:11:32
허원숙 조회수 2663

1996-05-20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프로그램:


베토벤 론도, 작품 51-1
브람스 헨델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작품 24
리스트 단테를 읽고
히나스테라 소나타, 작품 22

 

<연주에 앞서...>

 

자신의 얘깃거리가 많은 사람이 있는 반면,
남이 꺼낸 소재를 가지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연주되는 작품들은 이야기의 소재는 외부로부터 가져왔지만
작곡자 자신의 언어로 새로 구성된 완벽한 건축물의 결정체입니다.

 

브람스는 헨델의 쳄발로를 위한 조곡에서 주제를 빌어와 25개의 변주곡과 푸가를 완성하였습니다.
이 변주곡 중에는 헝가리 민속음악인 라싼과 프리스카가 있는가 하면 (제13,14 변주),
이태리의 시칠리아나가 있고 (제19변주),
카논이 있는가 하면 (제 6,16 변주),
프렌치 호른의 합주가 있으며 (제 7 변주),
뮤제트 (제22변주),
교회의 차가운 벽을 울리며 맴도는 성가의 메아리 (제9변주)도 들을 수 있습니다.
브람스 특유의 당김음 처리, 넓게 펼친 화음, 머뭇머뭇 할 말도 다 못하고 담아두는 소중한 노래 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는 그 만의 음악 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리스트는 그의 <순례의 해> 두번째 작품인 이태리 편에서
역대의 문호들의 작품을 감동어린 필체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단테를 읽고>는
빅토르 위고 단테의 신곡을 읽고 난 후에 쓴 시의 제목을 따서 만든 작품으로,
연옥, 지옥, 천국으로 구성된 사후의 세계가,
죽음의 공포와 절규를 비롯하여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의 사랑의 이야기,
천국의 합창 및 승리의 환회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작곡가 히나스테라의 1952년도 작품인 소나타는
그 소재가 민속 음악적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습니다.
타악기적인 성격이 강한 기듬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박자는
현대음악이 갖고 있는 모순적 요소라 할 수 있는 원시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3악장에 잠깐 비치는 12음기법의 표현은 시대적인 풍자인지 아니면 문화적 수용인지 모르지만,
제1,2,4 악장과 절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단테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증4도의 진행이 히나스테라의 제3악장에서 상승하는 12음의 나열로 바뀌는 것은
후반부에 연주되는 두 작품을 연결시켜주는 고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브람스는 그의 헨델 변주곡에서 피아노의 악기의 한계를 극복하였으며,
리스트는 단테에서 그의 교향시를 피아노곡에 도입시켰고,
히나스테라는 소나타에서 피아노의 타악기적 요소를 부각시켰습니다.
하지만 정작 음악의 혁명가였던 베토벤은 그의 소품 론도 작품 51-1번에,
그가 남긴 다른 작품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아름다운 선율을 소중하게 펼쳐놓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