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ORMANCES 1993-10-15 제9회 독주회
2007-11-27 11:06:05
허원숙 조회수 2129

1993-10-15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프로그램:

 

베토벤 소나타, 작품 31-2
쇼팽 마주르카, 작품 33-4
쇼팽 폴로네즈, 작품 44
라흐마니노프 악흥의 순간, 작품 16

 

<연주에 앞서...>

 

오늘 연주되는 작품들은 비극적 정서의 과감한 표출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베토벤의 소나타 작품 31-2는, 베토벤이 그의 제자 쉰들러에게 이 작품을 이해하려면
셰익스피어의 '폭풍'을 읽어보라고 말 한 것에 연유하여 '폭풍'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베토벤의 음악사상은 그 시대에 이미 낭만음악의 대표적 성향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과의 연계를 앞서감을 알 수 있습니다.
제1악장의 레시타티보를 통하여 나타나는 끓어오르는 듯한 절망감은
제주제와 제2주제를 지나면서 격정과 뒤얽히며,
제2악장의 아름다운 선율은 제1악장에서의 상처를 따뜻하게 위로해 줍니다.
하지만 제3악장의 신코페이션과 복잡한 리듬으로 자꾸 평정을 잃어가며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야마는
이 소나타에는 그 낭만적 내용이 매 악장마다 엄격한 소나타 형식의 틀 안에서 용해되어 표현되고 있습니다.

 

쇼팽의 마주르카 작품 33의4는
비극적이며 허탈한 감정을 꾸미지 않고 솔직히 드러내었다가 때때로 굵은 화음으로 호기도 부려보지만
이내 체념하여 중얼거림으로 바뀌었다가 마지막 두 마디에서야 비로소
최후의 몸부림처럼 꿈틀대며 끝납니다.

 

그러나 폴로네즈 작품 44에서는 비극적인 모습이 적극적인 자세로 극복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폴로네즈의 강렬한 리듬은 피아노의 타악기적 처리를 거쳐 마주르카로 마뀌지만
작품 33의4에서처럼 체념적이지 않고 오히려 긍적적이며 아름다운 모습을 보인 후
강하며 남성적인 폴로네즈로 되돌아갑니다.

 

라흐마니노프에서는 화려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저변에 깔린 슬픔을 잠시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 여섯 곡으로 이루어진 '악흥의 순간'은 제 1,3,5곡은 소극적이며 명상적으로,
제 2,4,곡은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그 슬픔을 표현해나가며
마지막 곡인 여섯 번 째 곡에서는 슬픔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마침내는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