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나의사랑 나의음악 (4) 신의 축복, 마음의 선물을 주고 떠난 음악가
2007-11-27 13:50:45
허원숙 조회수 2562

KBS 나의 사랑 나의 음악 (4)

 

오늘의 주제: 신의 축복,마음의 선물을 주고 떠난 음악가

 

방송원고 :2000년 4월 30일 (일) 오후 2시-4시 FM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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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피아니스트 허원숙입니다.
오늘이 제가 <나의 사랑 나의 음악>으로 여러분과 함께 하는 마지막 시간이군요.

 

여러분께서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소원을 말하라면 뭐라고 대답하십니까?
5년만 젊었으면, 10년만 더 젊어졌으면 하시는 분 많으시지요?
저에게 물으신다면, 저는 “모든 것을 다 지우고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다시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가서 아기로 새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 생각, 저의 가슴으로 느끼고, 아는 상태 그대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누구이고, 어디서 태어나고, 어디로 향해 가는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죠.
<성서 이야기>를 쓴 일본인 이누카이 미치코는, “사람은 항상 무엇이 되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어디에선가 와서 어디론가 향해 줄달음치는 존재.
현재 내가 이렇게 되어 있다고 생각할 때, 벌써 나는 또 다시 저렇게 되어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저는 저의 직업을 말할 때 가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교수라는 직업도 왠지 현실을 외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더욱이 피아니스트라고 하면 세상물정 모르고 곱게 자라난 화초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이 많이 뉘우치고 반성할 직업을 두 개나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하지요.
음악가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잘 나가는 대중음악 작곡가처럼 음악으로 풍요로운 생활이 가능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제 생각으로는 음악가란, 음악이 삶의 수단이 되지 않을지라도, 음악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최명희 선생님의 소설 <혼불>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선수들이란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다해서 제 존재의 영역을 넓고 높게 개척하는 사람들일텐데, 그 재능을 부여받은 부분에 가장 극심하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단 말입니다. 꽃이 그 아름다움 때문에 꺾이기 쉬운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축구선수는 다리뼈 성할 날이 없고, 공을 너무 세게 맞아서 금이 가거나, 삐거나 하니까요.
달리기 잘하는 사람은 무릎 성할 날이 없지요. 넘어지는 것이 곧 달리기 선수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위험한 일이지요.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래서 선수는 훌륭한 것 아닐까요?”

 

녜, 바로 이런 이유로 저는 그나마 제 직업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내 자신이 나 스스로에 대해 솔직하고 정직하고 또 쓸데 없는 욕심을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정말 좋은 음악을 선물하고 떠난 사람들.
저는 그들이 진정한 음악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신의 축복: 마음의 선물을 주고 떠난 음악가>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하려고 합니다.

 

먼저 펠릭스 멘델스존의 시편42, 작품 42 중에서 제1곡 합창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를 감상하시겠습니다.
기독교 구약성서의 시편을 주제로 하는 음악이지요.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시던 산 이름이 영취산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모임을 영산회상이라고 하지요. 그 제목을 그대로 따온 우리 전통음악 <영산회상>이 처음 불교음악으로 시작했다가 조선시대의 고전음악으로 일반화된 것처럼, 근세 유럽의 종교음악도 지금은 일반음악으로 감상되고는 있지만, 그래도 음악 속 깊숙한 곳에서는 우리의 심성을 흔드는 영적인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라는 내용을 가진 펠릭스 멘델스존의 시편42, 작품 42 중에서 제1곡 합창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를 벨기에 태생 지휘자인 Philippe Hereweghe(필립 헤레베헤)가 지휘하는 La Chapelle Royal(라 샤펠 르와얄), Collegium Vocale과 Ensemble Orchestral de Paris의 연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 음 악 감 상
자신의 음악작업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고 말하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뜻을 가진 D.S.G.라는 이니셜을 그의 작품에 적어 넣었던 작곡가가 있습니다. 사실 그 당대에는 텔레만의 후광에 눌려서 별달리 성공하지 못했던 작곡가인데, 악보 보관창고에 잠자고 있던 그의 작품들을 세상밖으로 끄집어내어 빛을 보게 한 것은 바로 멘델스존의 높은 음악적 안목이었지요.
바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입니다.
바흐의 칸타타 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 “마음과 말과 행동과 생명” 바흐 작품번호 BWV 147 가운데 두 곡을 감상하시겠습니다.
제5곡 소프라노의 아리아 “예수여 길을 예비하소서”와 제6곡 합창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을 잉그리드 케르테시의 연주와 헝가리 라디오 합창단, 마티아스 안탈의 지휘하는 Faloni 쳄버 오케스트라의 연주입니다.
* 음 악 감 상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올리비에 메시앙도 많은 작품을 그의 신앙고백으로 바쳤습니다. 대표적인 피아노 작품으로 <아기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다양한 시각을 통해 접근하는 그의 깊은 신앙심을 충분히 읽을 수가 있지요. 더욱 이 작품에는 20개의 곡을 통틀어 나타나는 신의 테마,별과 십자가의 테마, 그리고 화음의 테마가 작품 전체를 감동으로 안내합니다.
올리비에 메시앙의 <아기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 중에서 제1곡 와 제2곡 Regard du l'Etoile 별의 시선으로를 미셸 베로프의 피아노 연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 음 악 감 상
악기 중에서 사람의 목소리를 가장 많이 닮은 악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637년 마랭 메르센느는 <우주의 하모니>라는 글에서 베이스 비올과 인간의 목소리의 중요한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사실 첼로나 저음악기들은 따뜻한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낸 악기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직 따뜻한 목소리 뿐만 아니라 격정에 찬 목소리, 또는 구슬피 애원하는 목소리 모두를 포함하고 있지요.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에서는 상트 콜롱보와 그의 제자 마랭 마레의 비올라 다 감바를 위한 음악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랭 마레의 작품 “사람의 목소리”를 조르디 싸발의 비올라 다 감바 연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 음 악 감 상
신을 경배하고 찬양하고픈 열망은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력을 잃고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는 노력을 아끼지 않은 작곡가를 아시지요?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작품 중 거의 절반은 청력이 많이 쇠퇴한 가운데 또는 완전히 들을 수 없게 된 상태에서 탄생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 어린시절에 청력을 잃고도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여 연주자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에블린 글레니.
그녀는 귀를 잃은 대신,맨발로 느끼는 진동으로 자신만의 소리를 듣는 방법을 터득하였습니다.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기 때문에 신발을 벗고 맨발로 서서, 바닥을 통해 울려 오는 떨림으로서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타악기 연주가겸 작곡가입니다.
에블린 글레니가 작곡한 <작은 기도자: A Little Prayer>를 그녀의 마림바 연주로 듣겠습니다.
* 음 악 감 상
그녀의 소망은 자기 자신처럼 소리를 듣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도 그녀처럼 맨발로 마루를 딛고 서서 음악을 들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쩌면 맨발의 감촉으로 다가오는 음악은 우리가 듣고 있는 음악소리보다 더 화려하고 강렬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소망은 다음 곡에서도 절실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에블린 글레니가 작곡한 <어둠속에 빛을>이라는 곡은 아마도 “침묵 속에 소리를”하고 외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간간히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는 그런 열망을 간절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블린 글레니가 작곡한 <어둠속에 빛을>이라는 곡을 감상하시겠습니다. 연주에는 에블린 글레니입니다.
* 음 악 감 상
지난 주 일요일은 크리스마스와 함께 기독교가 지키는 2대 축일의 하나인 부활주일이었습니다. 스스로 어둠 속에 빛이 되어 살다가 자신의 몸을 불살라 세상에 빛을 선물하고 가신 분.예수의 부활을 기리고 축하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전 단계에는 십자가에서의 처형이 있었지요.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박힌 채로 숨을 거두기 전 하신 일곱 개의 말씀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
어 사람들은 이를 예수의 <십자가 상의 일곱 말씀>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희는 자기들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나의 하나님 나의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목 마르다.”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이든의 <십자가 상의 일곱 말씀>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일곱 말씀을 중심으로 첫부분의 서주와 마지막의 지진을 추가하여 만든 곡입니다.
하이든 작곡 <십자가 상의 일곱 말씀> 중 두 곡을 감상하시겠습니다.
서주 Maestoso ed adagio와 제2곡 너희가 오늘 나와 낙원을 보리라를 Lindsay String Quartet의 연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 음 악 감 상
고통이란, 신이라 할지라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
그것을 아는 인간은 끝없는 고통과 좌절 속에서 비로소 어른으로 성숙하는지도 모릅니다.
요하네스 브람스는 그의 피아노를 위한 3개의 간주곡, 작품 117에 <나의 고통을 잠들게 하는 노래>라는 부제를 붙였습니다. 그 중 첫 번째 곡은 곡 서두에 짧은 시를 붙이고 있지요.
“잘 자라, 내 아기. 잘자라 편히 아름답게 / 너의 우는 모습을 보면 내 가슴이 아프단다”라는 옛 스코틀랜드의 민요인데, 헤르더가 독일어로 번역한 시집에 나와 있는 구절입니다.
브람스의 간주곡 작품 117에는, 한평생의 번민과 슬픔을 감정의 절제와 승화로 마무리지은 그의 모습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극적인 묘사나 화려한 수식어 한 마디 없이 시종일관 상처를 어루만지는 듯한 그의 따뜻한 마음씨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브람스의 간주곡 작품 117을 라두 루프의 피아노 연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 음 악 감 상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 이야기를 아십니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괴로움.
트리스탄의 죽음은 이졸데에게 크나큰 절망감을 안겨줍니다.
그녀는 절망을 이기고 일어서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처럼 독약이나 칼 같은, 자살을 위한 도구가 필요치 않았습니다.
트리스탄의 주검을 품에 안은 이졸데가 부르는 마지막 노래의 가사입니다.

 

“온화하고 조용히 미소짓는 그의 모습
사랑스럽게 눈을 뜨는 그의 모습
친구여 보는가?
보이지 않는가?
점점 더 투명하게 빛을 발하며
높이 솟아 올라 광채를 내는 별을
그대들은 보지 못하는가?
끓어오르는 심장으로 벅차 오르며
거룩하게 가슴 부풀림을.....
기분좋게 부드러운 입술로
달콤한 숨결이 은은하게 스쳐감을
친구여 보라!
느끼지 못하는가?
보이지 않는가?
내가 듣는 노래는
그다지도 아름답고 그윽하며
기쁨을 주며
모든 것을 말하며
그 안에서 울려나와 부드럽게 화해시키며
힘차게 나에게로 돌진하여
부드러운 소리로 내 주위를 감싸는가?
밝게 울리며 나를 감싸는
부드러운 공기의 물결인가?
상긋한 향내의 파도인가?
나를 감싸며 속삭이는 노래처럼
숨 쉬고 귀 기울일까?
흠뻑 들이마시고 빠져들까?
달콤한 향내 속에 나를 입깁으로 내뿜을까?
물결치는 파도 속에
울리는 파장 속에
꿈틀대는 모든 것들이 숨쉬는 세계에
빠져 들며
깊이 가라앉아
의식조차 사라져버린
최고의 기쁨!”

 

이졸데는 트리스탄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나머지, 노래를 끝내고 저절로 숨이 끊어지게 됩니다.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
리스트의 피아노를 위한 편곡으로 보내드립니다. KBS FM의 한국의 연주가 CD 중에서 허원숙의 연주입니다.
* 음 악 감 상
슬픔을 잔득 머금은 곡을 한 곡 더 소개해 드립니다. 알렉산더 스크리아빈의 연습곡 작품 2의1번입니다. 연주에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입니다.
* 음 악 감 상
삶은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모조리 지워버리고 새로 시작하고픈 후회투성이의 나날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지 않습니까?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주인공은 죽음을 눈 앞에 둔 처절한 절망 가운데에서도 어린 자식을 위한 추억거리을 만들곤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전쟁이 끝나자 그 어린 아들의 눈 앞에는 아버지가 빈 말로 약속한 줄 알았던, 진짜로 멋있는 장갑차가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 즐겁고 밝은 음악을 선사하고 세상을 떠난 작곡가 한 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프란시스 풀랑의 피아노,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과 호른을 위한 6중주를 들으시겠습니다.
연주에는 피아노의 제임스 레바인과 앙상블 빈-베를린입니다. 플루트의 볼프강 슐츠, 오보에의 한스외르크 쉘렌베르거, 클라리넷의 칼 라이스터, 호른의 귄터 회그너, 바순의 밀란 투르코비치입니다.
* 음 악 감 상

 

(마무리)
해마다 봄이 되면 동해에 인접한 강에서는 아기연어를 방류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자기가 태어난 모천을 떠나 4년 뒤에는 북태평양 큰 바다를 한 바퀴 돌아 사리같은 생명의 알을 몸 가득 품고 다시 돌아온다는,약속의 물고기 연어.
모진 풍랑과 큰 바다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수많은 시련을 뚫고 성숙한 얼굴로 우리에게 돌아온다고 하지요.
조바심 반, 걱정 반, 그리고 희망 한 자락 묻혀서 보낸 연어는 커다란 기쁨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또 새로운 생명을 위한, 어미로서의 희생을 아끼지 않지요.
우리를 떠나간 수 많은 음악가들. 그들이 떠나갈 때의 마음은 아팠지만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음악, 사랑을 품게 해 주는 음악, 그리고 영원히 변치 않을 약속과 같은 음악을 남겨 주었습니다.
이런 좋은 선물을 여러분께도 함께 드리고 싶은 저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네요.
4주간 저와 함께 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평안하십시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