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나의사랑 나의음악 (3) 작곡가가 읽어주는 편지
2007-11-27 13:49:18
허원숙 조회수 2794

KBS 나의 사랑 나의 음악 (3)

 

오늘의 주제:작곡가가 읽어주는 편지

 

방송원고 :2000년 4월 23일 (일) 오후 2시-4시 FM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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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피아니스트 허원숙입니다.

 

가끔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로부터 질문을 받습니다.
“연주할 때 어떻게 하면 생명이 숨쉬는 것 같은 연주를 할 수 있습니까?”라고요.
그럴 때마다 제가 해 주는 답은 늘 한가지이지요.
“이 악보를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에게만 보낸, 음표로 적은 편지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워낙 바쁜 생활을 하는 요즘이라,사람들은 우체국에 가는 것보다는 전화나 팩스 또는 이메일을 이용해 소식을 전하지만, 저는 되도록 번거롭고 느리더라도 낡고 구태의연한 편지라는 수단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편지에는 전화나 팩스 또는 이메일로 대신할 수 없는 특별한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편지의 매력이라는 것은 휴대폰에 메시지를 찍어보내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함>이라는 것이겠지요. 한 번 받은 메시지를 단추 하나로 간단하게 지워버리는 게 아니라, 예쁜 상자에 차곡 차곡 담아 보관하는 그런 소중함 말입니다.
그리고 편지가 갖고 있는 <은밀함> 또한 지나쳐버릴 수 없는, 편지만의 장점이랄 수 있겠습니다. 대낮같이 밝혀진 곳에서는 하지 못할 말도 은은한 촛불 앞에서는 속내를 조심스럽게 꺼내 보일 수 있는 것과 같은 그런 은밀함이지요.
그런 편지를, 그것도 음표로 적어 작곡가가 나에게 보냈다고 생각하신다면 한 음 한 음 소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작곡가가 여러분 한 분 한 분께 보낸 사랑의 편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것도 작곡가 자신이 읽어주는 편지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즘은 녹음기술의 끝없는 개발로 작곡가가 직접 연주한 음악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녹음기술이 조금 더 일찍 발명되었더라면 아마도 파가니니의 전설적인 바이올린 연주나,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는 물론이고, 세계를 주름 잡았던 클라라 슈만의 훌륭한 피아노 연주 솜씨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1904년 롤 피아노의 개발과 1930년 녹음기술의 개발로 20세기의 연주는 웬만한 것은 다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작곡가 자신이 탁월한 연주가였던 사람 중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아마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일 것입니다. 그의 연주를 들으면 라흐마니노프의 작품 연주는 작곡자 자신의 연주보다 더 좋은 연주는 없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곤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이 너무 높아 작곡가로서는 오히려 과소평가되어왔습니다. 20세기의 중반을 살았지만 음악적 표현이 낭만적 성향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피아노 연주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두 사람의 혁명적 인물을 들라하면, 한 사람은 오늘날의 연주회 형태를 시작한 프란츠 리스트이고, 또 한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비르투오조, 즉 대가의 작품을 남기고 그 스스로 작품을 피아노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를 드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오늘은 먼저 두 곡의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을 들으시겠습니다.
먼저 들으실 음악은 <엘레지>.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로 들으신 후
계속해서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2번을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로 들으시겠습니다.
리스트의 랩소디는 물론 연주 자체도 탁월하지만 무엇보다도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한 카덴차가 독특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그럼 라흐마니노프가 1928년에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엘레지와, 1919년에 연주한 리스트 헝가리 랩소디 제2번을 감상하시겠습니다.
* 음 악 감 상

 

라흐마니노프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 중에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크라이슬러는 조금 전에 들으셨던 라흐마니노프와도 깊은 교분을 쌓은 사람으로 라흐마니노프가 크라이슬러의 유명한 소품 <사랑의 기쁨>이나 <사랑의 슬픔>을 피아노로 개작한 것도 서로의 우정 때문이었습니다.
크라이슬러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작곡가겸 바이올리니스트로 제2차 세계대전이 나자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욕에서 바이올린 연주가로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의 연주 중에서 두 곡 들으시겠는데요, 먼저 들으실 곡은 크라이슬러 작곡 아름다운 로즈마린입니다. 연주에는 프리츠 크라이슬러와 미하엘 라우흐아이젠(Michael Raucheisen)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30의3번 G장조를 크라이슬러의 바이올린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로 들으시겠습니다.
* 음 악 감 상

 

작곡가의 연주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해석의 모범답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반대로 전혀 모범답안과 상관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런 경우의 음악을 한 곡 들으시겠습니다.연주자로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않던 사람, 모리스 라벨의 연주입니다. 라벨이 작곡한 피아노음악은 기교면이나 음악적인 면에서 피아니스트에게 아주 많은 것을 요구하지요. 하지만 지금 들으실 라벨 자신의 연주에서는 그가 왜 음반을 녹음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연주가 보잘 것 없습니다. 이 연주를 들으면, 작곡가로부터 좋은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그런 작품을 빛내줄 정말 좋은 연주자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연주자로서의 막중한 책임감도 느꼈습니다.
그러면 모리스 라벨이 직접 연주한 쿠프랭의 무덤의 제6곡 토카타를 들으시겠습니다. 1920년도 롤 피아노로 녹취된 LP로 감상하시겠습니다.
* 음 악 감 상

 

자신이 탁월한 연주자였고,또 자신의 조국을 너무나 사랑하여 고향의 노래를 가슴에 꼭 품고 다녔던 연주가가 있었습니다. 파블로 카잘스입니다. 그의 조국은 스페인이 아닌 카탈로냐였지요. 카탈로냐 민요를 자신이 연주하기 위해서 편곡한 연주자는 다름이아닌 파블로 카잘스자신이었습니다. 카잘스의 첼로 연주 중에서 그가 아꼈던 <카탈로냐 새의 노래>를 카잘스 자신의 편곡으로 듣겠습니다. 1950년도 프라드 페스티발에서 프라드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실황음반입니다.
* 음 악 감 상

 

화려한 연주뿐만 아니라 기괴한 행동으로도 주목 받은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를 소개해 드립니다. 바로 요셉 호프만인데요. 연주가나 작곡가라기 보다는 차라리 발명가라고 소개해 드리는 게 오히려 나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그 자신 많은 시간을 연습실에서 또는 연주장에서 보내기보다 차고 작업실에서 무언가 기발한 것을 발명해내느라고 고심하는데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는 메트로놈의 원리를 이용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자동차 와이퍼를 발명한 사람입니다. 연주도 발명가답게 기교적이면서도 현학적인 색채를 많이 띄고 있습니다.
그의 연주 중에서 세 곡을 들으시겠습니다. 먼저 모스코프스키의 스페인 기상곡 작품 37, 쇼팽의 연습곡 작품 25의 9 일명 나비,그리고 요셉 호프만이 작곡한 녹턴입니다. 연주에는 요셉 호프만, 1922-1937년도의 연주회 실황녹음입니다.
* 음 악 감 상

 

“내 음악을 설명하려 들지 마라. 내 음악은 그저 들어서 즐거우면 그뿐이다”라고 말한 작곡가가 있습니다. 프란시스 뿔랑입니다. 사실 그의 음악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직감적으로 느끼고 즐거워하고 때로는 가볍게 우수에 젖기도 하는 음악이 많습니다. 프란시스 뿔랑이 연주하는 그 자신의 작품 중 녹턴 제1,2,4번 세 곡을 들으시겠습니다. 1934년도 녹음입니다.
* 음 악 감 상

 

이제 들으실 연주는 여성 피아니스트의 연주인데요. 파블로 카잘스에 의해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세상의 빛을 보았듯이 이 피아니스트 역시 바흐 작품에 지대한 애착을 가진 분입니다. 데임 마이라 헤스입니다. 데임이라는 작위를 붙이는 것을 보면 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존경심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가 있겠지요.
헤스 역시 파블로 카잘스처럼 그 자신이 연주하기 위해서 바흐의 작품을 피아노로 편곡하였습니다. 이 곡은 후대의 다른 피아니스트에 의해서도 많이 연주되는 곡입니다. 바흐의 칸타타 147번중에서 Jesus,Joy of Man's Desiring(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을 데임 마이라 헤스의 편곡과 연주로 들으시겠습니다.
* 음 악 감 상

 

피아노의 기인이라 불리우다 얼마전 세상을 떠난 프리드리히 굴다는 어릴 적부터 천재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12살때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을 완주하는 기록도 남겼고요, 왕성한 활동을 할 시기에는 돌연 재즈 작곡가 겸 연주가로 세상의 이목도 집중시켰습니다. 그가 남긴 작품 중 두 곡을 듣겠습니다. 먼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대관식> 중 제2악장을 프리드리히 굴다의 피아노 솔로용 편곡으로 들으시고 프리드리히 굴다 작곡 Du und I를 프리드리히 굴다의 피아노와 노래, 파라다이스 밴드의 연주로 들으시겠습니다. 1990년도 빈 콘체르트하우스 공연실황입니다.
* 음 악 감 상

 

재즈 작곡가라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리스 라벨에게 작곡수업을 받으려고 갔다가 “당신은 벌써 훌륭한 음악가인데 왜 제2의 라벨이 되려고 하십니까?”라며 라벨로부터 거절당한 작곡가. 바로 조지 거쉬인입니다. 그는 클래식 음악사에 한 획으로 재즈를 당당히 자리매김한 작곡가이지요. 랩소디 인 블루나 파리의 아메리카인 등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오늘은 그의 작품 중 두 곡을 들으시겠습니다. 첫 곡 Sweet and Lowdown과 둘째 곡 Rhapsody in Blue 피아노 솔로용 편곡입니다.연주에는 작곡자 자신인 조지 거쉬인입니다.1925-27년의 롤 피아노 연주입니다.
* 음 악 감 상

 

작곡자는 아니지만 연주할 때 작품을 많이 바꾸어 연주하기로 유명한 호로비츠는 Bizet의 Carmen의 주제를 가지고 변주곡을 작곡하였습니다. 물론 자신의 연주회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작곡한 것이지요.
호로비츠 작곡 Bizet의 Carmen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 1968년도 카네기홀에서 있었던 호로비츠 자신의 연주입니다.
*음 악 감 상

 

종이와 연필만 보면 그림을 그려대는 어린이들이 참 많습니다. 아마 화가들의 어린시절은 끊임없이 그리고 지우는 놀이로 채워졌을 것입니다. 황주리 화백의 그림에는 유난히 원고지위에 그린 그림들이 많은데요, 어린 시절 출판사를 경영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그 집에 원고지가 많아 자연스럽게 원고지 위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작곡가의 어린 시절은 어떨까요? 피아노치고 흥얼거리며 노래하고 또 그림그리듯이 오선지에 뭔가 끄적거리며 적어보고, 또 피아노로 쳐보기도 하고...
이제 여러분께 소개드리려는 인물은 아직도 자라나는 어린 새싹과도 같은 꼬마 작곡가입니다. 1990년생인데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까 만10살도 되지 않은 어린이인데요, 만 6살에 처음 작곡한 작품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아직 성숙하지는 않았지만, 어린이로서 자기가 알고 있는 세계에 대한 따스한 사랑과 풋풋한 열정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현재 신길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중인 서형민 어린이가 6살 때 작곡한 작품 <형민의 테마>와 9살에 작곡한 <어떤 도둑의 하루>를 서형민 어린이의 연주로 들으시겠습니다.
*음 악 감 상

“...저 가벼운 홀씨 속에 / 푸른 나무가 들어 있다...“
라는 시인 박노해 님의 시에서처럼
‘도토리 안에 커다란 참나무의 싹이 움트는 것’이 느껴지지 않으셨어요?

 

(마무리)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영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에서 주인공인 청년은 자기 방에 망원경을 설치하고 창문을 통해 건너편에 사는 여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게 됩니다. 망원경을 통해 나타나는 장면은 아름다운 장면도 있고 추악한 장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그 여인의 모든 허물을 이해하고 그녀의 불행마저 아파하며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배웁니다. 작곡가가 음표로 써 보낸 편지도 그런 것 아닐까요?
작곡가가 음표로 써 보낸 편지에는 따스한 사랑이 있습니다. 수줍음 때문에 남에게 차마 보이지 못한 솔직함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저 사람이 저럴수가 하고 생각이 들 정도로 어둡고 추악한 모습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편지를 보낼 수 있는 마음, 그리고 그 편지를 받고 이해하려고 애쓰며 읽는 연주자의 마음이 더 소중한 것이 아닐까요?.
음표로 적은 편지를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작곡가는 그 편지를 읽어주듯이 스스로 연주를 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잘 들으셨지요?
<나의 사랑, 나의 음악>, 그 세 번째 이야기 <작곡가가 읽어주는 편지>를 마칩니다. 저는 피아니스트 허원숙이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신의 축복: 마음의 선물을 주고 떠난 음악가>라는 제목으로 여러분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