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나의사랑 나의음악 (2) 음악이 문학을 만났을 때
2007-11-27 13:47:31
허원숙 조회수 3065

KBS 나의 사랑 나의 음악 (2)
오늘의 주제:음악이 문학을 만났을 때

 

방송원고 :2000년 4월 16일 (일) 오후 2시-4시 FM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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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허원숙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음악이 미술을 만났을 때> 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시간을 함께 하였지요.
오늘은 <음악이 문학을 만났을 때>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두시간 동안 음악이야기를 풀어 가려고 합니다.

 

음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성악이겠지요. 왜냐면 성악은 아무것도 몸에 지니지 않아도 음악행위를 할 수 있는 준비된 음악수단이니까요. 그리고 노래라는 것은 대부분 가사가 있기 때문에, 사실 음악과 문학은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동반자 역할을 해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글이라도 어느 음악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글의 의미는 180도로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한가지 들어 보겠습니다.

 

“옛날 어느 시골에 순박한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마을에서 가장 잘 생기고 학식있고 부자인 청년에게 반했습니다.
언제 그와 한 번 이야기라도 해본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그 청년과 우연히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산책도 했습니다.
그녀는 그 청년과 함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그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난 순간부터 돌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그의 칼에 찔려 숨지게 됩니다.
그녀는 죽어가면서 생각했습니다.
”아, 이런 비극적인 운명이 있을 수가! 하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한거야. 주위를 둘러봐.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또 이렇게 그 사람 손에 죽어가는 사람이 어디 나 말고 또 있을 것인가! 나는 너무 행복한거지!!”

 

위의 내용을 가진 노래를 두 편 들려드리겠습니다. 제목은 제비꽃입니다.
괴테의 시에 붙여진 노래들인데 물론 여기에는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는 없습니다.
단지 누군가 풀섶에 피어있는 자기를 보고 예쁘다며 따서 가슴에 잠시 꽂아 주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하리라고 생각하는 작은 제비꽃과, 그 꽃을 따서 가슴에 꽂으리라고 상상했던 그 예상과는 달리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무심코 밟아버린 양치기 소녀의 이야기가 있을 뿐입니다.
그 제비꽃은 무참히 밟혀 죽어가면서도 “그래도 내가 그리던 그녀가 나를 밟았으니 난 행복해” 라고 말합니다.

 

모차르트의 가곡 제비꽃과 독일계 러시아 작곡가인 메트너의 제비꽃을 들으시겠습니다.
모차르트의 제비꽃은 소프라노 엘리자벳 슈바르츠코프와 피아니스트 발터 기제킹이,
메트너의 제비꽃은 카운터테너 브라이언 아사와의 노래, 네빌 마리너가 지휘하는 성 마틴 아카데미 관현악단의 연주입니다.
* 음 악 감 상
모차르트와 메트너 두 사람이 작곡한 두 곡의 제비꽃을 들으셨습니다.
같은 내용의 가사이지만 느낌이 어떻십니까? 모차르트의 제비꽃은 작고 예쁜 제비꽃의 이야기로 들리지만, 메트너의 제비꽃은 앞서 제가 말씀드린 처절한 비극으로 들리지 않습니까?
모차르트의 제비꽃은 소프라노 엘리자벳 슈바르츠코프와 피아니스트 발터 기제킹이,
메트너의 제비꽃은 카운터테너 브라이언 아사와의 노래,
네빌 마리너가 지휘하는 성 마틴 아카데미 관현악단의 연주였습니다.

 

시골의 순박한 처녀의 사랑 이야기는 또 있습니다.
얼굴도 예쁘지도 않고 또 많이 배우지도 못한 보잘 것 없는 처녀와,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그 대가로 젊은이가 된 사람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괴테의 파우스트이지요.

 

잠시 파우스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 박사의 영혼을 담보로 그에게 젊음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그를 라이프치히의 아우엘바흐의 지하 선술집으로 데리고 가지요. 거기서 대학생들과 재미있게 술을 마시며 그들에게 재미나는 노래를 들려줍니다.
그 노래는 바로 메피스토펠레스의 <벼룩의 노래>입니다.
옛날 한 임금님이 계셨는데 커다란 벼룩을 길러 왕자처럼 사랑하여 화려한 옷을 입히고 높은 벼슬도 주었는데 벼룩은 궁중안의 귀족,귀부인,왕비,시녀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물었다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역시 두 작곡가의 노래로 들으시겠는데요, 먼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무소르그스키의 벼룩의 노래를 Feodor Chaliapin의 노래로, 그리고 조금은 덜 알려져있지만 베토벤의 벼룩의 노래 작품 75-3을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의 노래와 하르트무트 휄의 피아노로 감상하시겠습니다.
* 음 악 감 상
술을 거나하게 마신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
술이 떨어진 것을 안 메피스토펠레스는 빈 탁자를 송곳으로 뚫고 악마의 힘을 발휘하여 빈 탁자에서 술이 나오는 마술을 부립니다.
레나우의 시 파우스트 중 마을 선술집에서의 메피스토의 왈츠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프란츠 리스트의 메피스토 왈츠 제1번을 머레이 페라이어의 연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 음 악 감 상
선술집에서 나와 마녀에게서 사랑의 묘약을 얻어 쭈욱 들이킨 파우스트는 그 약의 힘으로 모든 여인이 여신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 마침 길거리를 지나가던 마가레테에게 반한 파우스트의 춤을 들려드리지요.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중 파우스트의 왈츠에는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인용한 대사가 나옵니다. “어여쁘고 귀한 아가씨, 실례지만 내 팔을 잡으세요. 제가 모셔다 드리지요”하고 말을 거는 파우스트에게, 수줍은 마가레테는 “저는 귀한 아가씨도 아니고 예쁘지도 않아요. 집에는 혼자서도 갈 수 있어요”라고 하며 뿌리치고 퇴장하는 장면입니다.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중 파우스트 왈츠를 리스트가 편곡했습니다. 연주에는 그리고리 긴즈부르크입니다. 1948-1959년도 사이에 녹음된 음반 중에서 들려드립니다.
* 음 악 감 상
집으로 황급히 돌아온 마가레테는 흥분으로 가슴이 떨립니다. 왜냐면 자기처럼 보잘 것 없는 시골 아가씨에게 멋있는 청년 대학생이 말을 걸어왔고 또 그와 정원을 함께 거닐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진정하려고 물레 앞에 앉아 물레를 돌려보지만 창문에 그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 같고 그의 걸음걸이, 그의 모습, 그의 미소, 그의 눈동자, 그의 말솜씨, 그의 손길과 입맞춤이 그녀의 온 정신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물레감는 그레트헨. 그레트헨은 마가레테의 애칭이지요.
프란츠 슈베르트의 가곡 물레감는 그레트헨을 군둘라 야노비츠의 노래와 어윈 게이지의 피아노로 감상하시겠습니다.
* 음 악 감 상
지금까지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부분적으로 인용하여 만든 작품들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제 소개드릴 곡은 리스트입니다. 표제음악으로 구분하지는 않지만, 리스트 당시의 제자들로부터 이 곡과 파우스트와의 관련성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곡입니다. 바로 리스트의 b 단조 소나타인데요, 기존 소나타 형식을 벗어버리고 메피스토, 파우스트, 그레트헨 등 5개로 된 상징적 소재를 마치 바그너에서의 유도동기처럼 엮어 작품이 완성되었습니다. 이 곡에는 처음 메피스토펠레스의 등장에서부터 마지막 하나님으로부터의 구원에 이르기까지 괴테의 파우스트 제1부가 고스란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프란츠 리스트의 소나타 b 단조를 제 연주로 소개해 드립니다.
1992년 9월 7일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허원숙 피아노 독주회 실황음반입니다.
* 음 악 감 상

 

여러분께서는 어릴 적 읽은 동화 중에 빨간 모자와 늑대에 관한 이야기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할머니 눈이 왜 그렇게 빨개? - 너를 잘 보려고 빨갛단다.”
“할머니 손은 왜 그렇게 커? - 너를 잘 쓰다듬으려고 크단다.”
“할머니 입은 왜 그렇게 커? - 너를 잘 잡아먹으려고 크지!!”
빨간 모자가 미처 놀라기도 전에 늑대는 입을 크게 벌려서 빨간 모자를 널름 삼켜 버립니다.
라흐마니노프의 회화적 연습곡 중에서 작품 39의 6번은 바로 빨간 모자와 늑대에 관한 이야기를 그림의 한 장면으로 만든 곡입니다.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의 실황연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 음 악 감 상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는 친구 테오발트 폴락에게서 중국의 시집을 선사받습니다. 이 시집은 이백, 맹호연 등 중국 시인의 시를 한스 베트게가 독일어로 번역한 <중국의 피리>라는 책이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는 이 시집에서 시를 여섯 편을 고릅니다. 대지의 애수를 노래하는 권주가, 가을의 고독한 사람, 청춘에 대하여, 아름다움에 대하여, 봄에 취하는자, 고별 등의 6편의 시를 가지고 말러는 그의 마지막 교향곡 <대지의 노래>를 완성하였습니다. <대지의 노래>에는 동양적인 체념과 현세에의 애착이 서로 교차되는 아이러니가 숨어 있지요.
그 중 시 두 수를 골라 그 내용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립니다.

 

3.청춘에 대하여

 

연못 가운데 서 있는 정자에는
친구들이 앉아 술을 푸고 이야기를 나누고 시를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물에 비치는 모습은 모두 거꾸로라는 것입니다.
정자와 연결되어 있는 다리는 아취형이지만
물에 비치는 그 아취는 거꾸로 보니 초승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은 머리를 땅에 박은채 모두들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4.아름다움에 대하여

 

아가씨들이 연못가에서 치마폭에 연꽃을 따 모으며 재미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찬란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가로 지르며 청년들은 말을 타고 물가를 달립니다.
산들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매만지고 향기로운 연꽃의 향기는 주위를 감쌉니다.
그 중 가장 예쁜 아가씨는 도도한 모습을 잃지 않고 있기는 하지만
마음 속에 타고 있는 한 청년을 향한 뜨거운 불길을
아무리 그녀의 우아한 자태로 감추려고해도
그 청년을 향한 그녀의 눈빛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말러의 <대지의 노래>중에서 제3악장 <청춘에 대하여>는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의 노래,
제4악장 <아름다움에 대하여>는 메조 소프라노 크리스타 루드비히의 연주로 오토 클렘페러 가 지휘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1964년의 녹음입니다.
* 음 악 감 상

 

지금까지 소개해 드린 작품들은 음악이 문학을 찾아가 만난 작품들입니다.
작곡가들은 그들의 음악적 소재를 문학에서 많이 빌어왔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인용한 문학작품들이 많은 독자들에게 이미 큰 감동을 주었고 또 그런 이유에서 음악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예술가로서의 갈망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소개해 드릴 곡은 문학이 음악을 찾아간 경우입니다.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은 그의 소설에서 해박한 음악적 지식을 마음껏 펼쳐 놓고 있습니다.
바로 <파우스트 박사>라는 소설인데요,
“한 친구가 이야기하는 독일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퀴인의 생애”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작곡가의 생애를 소재로 한 소설답게 전문적 음악지식이 많이 나오는 문학작품입니다.
그 중 제8장에서는 베토벤의 소나타 작품 111의 2악장을 소설 속의 인물 크레츠시마아르의 강의 형식을 빌어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한낱 꿈에 불과합니다.이제 고통을 잊으십시요, 저희 안에 계신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이제 고요하고 그윽한 작별의 시선을 줄 시간입니다. 하지만 부드러운 마음만은 나에게 머물러 주십시요.”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인 작품 111을 빌헬름 켐프의 연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 음 악 감 상

 

(마무리)
새천년 21세기가 시작된지 벌써 4개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예술은 단 하나의 장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복합예술로 갈 것이라고 예측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책을 읽었을 때 그 내용을 전부 기억할 수는 없더라도 마음에 드는 구절 하나라도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그것으로 인해 영혼의 안식을 찾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수확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런 감동을 주는 문학 작품이 소리의 옷을 입고 음악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준다면 그것은 더욱 더 큰 기쁨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두시간에 걸쳐 <음악이 문학을 만났을 때 >라는 작은 제목으로 문학을 바탕으로 작곡된 작품과, 음악이 소재가 된 문학작품에 삽입된 곡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렸습니다.
함께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피아니스트 허원숙이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작곡가가 읽어주는 편지>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러분들을 찾아뵙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