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첫 눈 쌓인 새벽 들판처럼 순결한 모차르트
2007-11-27 13:39:48
허원숙 조회수 1566

1991 모차르트 서거 100주년 기념 시리즈 (3)...피아노 음악

 

나는 모차르트를 이렇게 본다.

 

"첫 눈 쌓인 새벽 들판처럼 순결한 모차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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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전 어느 책에선가 모차르트를 '어릴 적에는 어른 같은 어린이, 커서는 애같은 어린"이라고 간단하게 표현한 글을 읽고 무척이나 많은 생각에 빠진 적이 있었다. 아직 엄마 품에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어린 나이에 고된 마차 여행과 꽉 짜여진 연주일정, 그리고 쉴새없는 창작 작업으로 채워진 천재 소년의 생애,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항상 뭔가 철이 덜 든 것만 같은 천진난만함으로 상대방을 당혹하게 했던 모차르트의 음악을 대할 때면 으례히 뒤따랐던 질문 한 가지- 그토록 밝은 웃음 뒤에는 얼마나 진한 슬픔과 비애와 승화가 숨겨져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나를 꾸짖고 채찍질하고 긴장하게 만들곤 했다.

 

토마스 만의 소설 '파우스트 박사'에는 악마가 젊은 작곡가 레버퀴인을 찾아와 그의 영혼과 천재성을 맞바꾸자는 제의를 하면서 던지는 말이 나온다.
"자넨 지옥과 관계 맺지 않은 천재가 있다고 믿나? 천만에! 예술가는 범법자와 광인의 형제야... 기쁨을 주고 열광시키는 듯한, 의혹이 없는 경건한 인스피레이션, 더 이상 짜 맞추고 개선하거나 선택할 여지가 없는 인스피레이션, 모든 것이 지극히 행복한 명령으로 온전히 수용되고 걸음이 중단되고 고꾸라지고, 지고의 전율이 엄습한 자의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흘러 넘치고, 그의 눈에서 기쁨의 눈물이 넘치게 할 그런 인스피레이션- 그러한 인스피레이션은 이성에 너무 많은 과제를 부과하는 하나님과는 전혀 무관하며, 오로지 열광의 진정한 주인인 악마와 더불어서만 가능하단 말일세."
악마는 레버퀴인에게, 천재의 재능이란 고민하면서 어렵게 쓰는 것과는 거리가 멀며, 오직 악마로부터 부여받은 능력으로만 작품을 쓰는 것이라고 하면서 예를 들어 베토벤은 절대로 천재가 아니며 완벽을 추구하는 인간의 극기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천재라고 일컫는 모차르트는 마성을 지닌 천재라기 보다는, 하늘로부터 받은 너무나도 성스럽고, 더럽혀져서는 안 될 첫 눈 쌓인 새벽 들판과 같은 순결함을 지니고 있다.
모차르트의 작품을 연주함은 마치 순백의 도화지 위에 단 한 번의 획으로 그리는 그림과도 같다고나 할까?
어두운 눈으로 보면 너무나도 쉽고 간단한 곡들이지만 깨인 자의 눈으로 보면 더 이상 한 점도 추가해서도 덜어내서도 안 되는 완성품 그 자체이다. 하늘로부터 받은 축복의 선물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겠다.

모치르트의 음악은 마음에 새긴 순결한 사랑의 도장과 같다. 독일의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였던 에드윈 피셔는 '모차르트는 달콤함도 아니며, 기교도 아니며, 우리의 기호와 영혼과 감정이 병들지 않도록 지켜주는 마음의 시금석'이라고 했다.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을 맞이하여 조국인 오스트리아는 물론, 전 유럽과 우리나라까지 모차르트 음악회로 꾸며진 축제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우려되는 것은,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어린이들을 위한 잔치가 그렇게도 많이 열리고 많은 부모들이 갖가지의 즐거운 행사를 마련하지만, 정작 집 잃은 미아는 어린이날에 제일 많이 생기다는 사실처럼, 200년만에 마련하는 모차르트 기념행사들이, 모차르트를 끝장 내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200년 전의 모차르트는 질병과 가난과 싸우다가 무덤도 없이 외롭게 죽었다.

 


피아노 음악, 1991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