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프로 만들기
2007-11-27 13:38:03
허원숙 조회수 1427

<교수 칼럼>

 

프로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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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호서대학교에 부임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약속한 게 두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변명하지 말자'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엉뚱한 데서 빛나는 척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변명하지 말자'는 연주와 교육 두 가지를 병행하는 피아니스트들을 보면서 다짐한 것인데, 학교에서는 스스로 연주가라고 생각하면서 교육을 등한시하고, 무대 위에서는교육에 시간을 빼앗겨서 연주회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없었음을 뻔뻔하게도 당연시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얻은 커다란 교훈이다.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음악교육 수준이 그래왔었고, 연주회의 수준이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는 몰라도 이제부터는 바뀌어야만 한다는 사명감에 나 자신의 실천강령을 정했다.

 

첫째, 전 날 연주를 바리고 피곤하더라도 다음날은 어김없이 아침 일찍부터 학교에 나와 선생으로서의 자리를 지키기.
둘째, 무대 위에서는 내 제자들이 나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게 연주하기.
셋째, 학생들이 성장하는 것 이상 나 자신을 키우고 살지워가기 등, 작은 일이지만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함에서였다.

 

'엉뚱한 데서 빛나는 척 하지 말자'는 자칭 대가들의 혐오스러운 모습들을 보며 느낀 것인데, 무대 뒤 분장실에서는 자칭 초특급 스타랍시고 조율사, 무대감독, 기획자, 심지어 분장실 경비한테까지도 까다롭게 굴고 애를 먹이다가 막상 무대에 나가서는 빛을 발하기는 커녕 이내 꽁무니를 빼는 사람들, 귀국 독주회 이후로 그렇다 할 연주는 한 번도 하지 못하면서 타이틀만 피아니스트로 남아있는 사람들 등 스스로는 최선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최상의 대우를 받으려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현재는 유명세 때문에 그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지는 모르지만 그 상황이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과연 알고나 있을까?

 

연주자에게 있어서 '몇 년의 긴 침묵을 깨고 다시 선 무대' 등의 수식어는 소설가 최명희처럼 침묵기간을 "혼불"에 고스란히 쏟아부은, 뼈를 깎는 인고의 세월이 아닌 이상 결코 자랑하거나 내세울 만한 일이 될 수 없으며, 진정한 프로는 자신의 권리보다 의무를 소중히 하고 자신의 능력과시보다 결과에 겸손하며, 잘못되었을 때 허물어버리기보다 애를 쓰며 고쳐나가는 사람일 것이다.

 

어태껏 우리나라는 정치도 예술도 아마추어였고, 환경, 교육, 교통문제도 취미활동 수준에 머물렀었으며, 무슨 문제가 터지면 언제든지 바득판 뒤엎어버리듯 아무렇지도 않게 또 다른 한 판 게임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프로야구, 프로 복싱처럼 운동경기같은 데에만 '프로'라는 단어를 쓰지말고 프로-피아니스트, 프로-바이올리니스트, 프로-교수 등 스스로를 긴장시키고 채찍질하는 타이틀을 붙여서라도 확고한 프로정신을 가지고 프로-학생, 프로-학교, 나아가서 프로-국가를 만들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호서대학교 교수칼럼,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