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음악춘추 특집: 콩쿠르, 나는 이렇게 도전했다
2007-11-27 13:34:15
허원숙 조회수 2182

음악춘추 특집: 콩쿠르, 나는 이렇게 도전했다.

 

피아니스트 허원숙 -포촐리, 마르살라 국제 콩쿠르
-----연습 계획 세우기, 연습 자체 만큼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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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의 음악 공부를 마치고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유럽 혹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여러분은 유학의 목표가 무엇인가요? 외국 학교의 졸업장인가요? 물론 외국 학교에서의 학위가 여러분의 유학의 목표가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느 정도 공부가 진행되고 나면 다양하게 열리는 마스터 클래스와 콩쿠르에 참가하여 자신의 연주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좋습니다.
국제 콩쿠르에 도전하고픈 생각은 당연히 있지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몰라 망설이신다구요? 그렇다면 미래의 피아니스트가 될 여러분에게 나의 경험을 토대로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1.동기 유발이 중요하다.

 

제가 다니던 학교인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는 매학기 실기시험을 실시하지 않았는데, 한 두 해가 지나고 보니 제 자신의 연주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매학기 시험이 없으니 매학기 성적은 실기지도교수의 주관적인 의견 단 하나뿐인데,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또한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지요. 제가 유학하던 당시 같은 반 친구들 중 국제 콩쿠르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꽤 여러 명 있었는데 그 중에는 잘 치는 친구도 있었고 그저 그런 친구도 있었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많은 발전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제가 콩쿠르에 도전한다면 물론 당연히 떨어지겠지만 최소한 조금은 발전하겠지 하는 소박한 생각에서 콩쿠르 도전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2.기본적인 프로그램을 준비하라.

 

구체적으로 어떤 콩쿠르에 도전하기 전에, 기분 프로그램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콩쿠르는 3~4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1차예선, 2차예선, 세미 피날레, 본선의 4단계가 기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1차예선에서는 쇼팽, 리스트의 에튀드와 또 다른 작곡가의 에튀드 등 3~4곡의 에튀드가 필요하지요. 그 외에 바흐 평균율이라든지 콩쿠르 주최측에서 정한 짧은 곡이 추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차와 3차 예선에서는 기본적으로 고전 소나타를 한 곡 이상 연주하게 되어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모차르트나 하이든에서 한 곡, 베토벤에서 한 곡 등 총 2곡의 고전 소나타가 주어집니다. 그 밖에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적인 작품 1~2곡과 현대곡도 필수적으로 준비해야겠지요. 실내악과 가곡 반주가 과제곡으로 꼭 들어가는 콩쿠르도 있구요.
본선에서는 대체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는데, 지정곡이 나오는 콩쿠르도 있고 모차르트에서부터 프로코피예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콩쿠르도 있습니다. 또한 협주곡이 아닌 50분 솔로 리사이틀을 과제곡으로 내놓는 콩쿠르도 있구요.
제가 입상했던 콩쿠르 중 포촐리 국제 콩쿠르에 대비해 준비한 곡들을 참고로 말씀드릴까요? 1차예선에는 앞서 이야기한 에튀드가 여러 곡, 그 밖에 포촐리의 소품,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1곡이 과제곡이었는데, 다른 콩쿠르에서 1등 입상한 사람은 1차예선을 면제해주는 바람에 비오티 발세시아 콩쿠르에서 1위를 한 저는 덕분에 곧바로 2차로 올라가게 되었지요. 2차예선에서는 모차르트의 <소나타 K.330>,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 알반 베르크의 <소나타>를 연주했고,. 45분의 솔로 프로그램으로 꾸며진 세미 피날레에서는 포촐리의 <에튀드>3곡, 베토벤의 <소나타, 작품 109>, 쇼팽의 <발라드 4번>, 브람스의 <피아노 소품, 작품 118>을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본선은 50분 솔로 리사이틀이었는데, 라벨의 <물의 희롱>,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 저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3.정보수집

 

각종 콩쿠르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세요. 어떤 콩쿠르가 언제 어디서 개최되는지, 과제곡은 무엇인지, 콩쿠르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될 수 있으면 많은 정보를 수집하세요, 학교에 각종 콩쿠르의 부로셔가 구비되어 있기도 하고, 요즘은 인터넷으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답니다.

 

4.구체적인 계획 수립

 

수집된 여러 정보를 분석하여 콩쿠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웁니다.
우선, 과제곡을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콩쿠르는 단 하나만 준비하지 말고 같은 과제곡으로 도전할 수 있는 콩쿠르를 여러 개 한꺼번에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같은 시즌에 비슷한 과제곡으로 나갈 수 있는 콩쿠르를 2개 정도 모아보세요. 그 콩쿠르에 필요한 모든 곡들을 한 눈에 알아보기 쉽게 표로 만드세요. 그러면 공통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곡이 7~8곡, 그 외에 겹쳐서 칠 수 없는 곡이 몇 곡 생기겠지요. 이제 한꺼번에 그 많은 과제곡을 연습해야 합니다. 연습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은 연습 자체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실행할 수도 없는 무리한 연습 스케줄을 짠다면 처음 며칠간은 열심히 연습하겠지만 곧 지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조금씩 연습량을 늘여가면서 시간표를 짜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프로그램은 아무리 많더라도 전체의 난이도를 고려해서 2등분으로 나눕니다. A-Program과 B-Program으로 나누어진 프로그램의 연습은 한 주를 한 단위로, 첫째 주에는 A-Program을, 둘째 주에는 B-Program을 연습합니다. 그렇게 몇 주를 반복한 후에는 한 주를 2등분하여 주초에는 A-Program을 주말에는 B-Program을 연습하도록 합니다. 마지막 단계에 가면 A-Program과 B-Program의 구분없이 모두 연습합니다. 또는 그 반대로 연습을 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 몇 주간은 집중적으로 한 두 곡에만 치중하여 연습을 시작하다가 점차 범위를 넓혀가면서 연습하는 방법인데, 각자의 성격에 따라 선택하면 됩니다.

 

5.실전에서는....

 

*콩쿠르 개최지에서의 연습

 

많은 분량의 곡들을 준비하고 이제 콩쿠르가 개최되는 도시로 떠납니다. 예비소집에 가면 일반적으로 콩쿠르에 참가할 동안 묵을 숙소와 연습실을 배정해 줍니다. 연습실은 학교의 연습실을 배정해 줄 때도 있고, 자원봉사 가정과 연결하여 각 가정에서 연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연습 시간을 지정해 주는 경우도 있는데 하루 종일 연습을 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한 두 시간만 연습이 가능한 경우에는 당황하게 됩니다.
제가 1988년에 입상한 마르살라 콩쿠르에서는, 하루에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을 2시간 주었습니다. 콩쿠르를 준비하면서부터는 하루 10시간 이상을 연습하였으므로 여유를 가지고 세밀한 연습을 할 수 있었지만, 단 두 시간 안에 모든 곡을 연습하자니 난감하더군요. 고민하다가 저에게 주어진 연습시간 두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기로 마음을 먹고 오전에 1시간, 오후에 1시간으로 연습실을 배정받았습니다. 오전 연습시간 1시간 내내 녹음을 하면서 연습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그 녹음 내용을, 마치 연습을 하는 것처럼 꼼꼼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연습할 방향을 정했습니다.
오후에도 한 시간이 연습시간으로 주어졌는데 이번에는 지난 한 시간 동안 녹음을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연습한 효과가 있어 훨씬 능률적인 연습을 할 수 있었지요. 그렇게 해서 두 시간의 연습시간을 2~3배 이상 활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대 리허설

 

대개의 경우 콩쿠르 참가자는 무대 위에서 각자 리허설을 할 시간을 배당받습니다. 1차 예선 전에는 5~10분 정도, 2차 예선 이후에는 그보다 좀더 긴 시간을 배당받는데, 아무래도 본인이 준비한 프로그램보다는 짧은 시간이 배당됩니다. 그러므로 리허설을 하기 전에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리허설 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획없이 리허설을 하면 무대 위에서 안 되는 부분을 반복해서 연습하다가는 시간이 헛되게 지나갈 수 있으니까요. 리허설을 할 때에는 빠르고 강한 부분보다는 느리고 작은 부분을 꼭 연습합니다. 피아노 건반의 깊이는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건반이 무거운지, 댐퍼의 상태는 어떤지, 페달은 무거운지, 가벼운지, 깊은지, 밟으면 바로 작동이 되는지 아니면 한참을 밟아야 울리기 시작하는지, 연주홀의 음향은 어떤지, 잔향음이 많은지 건조한지 등등 다 살펴보아야 하지요.

 

*실전에서의 연주

 

이제 콩쿠르가 시작되고 드디어 무대에 올라가 연주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준비한 만큼 얼마나 최선을 다하느냐 이겠지요. 사람들은 흔히들 1차예선은 테크닉을, 2차예선은 음악성을 중요시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심사위원들은 1차예선에서 완벽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연주자도 떨어뜨릴 때가 종종 있으니까요. 그 원인이 무얼까 하고 필자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결론을 얻었는데, 아하, 심사위원들은 1차예선에서 또 듣고 싶은 연주를 한 사람들을 2차예선에 올려보내는구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시 듣고 싶은 이유가 그 사람의 테크닉에 있던, 음악성에 있던 간에 말이죠. 예를 들어 테크닉이 완벽한 연주를 했어도, 매력적인 연주가 아니면 다시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겠지요.

 

6. 끝까지 머무를 것

처음 콩쿠르에 도전해서 곧바로 입상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의 경험을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콩쿠르에 참가하는 학생은 1차예선이든, 2차예선이든, 본선이든간에 떨어지고 나면 곧바로 짐을 챙겨서 그 곳을 황급히 빠져나갑니다. 그런데 사실은 콩쿠르에서 떨어지고 난 다음이 더욱 중요합니다.
제가 맨 처음 도전한 콩쿠르는 프랑스의 에피날 국제 콩쿠르였습니다. 당연히 예선에서 떨어질 거라는 저의 예상과 달리 2차예선에 올라갔는데, 악보를 잊어버리는 결정적인 실수로 보기 좋게 낙방하였지요. 떨어졌으니 집에나 가자 하고 빈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겠지만, 워낙 빈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 곳에서 개최된 콩쿠르여서, 여기까지 왔는데 본선까지 다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매일 심사위원과 똑같이 연주홀에 출근해서 모든 연주를 다 듣고 나름대로 점수도 매겨보고 분석을 하였습니다. 우수한 학생이 나오면 그 자체가 귀중한 수업이 되었고, 좋지 않은 연주를 듣게 되면 그것 또한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콩쿠르가 끝날 때까지 모두 다 듣고 빈으로 돌아간 이후 정작 놀란 사람은 다름아닌 필자의 지도교수 미카엘 크리스트였습니다. "원숙, 도대체 에피날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달라졌나요?"

 

7.한 콩쿠르 두 번 나가기

 

콩쿠르에 나가 고배를 마시고 나면 그 콩쿠르는 꼴도 보기 싫어집니다. 그런데 그 꼴도 보기싫어지는 콩쿠르를 잘 이용해 보시기바랍니다. 필자가 입상하였던 포촐리 국제 콩쿠르와 마르살라 국제 콩쿠르는 모두 두 번째에 다시 가서 입상한 콩쿠르들입니다.
처음 가는 길을 어디든지 낯섭니다. 어디가 어딘지 헤매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지요. 마찬가지로 콩쿠르도 그렇습니다. 낯선 곡에 무거운 가방 낑낑 매고 찾아가서 겨우 그 곳 지리와 여러가지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만일 그곳에 한 번 더 도전한다면 일단 낯선 곡에 대한 불안감은 덜 수 있겠지요? 콩쿠르가 개최되는 도시의 지리도 알고, 연주홀의 피아노도 알고, 또 콩쿠르 주최측의 운영시스템을 알게 되면 출발할 때부터 마음이 놓이게 됩니다. 마음이 놓이면 여유가 생기고 그렇게 되면 연주도 조금은 더 자신있게 하게 되겠지요? 그러니 한 번 나쁜 결과가 나왔다고 좌절하지 말고 다시 도전하는 마음가짐도 무척 중요합니다.

 

어때요? 도움이 되었나요? 그렇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조금 수월하게 생각되는 콩쿨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지요? 아니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프로그램만이라도 준비하는 시간을 보내세요. 한 가지 곡을 공부하는 것보다 열 가지 곡을 한꺼번에 공부하게 되면 어려움도 커지지만 그만큼 시너지 효과도 높은 것이랍니다.

 

 

음악춘추, 2002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