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앗, 나의 실수!\"
2007-11-27 13:32:08
허원숙 조회수 1232

한 해가 시작되면 올해의 계획들을 달력에 잡아본다.
몇 월에는 독주회, 몇 월에는 실내악 등등 무리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으로 연주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항상 돌발사태라는 게 문제다.
애당초 계획도 없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갑자기 닥쳐오는 것이다.
작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주회 일정이 포화상태로 더 이상은 어떻게 해 볼 여유없이 꽉 차 있는데 아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며칠 후에 독주회를 한다고 알리는 전화로만 알았는데 말이 점점 심상치 않게 변하더니
반주를 꼭 해 주어야 한다고 반은 협박, 반은 애원하며 공포심과 동정심을 마구마구 일으키게 만들었다.
결국은 "악보 빨리 주세요"하는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좀 심각했다.
쉽다구 쉽다구 하던 말과는 달리 연습해야 하는 부분들이 의외로 많았다.
독주회 연습하랴, 실내악 연습하랴, 학교 나가랴, 정신 없는 와중에 그 연습까지,
사면초가 지경에서 어느 덧 연주날이 되었다.

 

급히 잡은 연주회 일정이라 소규모 공연장에서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청중도 연주장 규모를 고려해서인지 한산한 분위기였다.
연습도 충분히 못하고 리허설도 몇 번 못해서 살얼음판을 걷는것처럼 한 곡 한 곡 연주해 나갔다.
곡 하나 끝나고 나면,
'휴, 이제 3곡 남았다',
'휴, 이제 2곡만 더'하며 연주를 하는데 마지막 곡에서 드디어 터질 일이 터지고야만 것이다.

 

모두 세 악장으로 된 곡인데 둘째 악장이 무척 까다롭고 마지막 악장은 조용히 끝맺음하는 곡이었다.
마치 슈만의 환상곡 작품 17처럼 곡예사가 줄을 타듯 복잡한 리듬과 화음 사이를 조마조마하며
제2악장을 무사히 끝낸 순간이었다.
곡이 끝난 줄로 착각한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어려운 제2악장을 무사히 끝낸 안도감에, 박수소리를 들은 나는
곡이 끝난 것으로 착각하여 피아노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청중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웬 걸, 연주자가 인사는 하지 않고 곤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박수소리에 파묻혀 조그맣게 들려오는 그의 말,
"아직 한 악장 더 남았어!"
순간적으로 나온 나의 대답,
"또 남았나?"
아니, 이럴 수가! 의기양양하게 일어나서 기분좋게 인사하는 순간까지
연주회가 끝난 줄로만 착각했었는데 이게 웬 말인가.
할 수 없다.
3악장을 마저 연주할 수 밖에...

 

다시 당당하게 의자에 앉아 3악장을 조용하게 끝맺음하고
더욱 더 정중히 인사를 하고 무대를 황급히 빠져 나왔다.
이윽고 무대 뒤에 따라온 제자들이 독주한 선생님에게 묻는 말이 내 가슴을 친다.
"선생님, 그런데 아까 왜 마지막 곡 연주하시고 또 다시 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