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예술가의 참된 역할
2007-11-27 13:30:45
허원숙 조회수 1350

"학생은 대학생활에서 가장 의미있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지난 1월, 대학입시 면접 때의 일이었다.
"봉사활동이요."
전공이 피아노인 나는 우리과에 시험보러 온 학생의 입에서 나온 대답에 적잖이 놀랐다.
"그렇다면 사회복지학과 같은 학과에 응시하지 그랬나?"
내가 되물어 올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지 못했는지 그 학생은 끙끙거리며 대답하려고 안간힘을 써다.
"그래, 맞아, 학생이 봉사활동을 한다면 당장에 양로원이나 고아원 같은 데에서는 일손을 덜었다고 좋아하겠지만, 설거지, 목욕시키기, 청소 같은 일들은 누구나 마음만 갖고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고, 학생은 남이 할 수 없는 피아노 연주로 그들의 마음까지 즐겁게 해 주고 위로해 주고 싶은 거지?"
내가 대신 대답까지 해 주는 바람에 그 여학생의 표정은 환하게 밝아지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그 질문은 오랫동안 내가 나 스스로에게 해 오던 질문 중의 하나였다.
"넌 누구니?"
나의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서이고,
"넌 무엇하는 사람이니?"
나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서이고,
"넌 어떻게 살았고 싶니?"
현재는 충실하게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았을 때 창피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질문.
"네가 하는 일이 남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니?"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다지는 질문이다.

 

내가 가르치던 학생 중에 유난히 동아리 활동에 관심이 많던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이 그렇게도 바라고 바라던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수화를 배우며 봉사활동을 하는 동아리였다. 그리고 자연히 그가 사귄 친구들도 음악하는 사람들보다는 사회과학을 전공하거나 그 계통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었다.
하루는 이 학생이 친구에게 음악회에 가자고 했다. 자신은 늘상 가던 곳이니까 별다른 생각없이 친구도 그러려니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 친구의 반응이 걸작이었다.
"나 음악회에는 안 가!"
놀란 내 학생.
"왜냐면, 으음, 너무 우아해서. 내가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기에는 너무 우아해서."
뭔가 남이 자신을 필요로 할 때에는 팔을 걷어붙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도와주는 데에 익숙한 그 친구는 현란한 조명이 햇살처럼 내리쬐는 좋은 시설에, 제일 멋있는 옷을 걸쳐 입고 우아한 차림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계속 앉아만 있다는 것이 무척 마음에 걸렸었나보다. 그리고 거부감이 밀려왔었나보다.

 

내가 하는 일이 남에게 도움을 주는 걸까?
나의 피아노 연주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걸까?
혹은 화가의 그림 한 폭이 세상을 달라지게 해 줄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발레리나가 만들어 내는 우아한 곡선이 세상을 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정신적 유산이니 정서교육이니 하는 거창한 구호를 외치기에 앞서, 우선 예술가들은 세상으로부터 빈축을 사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연주회장을 가득 메운 화환들, 연주를 하기에는 너무나도 화려한 치장. 그리고 세상을 향한 고민의 흔적이 없는 연주....

 

지금 우리는 아시아에 불어닥친 금융위기의 거센 바람에 경제는 물론이고, 교육,문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매일 부도를 내는 기업이 줄을 서고 있고, 학교도 도산위기에 있는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라고 한다.
이 모든 일들을 해결해야 할 정치계는 날이면 날마다 세력싸움에 조용할 날이 없고 결국 그 피해는 대대로 물려오던 조상님 가락지까지 금모으기운동에 서슴없이 바치는 선량한 보통사람들에게 돌아오고있다. 하루 아침에 가장이 직장을 잃고 학생은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마당에, 예술이니 문화니 하는 것은 정말 한가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어질 지도 모른다. 그들이 보기에는 우리들은 신수 좋은 한량 쯤으로나 보일런지 모른다.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이 만든 영화 중에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이란 영화가 있다. 어떤 살인자와 그 살인자를 심판하기 위해서 합법적으로 사형을 집행하는 또 다른 살인자. 법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생각하면 그들은 똑같은 살인자라는 것이 그 감독의 주장이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러나 그 영화에서 더욱 더 내 생각을 사로잡은 것은, 그 주인공이 난간 위에서 무심코 발견한 작은 돌멩이 하나를 정말 재미삼아 살짝 밀어 떨어뜨렸을 때, 그 난간 밑을 지나던 차가 급정거를 하면서 파괴되고 뒤이어 달려오던 차와 부딪치며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었다.
우리가 무심코 하는 행동 중에도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악의가 없었기 때문에 그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예술인이 무심코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고 소외감을 느끼고 괴로워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탓이 아니라고만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술이 언제부터 우리 사회를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구분짓는 잣대 역할을 해 왔으며, 언제부터 예술가가 부의 대명사처럼 되어 왔는가! 오히려 예술인들은 소외되고 멸시받는 사람들이었다고 나느 생각되어진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로 말미암아 예술이 고독한 영혼을 불사르고 찬란한 결실을 맺어줄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정말 우리 예술인들은 대학입시 면접 때에 내게 말했던 그 학생처럼 봉사활동을 나가야 하는 대상이 되어야 할 불쌍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예술가가 대접받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흠모의 대상이 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는 우리의 본분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한다. 그래서 정말로 남들이 하지 못하는 봉사를사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참다운 예술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정말로 남들이 주지 못하는 참다운 위로와 감격을 전달해 주는 메신저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오늘도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너 정말 필요한 존재니?"
"너 정말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니?"
"네가 한 일 남들도 고마워하니?"

 

 

문화공간, 1998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