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영인본에 관한 짧은 생각 (계간 수필, 예술가의 수필...허원숙 편)
2010-04-16 02:17:45
허원숙 조회수 5045

영인본에 관한 짧은 생각

 

내게는 보물처럼 간직하는 악보가 하나 있다. 그것은 베토벤이 마지막으로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작품 111의 자필악보의 영인본이다. 영인본이란, 작곡자가 기보한 악보가 필경사의 손을 통해 식자 작업을 거쳐 악보로 인쇄되기 전의 단계로, 작곡자가 그려놓은 그대로 사진으로 찍어 그것을 종이에 인쇄한 악보를 말하는데 그야말로 작곡가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악보다.

 

그런데 베토벤의 이 악보를 보면, 베토벤이 어찌나 숨가쁘게 적어 내려갔는지, 음표의 콩나물 대가리 (앗, 대가리라고 해서 죄송하지만, 이것보다 더 리얼한 표현은 없기에...)는 온데간데없고, 콩나물 줄기만 가득하다. 그리고 바람 부는 밀밭의 풍경화라도 그린 것처럼 오선지 위에 사선으로 쫙쫙 그어댄 펜 자국만 선명하다. 게다가 이따금씩 상하좌우로 펜을 휘갈기며 빡빡 시커멓게 지운 흔적까지, 이 악보를 그린 주인공이 베토벤만 아니라면 곧바로 휴지통으로 직행할 수준의, 망친 듯한 악보인 것이다. 그런 그 악보가 나의 보물 1호다.

 

사실, 악필 그 자체인 이 악보를 피아노 보면대 위에 올려놓고 연습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악필을 지나, 난필이 된 악보는 그저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이맛살을 찡그리면서 찬찬히 뚫어져라 쳐다봐야만 겨우 식별이 되는 정도라고나 할까. 빈 유학시절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를 공부하면서 꼭 구입하리라 마음먹었던 이 영인본 악보를 산 나는 가끔씩 이 곡을 공부하는 제자들에게 보여주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제자들이 하는 말도 제각각이다.

 

“우와, 멋있어요, 선생님! 역시 베토벤은 멋있어요”

- 선생님이 하는 것에 무조건 좋다고 하지 않았다간 혹여 후환이라도 있을까 두려운 소심한 제자의 반응이다.

“이 악보 비싸요?”

- 피아노보다는 경제학이 더 어울리는 제자.

“어디서 사셨어요?”

- 마치 당장에라도 달려나가서 사올 것 같은 행동파 제자의 모습까지...

하지만 뭐, 그 정도까지는 다 예상했던 질문들인데, 어느 날은 한 제자가 곰곰 생각하다가, 삐죽 한 마디 던진다.

“이거 도대체 왜 사신 거예요?”

 

‘...글세... 왜일까?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악보를 보고 있으면 알 수 없는 영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베토벤의 위대한 작품이 탄생되는 순간이 생중계되는 것 같지 않니?’

요렇게 말해야 선생인 내가 좀 멋있었을텐데, 사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난필인 베토벤의 영인본을 그야말로 내가 왜 비싼 돈 들여 주문해서 힘들게 샀는지 나도 이해가 안 가기에, 그 질문을 한 제자에게 속사포처럼 쏘아대었다.

“좋잖아! 왜, 넌 싫냐?”

 

그런데 사실 이 애물단지 악보를 통해서 내가 배우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그 내용의 정확성이다. 베토벤은 그렇게 지저분하고 거친 필체에도 불구하고 놀랄 정도로 엄청 까칠하고 치밀하게 표기했다. 요즘은 컴퓨터로 악보도 그리는 세상이라 프로그램만 한 번 익히고 나면 악보 그리고 지우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어디 예전에는 그랬었나! 펜으로 조심조심 기보하다가 펜촉에서 잉크라도 한 방울 떨어질까 노심초사해야하고, 정성들여 그린 악보의 잉크가 혹여 번지지나 않을까 조심해야하고, 펜을 든 처음부터 마지막 놓는 순간까지 엄청난 집중을 요하는 고된 작업이었었다. 그런데도 베토벤은 처음부터 휘갈기는 필체로 알아보기 힘든 악보를 적어나가면서 틀린 곳은 찍찍 펜으로 그어가며 작업을 했고, 또한 너무나도 많은 수정을 해야 하는 부분은 종이를 덧대기까지 했던 것인데, 그런 지저분한 악보가 오점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는 것은 정말 나에게는 경이적인 일이었다. 마치 어지럽게 물건이 널려있는 방의 위생 상태가 100점인 것만큼 놀라운 일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감탄할 일은, 그런 황당한 낙서 같은 자필악보가 필경사의 식자 작업을 거쳐 원전악보로 출판될 때, 베토벤의 거칠고 알아보기 힘든 필체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고증과 연구가 거듭된 끝에 99.9퍼센트 확실한 인쇄악보로 재탄생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베토벤의 이 곡을 연주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원전악보의 내용이 베토벤의 확실한 의도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에 반해, 쇼팽의 악보는 어떤가?

일단, 쇼팽은 이발소에서 방금 단장을 마치고 나오신 깔끔한 외모처럼, 그의 영인본 자필악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엄청 예쁜 필체를 갖고 계시다. 그리고 정말 단정하게 잘 기보하셨다. 여기까지는 아주 내 맘에 드는 분이시다. 하지만 그 악보를 들고 연습이라도 해볼라치면 곧바로 어려움에 봉착하고야 만다.

 

그것은 베토벤의 자필악보와는 전혀 다른 문제인데, 쇼팽의 경우에는 원전악보라고 우기는 악보들이 너무 많고, 그 악보들이 서로 너무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반음 올림과 내림을 나타내는 임시표는 물론이려니와, 음표, 리듬, 음악의 숨을 나타내는 프레이즈까지 달라서 한 곡 제대로 쳐보려면 어느 덧 피아노 위에는 대여섯 가지의 출판사의 악보들을 가득 펼쳐놓고 비교해보아야만 한다. 물론, 쇼팽은 악보를 출판한 후 자신의 제자들에게 수업교재용으로 악보를 사용하면서 무수히 많은 음들을 고쳤었다. 이 제자에게는 이렇게, 저 제자에게는 또 다른 방법으로 악보를 고쳐주며 수업을 하곤 했었고, 그 수업을 받은 제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악보가 맞다고 우기면서 자신의 악보를 출판하게 된 것. 그러니 딱히 어느 악보에게 방점을 줄 수도 없는 상황인 것. 음도 다르고 표현도 다른, 여러 가지 형태의 오리지널 쇼팽이 공존하는 셈인 것이다. 오리지널이 여러 개라니? 베토벤 같으면 이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을텐데...

 

쇼팽의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악보를 펼쳐놓고 연습을 하노라면 정말 난감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쇼팽이 살아있다면 어떤 악보가 확실히 맞는 것인지 따지고 물어보고 싶을 지경인데, 신기한 것은 요즘 나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쇼팽의 악보마다 여러 가지로 다르게 표기되어있는 것은 혹시 그 음악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로 시작하는 나의 생각은, ‘그래서 이 제자에게는 이런 방법을 시도해보고, 저 제자에게는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해 본 것은 아닐까?’로 가더니 급기야는 ‘그렇다면 모든 것이 다 맞는 것 아닐까?’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는 나 스스로 책망하기까지 한다. ‘괜히 나는 비교대상이 될 수도 없는 베토벤과 쇼팽을 억지로 하나의 잣대로 맞추려고 한 것은 아닐까? 난 그런 성격부터 고쳐야 해!’

 

어찌되었든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자필악보가 100퍼센트 맞는 작곡가도 있고, 아닌 작곡가도 있으니 무엇이든 맹신은 하지 말 것. 베토벤은 분명하고 확실해서 베토벤이고, 쇼팽은 모호하고 다양해서 쇼팽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나의 보물 1호, 베토벤의 소나타 영인본을 들여다보며, 이번에는 어떤 황당한 반응을 제자가 보여줄 지 짓궂은 상상을 해본다.

 

 

--------------계간수필 2010 봄호 <예술가의 수필>허원숙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