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꿈은 이루어진다.
2009-11-01 02:15:53
허원숙 조회수 4165

 

 

“엄마, 우리 세계여행하자.”

 

어릴 적부터 유난히 피아노를 좋아하던 아들은 상황극 만들기를 좋아했다.

“엄마, 우리 세계여행하는거야. 엄마가 아주 큰 연주회장 객석에 앉아있는 거야. 자, 앉아봐”

엄마는 아들 손에 이끌려 피아노 옆에 앉았다.

그리고 아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짝! 짝! 짝!

아들의 연주가 끝나자 1000명 관객의 대표로 엄마가 힘차게 박수를 친다.

그러자 아들이 또 엄마에게 주문한다.

“엄마, 이렇게 말해봐. ‘어느집 애가 저렇게 잘 치지?’”

엄마는 아들 말이 떨어지자마자

“어유, 어느집 애가 저렇게도 잘 치지~?” 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 애가 오늘 지금 이 순간, 무대 위에 앉아있다.

천 석이 넘는 객석 안에는 그 엄마도 앉아있다.

며칠 전부터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돌며 순회연주회를 하고 있는 그 아이는

이제 한국의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유럽에서, 미주에서, 전세계를 향해 마음껏 그의 향기를 발산하고 있다.

바로, 피아니스트 김선욱이다.

수없이 그의 연주를 들었지만,

한 번도 같은 연주는 없다.

한 번도 같은 느낌은 없다.

항상 진행형, 항상 움직이는...

그래서 항상 그의 연주가 그립다.

 

며칠 전 들었던 그의 베토벤에는

이제 베토벤이 들어와 계시다.

베토벤 님이 직접 치고 계시다.

오늘 들은 프로코피에프 소나타는

성질도 포악한 프로코피에프가 주먹질을 해 대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가 연주하는 쇼팽의 뱃노래는..

그는 사랑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쇼팽 소나타 3번.

기품과 절제와 설레임이 있다.

그리고 앵콜곡으로 선사한 모차르트의 론도 A 단조는

고독과 연민의 감정이 승화되어 있다.

그의 연주를 들으면

다른 젊은 연주자에게서 찾을 수 없는

인품이 느껴진다.

왜일까...

 

그런데 오늘 그 의문이 풀렸다.

어린 시절 상황극을 만들며

장차 실현하고픈 꿈을 그리며

비록 연습실에서 엄마와 단 둘이 있더라도

세계적인 무대를 꿈꾸며 거기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그 아들을 대견해하며

묵묵히 의자에 앉고,

박수를 쳐 주고,

어느집 아이가 저리도 잘 치지.. 하며 용기도 북돋워주던

그 엄마의 마음이

아들을 이렇게 만드셨구나.

바라보고 미소지어주던 그 얼굴이

그 아들을 훌륭하게 만드셨구나.

그리고 그 아들은,

허황될 것만 같았던 그 꿈을

차곡 차곡 쌓아간다.

 

아들이 이 정도면

엄마 목에 힘 좀 들어갈만도 한데,

그의 엄마는 늘 겸손하다.

그리고 늘 꾸밈이 없다.

그래서 존경한다.

 

낳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길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우,

눈물나는 나.

나 왜 이리 주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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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31. 김선욱 독주회 (고양 아람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