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언제나 0에서 시작하는"...라자르 베르만 2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8-04-19
2008-04-13 14:48:59
허원숙 조회수 2745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8년 04월 19일 원고....Lazar Berman (2) “언제나 0에서 시작하는 ”

(b. Feb.26.1930 Leningrad - d. Feb.6.2005 Firen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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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리스트 콩쿠르와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입상하고도 가려져있다가, 리스트 초절기교연습곡 음반으로 광풍으로 몰아치며 세상 밖으로 나온 피아니스트.

하지만 프랑스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12년간 러시아 밖으로 연주를 하러 나가지 못하게 된 피아니스트 라자르 베르만의 인생...

 

출국 금지령이 내렸으니 이제는 소련내에서만 연주하고, 그것도 열악한 조건의 피아노로 연주해야 하고 외국에서 연주 제의가 와도 정부로부터 외면당하고, 자신의 아파트는 좁은 방 2개에서 방 하나에는 피아노가 들어가면 꽉 들어차는 방이었던 그런 집에 살았다는데, 1975년 이후로는 갑자기 DG EMI CBS 같은 음반회사들로부터 녹음 제의를 받고 하루아침에 달라진 삶을 살게 된 라자르 베르만.

그 원인은 우연히 베르만의 음반을 알게 된 에이전트가 연주회를 주선하면서부터였죠. 45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미국 뉴욕 데뷔를 하고, 카라얀과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연주했는데요, 해롤드 숀버그는 라자르 베르만을 가리켜 “이 세상에 가장 희귀한 음악가이며. 정말 진짜 우울한 낭만주의자이고 무대 위에서 효과적으로 쏟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는데요.

 

그렇게 시작한 미국 연주회가 단 1회에 그친 것이 아니었구요. 1976년부터 1979년까지 4년동안 혼자 미국을 돌아다니며 광풍같은, 번개같은 130회의 연주회를 가졌고, 성공적인 연주회를 마친 후, 드디어 소련으로 돌아가던 라자르 베르만은 황당한 사건을 만납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금서 사건이었는데요, 베르만이 미국에 4년동안 연주여행으로 체류하고 있을 때 러시아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미국 사람 Hedrich Smith 가 지은 책 “the Russians"라는 책을 소개받게 되는데, 러시아로 떠나기 하루 전 베르만은 그 책을 사서 가방에 넣고 러시아에 갑니다. 그리고 러시아 세관에서 걸린 거죠. 그 책은 러시아에 대한 좋은 말만 써 있는 책이 아니라 러시아에서는 금서로 지정해놓은 책이었는데, 금서인 줄도 모르고 베르만이 가지고 들어가다 걸리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4년 동안 외국 연주여행 금지 명령이 내려집니다.

그러니 이 연주자에게 출국 금지명령이란, 미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연주회 이후로 얻은 많은 연주회와 음반 작업 계약을 모두 다 취소해야 하는 것을 말하죠. 그 많은 지휘자, 오케스트라, 매니지먼트 회사, 음반회사 그 많은 계약들.....

 

음악 듣겠습니다.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제9번. 라자르 베르만의 1961년 연주입니다.

(연주시간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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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르 베르만의 인생은 4자성어로 말한다면?

“나-가-지-마”

 

엉뚱한 책 한 권으로 또 다시 4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그 동안 얻은 모든 것, 지휘자, 오케스트라, 매니지먼트,음반... 그 모든 것들을 다 잃고 또 다시 아무 것도 없는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삶. 피아니스트로 이미 나이는 50대 중반을 넘어섰고...

예전의 대연주회장, 대음반회사, 대지휘자, 대매니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1990년 60살이 넘어서야 다시 연주 여행을 시작한 베르만에게 무대는 더 이상 카네기홀이 아닙니다. 음반회사는 더 이상 DG가 아닙니다. 카네기홀은 젊은 예술가로 꽉 차있습니다. DG는 팔릴 음반만 만듭니다.

 

베르만은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 4년 동안 130회의 연주회를 다녔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고 하죠. “생각해보세요. 그것은 거의 공포감에 가까운 것이었어요. 4년동안 친구도 없이 혼자 전 미국을 돌아다니며 130회 연주회를 매번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산다는 것, 결코 멋있는 삶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1990년 이후에는 무대도 조금 작은 곳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자신의 아들 Pavel Berman을 반주하면서 반주자로 조금씩 무대에서고, 대신 가르치고 심사하고 하는 일들을 즐기면서 살았는데요.

 

소련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금서사건이 났을 때 이미 굳혔다고 하죠. 그리고는 1990년에 오슬로에 연주하러 갔다가 그곳에는 정착할 기반을 잡지못하고 이태리의 친구로부터 이몰라 아카테미에 계약을 해 줄테니 그곳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새로운 삶을 또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재능많은 어린 피아니스트들을 가르치면서 보람과 기쁨을 찾는 또 다시 0에서부터 시작하는 삶을 살고 이태리 시민권을 얻고 10년쯤 사시다가 2005년 2월 5일 심장마비로 피렌체에서 세상을 뜹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말이 있대요.

그것은 악보에 무엇이 쓰여있는가가 아니라, 왜 쓰여있는가를 생각해보라는 말인데요. 젊은 시절 자신의 스타일의 주된 힘은 Lyricism, Clarity, virtuosity 라고 말했던 것에서 얼마나 그분의 음악에 대한 비전이 달라졌는지를 잘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라자르 베르만의 자서전이 있는데요, 독일어와 러시아어로만 나와있습니다. 제목은 “The Years of Peregrination, A Musician's Reverie" (순례의 해. 음악가의 꿈)

 

음악 듣겠습니다.

리스트가 편곡한 슈베르트의 가곡입니다.

겨울나그네 중에서 Der Leiermann 거리의 악사, Taeuschung 환상, 이어서 실잣는 그레트헨, 마왕. 라자르 베르만의 연주입니다. (연주시간 2:04+1:41+4:24+4:50= 약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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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렐스가 그랬다죠. 리히터와 길렐스를 합해도 베르만처럼 치지 못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