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음악 세계가 번개맞는 순간"...라자르 베르만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8-04-12
2008-04-13 14:46:35
허원숙 조회수 2874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8년 04월 12일 원고....Lazar Berman (1) “ 음악세계가 번개 맞는 순간 ”

(b. Feb.26.1930 Leningrad - d. Feb.6.2005 Firen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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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피아니스트는요...

뉴욕 타임즈의 대 음악비평가 해롤드 숀버그가 1961년에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이 분의 연주를 듣고, 이 피아니스트는 20개의 손가락을 가지고 불을 내뿜으면서 연주한다고 말했던 분입니다. 이 분이 40대 중반에 뉴욕에서 데뷔할 때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을 연주했는데, 음악세계가 번개 맞는 순간이었다는 평을 들은 피아니스트.

누굴까요?

라자르 나우모비치 베르만 ( Lazar Naumovich Berman )입니다.

 

라자르 베르만은 1930년에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났고요, 2005년 이태리의 피렌체에서 세상을 뜨셨습니다.

베르만이라는 이름에서도 아시겠지만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라자르 베르만은 피아니스트였지만 귀에 문제가 생겨서 피아노를 그만둔 엄마에게서 2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는데요, 3살에는 레닌그라드 음악원에 입학해서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7살에는 모차르트 환상곡, 마주르카 그리고 자신이 작곡한 곡을 녹음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신기한 것은 그 때까지 악보를 읽지도 못하면서 귀로만 들어서 피아노를 쳤다고 하죠.

 

1939년(9살)에 모스크바로 이사를 가서 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에 들어가서 Alexander Goldenweiser를 사사 (1940-50년대)하고 1953년 졸업 후에는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나 소프로니츠키, 마리아 유디나에게도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1940년(10살)에는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5번을 연주하면서 정식 무대에 데뷔했는데, 1941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강제소개령이 나서 베르만의 가족들은 모스크바를 떠나 볼가강 근처의 도시인 Kuibichev(쿠이비체프)로 갔는데, 그곳의 생활 환경이 너무 열악하고 추웠는데, 어린 피아니스트 아들의 장래를 걱정한 어머니는 아들이 계속 피아노를 칠 수 있게 해주려고 자신의 장갑을 끼워주느라고 자신은 동상에 걸려 결국 손가락을 잘리고 말았다고 하네요.

 

그 어머니의 사랑의 힘인가요...

그 후에 1951년 동베를린에서 개최된 <공산주의 청소년 축제>의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 수상을 시작으로 1956년 부다페스트의 리스트 콩쿠르에서 3위, 1956년에 브뤼셀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5위 입상을 하게 됩니다.

 

1등을 했어야 할 텐데... 3등, 5등.... 그 후 1958년에 런던에서 연주회를 했는데, 큰 관심을 끌지 못하던 라자르 베르만... 바로 이 음반 하나가 그를 세상 밖으로 꺼내줍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프란츠 리스트의 초절기교연습곡 중에서 제5번 <도깨비불>, 제4번 <마제파>를 라자르 베르만의 1959년 녹음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3:27+7:2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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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라자르 베르만은 바로 이 대단한, 가공할만한 초인적인 테크닉의 초절기교연습곡을 가지고 러시아의 멜로디야에서 음반을 녹음하고 그 레퍼토리로 유럽을 연주여행을 했는데, 바로 그 음반으로 인해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라는 명성이 확고하게 되었다고 하죠. 에밀 길렐스는 라자르 베르만을 가리켜 “음악세계의 현상 the phenomenon of the music world" 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요, 뉴욕 타임즈의 대음악비평가 해롤드 숀버그도 베르만의 연주를 1961년에 모스크바에서 듣고 “이 피아니스트는 20개의 손가락을 가지고 불을 내뿜으면서 연주한다”고 말했고 말했고요.

 

그런데, 이런 사람이 왜 서방세계에는 40대가 되어서야 알려지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부인 때문이었는데요.

라자르 베르만은 26살에 결혼을 했는데, 부인이 프랑스 사람이었어요. 베르만은 유대인, 언제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사람이 프랑스로 망명이라도 할까 두려운 소련 당국은 베르만에게 12년동안 외국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지요. 부인은 프랑스로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고, 결국 정부에서 이혼을 시킨 셈이 되었는데...

그러니, 다시 1951년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하면, 21살에 동베를린 청소년 콩쿠르에서 1등하고 다시 러시아로 돌아간 베르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생계를 유지하려고 연주하는 일이었다고 하는데요. 모스크바보다 지방이 더 개런티를 많이 주기 때문에 지방으로 연주를 하러 가면 조율 안 된 피아노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어프라이트 피아노에서 연주할 때도 있었다고 하죠.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들은 협연도 한다던데 그런 기회는 전혀 없었고요... 그러다가 리스트 콩쿠르, 엘리자베스 콩쿠르 입상을 했는데도 별 기회가 없다가, 초절기교연습곡 음반과 연주로 인해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면서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프랑스인이 부인이라는 이유로 12년간 외국에서의 연주가 금지된 지경이니...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강제로 이혼을 당하니 그 마음이 어땠겠어요.

 

그리고 나서 다시 금지된 장벽이 열린 것은, 이제 그 부인이 새로 결혼을 했기 때문에 베르만이 부인으로 말미암아 망명을 하진 않을 것이라는 판단때문이었는데... 이미 나이는 40대가 넘은 나이였고, 피아니스트로 성공하기에는 이미 늦은 나이가 되어버린 거였죠.

그러던 1970년대 중반 미국의 에이전트가 베르만이 연주한 초절기교음반을 듣고 계약을 하게 됩니다. 1976년부터 1979년까지 4년에 걸친 미국 투어가 시작된 거죠.

물론 국제 열성팬들은 그 전부터 베르만의 명성을 듣고 또 멜로디야 음반을 구해서 듣고 또 러시아를 방문해서 연주회에 가기도 하면서 입소문과 음반으로 인해서 베르만을 잘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초절기교연습곡을 뉴욕 데뷔연주회에서 본 사람들은, “음악 세계가 번개 맞는 순간이었다”라고 음악계의 사건으로 보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카라얀과 함께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음반을 만들고 드디어 최고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지요.

 

그런데요... 그런 라자르 베르만을 소련은 가만 두지 않네요. 또 4년간 외국 연주 금지령이 내렸습니다.

왜? 그 이유는 다음 시간에... ^^

 

음악 듣겠습니다.

스크리아빈 소나타 제3번 op.23 제3악장 Andante와 제4악장 프레스토 콘 푸오코.

라자르 베르만의 일본 연주실황 (1977년)입니다. (연주시간 4:48+ 5:5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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