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더 이상의 모차르트는 없다"...릴리 크라우스 3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8-04-05
2008-04-13 14:43:31
허원숙 조회수 3085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8년 04월 05일 원고....릴리 크라우스 Lili Kraus (3) “더 이상의 모차르트는 없다”

(b. Budapest, March 4, 1905; d. Asheville, North Carolina, Nov. 6,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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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동남아 연주여행 중 일본군의 공격으로 전쟁포로로 3년간 자바의 수용소 생활 후 전쟁이 끝난 1945년 호주와 뉴질랜드를 중심으로 연주활동을 하다가 1948년 유럽으로 돌아와 개최한 첫 연주회에서 최악의 평가를 받은 피아니스트.

 

릴리 크라우스의 생명이라면 빛나는 섬세함일진대, 다시 돌아온 릴리 크라우스의 연주에서는 광채도 섬세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비참한 평을 받은 피아니스트가 이제 할 일은?

다시 연습을 시작하는 것이었죠.

그동안 좋지 않은 악기로 연습하고 연주하던 생활이 계속되면서 무디어져가는 자신의 귀와 손을 재정비하는 43세의 중견 피아니스트.

릴리 크라우스는 최근의 자신의 연주를 되돌아보면서 스스로 생각합니다.

“나의 연주는 연습이 안 된, 지리멸렬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 체하는, 바보 같은 연주였다. 지치지 말고 다시 시작하자. 연습도 다시해서 재정비하고, 연주도 다시 시작하자. 작은 도시에서부터 하나하나...”

 

그렇게 연습을 시작한 후에 연주회를 또 다시 처음 시작한 곳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습니다. 그 곳은 말하자면 유럽의 엄격한 음악과 날카로운 비평으로부터 숨을 쉴 수 있는 곳이었고, 시간을 두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재정비할 수 있는 곳이었죠.

그 곳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의 Stellenbosch 대학교의 피아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연습도 다시 하고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재정비한 후에 다시 유럽의 청중에게로 다가갔을 때, 비로소 릴리 크라우스의 눈 앞에 성공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이죠.

그런데, 릴리 크라우스가 전후 유럽에서 성공하지 못한 것을 그녀 자신의 망가짐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다른 곳에 이유가 있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전후 유럽은 후기 낭만이 유행하던 시대였고, 또 피아니스트로는 거인 피아니스트를 선호하던 시기였다고 해요. 예를 들어서 박하우스, 에드빈 피셔, 빌헬름 켐프 같은 분들... 그런데 릴리 크라우스의 연주는 그 분들과는 아주 다른 해석 방식을 가지고 있었고요, 영웅적이라거나, 투쟁적인, 승리하는 그런 연주가 아니라, 인간의 본연의 모습으로 연주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전쟁을 겪은 독일 사람들에게는 릴리 크라우스의 연주가 큰 위로가 되지 못했던 가였다고.

 

음악 듣겠습니다.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 E flat 장조 Hob. 52 중에서 1악장 Allegro moderato 를 릴리 크라우스의 피아노로 보내드립니다. 1955년 녹음 (연주시간 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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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찾아간 유럽에서 릴리 크라우스를 반긴 곳은 프랑스의 음반회사였습니다. 프랑스의 디스코필 프랑세 ( Les Discophiles francais) 에서는 릴리 크라우스의 모차르트 연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모차르트의 피아노 솔로 작품과 실내악 작품의 전곡 녹음을 하자고 제안을 했는데, 연주야 물론 20대의 나이에서부터 수용소에 있을 때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 연주 등등 많은 연주를 했지만 음반으로는 남아있지 않았는데, 이제야 비로소 릴리 크라우스의 연주가 음반으로 기록되기 시작합니다.

그 당시의 프로젝트는 피아노 소나타를 비롯해서, 실내악 바이올리니스트 빌리 보스코브스키 (Willi Boskowsky)와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녹음하고, 첼리스트 니콜라우스 휘브너 (Nikolaaus Huebner)와 합세해서 모차르트 피아노 트리오를 녹음하는 일이었습니다.

요즘은 전곡 녹음이 성행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일이 흔치는 않은 일이었죠. 그래서 그런지? 트리오는 다 녹음하지 못한 채 프로젝트는 무산되고 부분적으로 몇 곡만 남아있습니다.

 

릴리 크라우스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음반으로는 51세였던 1956년 모차르트 탄생 200주년 기념음반 (mono) 이 있고요, 10년 후에 1966-67년 사이에 뉴욕에서 다시 한 번 모차르트 소나타와 협주곡 전곡을 연주하고 녹음한 CBS음반 (stereo)이 있는데 연주력이나 또 녹음품질로도 단연 MONO 가 뛰어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고난을 겪고 맺은 첫 열매와도 같은 음반의 내용이, 기술이 발전하고, 또 환경이 풍요해도 따라갈 수 없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나봅니다.

릴리 크라우스는 1967년 미국의 달라스의 텍사스 크리스찬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반 클라이번 콩쿠르를 만들고, 노스 캐롤라이나에 있는 딸과 함께 <music in mountains> 라는 섬머 페스티발 만들고 연주활동을 하면서, 레코딩 작업을 하다가 1986년 11월 6일 슈베르트 음반 녹음을 끝으로 노스 캐롤라이나의 애쉬빌에서 숨지게 됩니다.

 

릴리 크라우스는 대중에 나타나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했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라면, 음악적인 해석은 그 자체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다른 모든 것들, 이를테면 사생활이나, 연주하는 사람의 생각과 느낌은 절대로 음악에 관계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이 분이 남달리 우여곡절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 부담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릴리 크라우스가 모차르트에 대해 말한 것을 읽어드릴께요.

“모차르트는 타오르는 불입니다. 인간의 심연의 슬픔에서부터 기쁨까지 표현해 내면서도 감정의 최고점조차에서조차 겸허합니다.”

이런 생각과 자세를 가진 크라우스의 모차르트가 이상적인 모차르트가 아니라고 한다면 더 이상의 모차르트는 이 세상에 없지 않을까.....크라우스를 향한 사람들의 중론입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K.403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2악장 안단테, 3악장 알레그레토. 릴리 크라우스의 피아노, 빌리 보스코브스키 (Willi Boskowsky)의 바이올린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5:09+3:05+4:43=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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