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이곳을 떠나자"...릴리 크라우스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8-03-22
2008-03-30 19:53:51
허원숙 조회수 2641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8년 03월 22일 원고....릴리 크라우스 Lili Kraus (1) “이 곳을 떠나자 ”

Lili Kraus (b. Budapest, March 4, 1905; d. Asheville, North Carolina, Nov. 6,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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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이 분은요,

첫 번째 힌트.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의 연주로 정평이 나 있는 피아니스트인데요, 특히 모차르트 소나타는 두 번이나 전집 레코딩을 낸 분이죠. 이 분은 모차르트 연주 후에 “만인은 이 분의 발 아래 무릎 꿇어야 한다” 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고요.

두 번째 힌트.

2차대전 막바지에 동남아에 연주여행 갔다가 자바 섬에서 일본군의 포로로 3년간 수용소살이도 한 여성 피아니스트입니다.

누굴까요?

릴리 크라우스입니다.

 

릴리 크라우스는 어릴 적 아주 순탄한 영재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었습니다.

1905년 3월 4일 체코인인 아버지와, 헝가리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서 6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서 8살에는 부다페스트 왕립음악원에 입학해서 졸탄 코다이와 벨라 바르톡을 사사했고요. 17살에 최우수성적인 Konzertexamen을 받고 졸업한 후에, 오스트리아 빈 음악원의 Meisterklasse로 들어가 Eduard Steuermann의 지도를 받습니다. 그리고 스무 살에 졸업과 동시에 빈 음악원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끝! 박수 짝짝짝! 이렇게 순탄한 삶이 또 있을까.... 그런데 릴리 크라우스는 이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자신의 능력을 알았고요, 그 능력의 한계점은 아직 다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결심합니다.

이 곳을 떠나자!

 

1930년 25세의 피아니스트 겸 교수님이었던 릴리 크라우스는 자신의 평생직장일 수 있는 빈 음악원의 교수직을 버리고 베를린으로 갑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아르투르 슈나벨을 만나게 되지요. 미래를 보장받은 교수직을 버리고 다시 학생신분으로 돌아간 릴리 크라우스는 슈나벨의 매스터클래스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성공적으로 학업을 마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이 분의 성공의 길이 보장되었을까...

 

일단 음악을 들으시겠습니다.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A flat 장조 Hob.46번 중에서 제1악장 Allegro moderato, 제3악장Finale (Presto) 를 릴리 크라우스의 1956년 녹음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8:09+2:3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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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릴리 크라우스는 20대 후반이었는데요, 이렇게 연주도 좋고 특히나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처럼 독일어권 작곡가의 연주가 탁월했는데도, 독일 내에서 그렇게 인정을 받지는 못했어요.

그저, ‘장래 촉망되는 쇼팽연주자의 한 사람일 것이다...’ 라는 정도?

그리고 당시 바이올리니스트 Szymon Goldberg 와 함께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실내악 연주를 많이 하였는데요, 그것만 가지고 이 분을 솔리스트에서는 제외시키고, 그저 실내악 연주자로 아주 이상적인 파트너가 될 것이다... 정도로만 인정하는 정도?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릴리 크라우스는 독일에서 인정 받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남편 때문이었는데요.

남편이 철학자인 오토 만들(Otto Mandl) 이라는 사람인데, 이 분이 독일계 유대인이었던 거죠. 당시는 나치 정권 치하였고, 남편이 유대인인 사람은? 매우 힘들었죠.

 

1934년. 릴리 크라우스는 또다시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합니다. 그 새로운 곳은 영국이었는데요...

인생은 아이러니인지요.

교수직으로 보장되어있는 성공을 박차고 더 큰 성공을 이루겠다고 빈을 떠나 베를린으로 갔을 때는 오히려 성공에의 길이 막혀 있었고, 이제는 유대인 남편 때문에 오로지 생존하기 위해 피신처로 선택한 영국에서 이제 연주자의 길을 제대로 걷게 되고 또 성공을 하고 이름을 드날리게 되지요.

새옹지마 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분.

그러니, 거의 바이올리니스트의 실내악 파트너로만 여겨지고 솔리스트의 삶은 묻혀버릴 뻔한 릴리 크라우스의 연주 생명은 영국에서 구출되었다고나 할까요..

처음에는 유럽을 순회하면서 연주회를 가지다가, 후에는 일본, 호주, 남아프리카 등등 점점 연주 무대가 세계로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어찌나 다행인지...

 

음악 듣겠습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9번 E 플랫장조 K.271 중에서 1악장 Allegro, 2악장 Andantino.

릴리 크라우스의 피아노, Victor Desarzens가 지휘하는 빈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의 1959년 녹음입니다.

(연주시간 9:55+ 10:3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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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크라우스는 지금 들으시고 느끼셨겠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모차르트 연주가인데요, 이분의 모차르트 연주는 모차르트 연주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 유행하고 있던 후기낭만의 엄청난 스케일의 거인 같은 연주스타일을 거부하고, 섬세하고 디테일한 작업을 충실히 하면서도 전체의 흐름과 호흡을 놓치지 않는 훌륭한 연주로 높은 평가를 받은 피아니스트이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