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불꽃처럼 타올라 불꽃처럼 사라진..." S.네이가우스 2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3-08-15
2008-03-23 14:07:38
허원숙 조회수 2736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8년 03월 15일 원고....S.네이가우스 (2) “불꽃처럼 타올라 불꽃처럼 사라진”

(1927.3.21.-198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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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이며 위대한 스승으로 추앙받는 겐리흐 네이가우스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피아노를 시작한 스타니슬라브 네이가우스.

몇 년 후 우연히 아들의 연주를 들은 친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에 탄복하여 자신의 제자로 삼습니다.

모든 피아니스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최고의 스승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고 그 아버지가 자신을 다시 받아들였다는 사실! 스타니슬라브 네이가우스에게 이 사실은 정말 커다란 기쁨이면서 가슴 벅찬 일이었겠죠.

 

1949년 스물 두 살이던 스타니슬라브는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쇼팽 콩쿠르에 나갈 수 있는 예비시험에 합격합니다. 그리고 부푼 꿈을 안고 바르샤바를 향해 출발하려던 날 아침,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그것은 바르샤바로 갈 수 있는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거였죠.

 

몇 년 후 스타니슬라브 네이가우스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롱티보 국제 콩쿠르에 참가하려고 파리로 갑니다. 아무래도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는 경력이 있는 게 나으니까요. 이번 여행에는 다행히 비자가 나왔습니다. 무사히 파리에 도착한 스타니슬라브는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아주 열심히 새벽 2-3시까지. 그리고는 콩쿠르가 있던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미 해가 중천에 뜬 낮 12시였다고 하네요. 콩쿠르에서 자신이 연주해야 할 시간은 벌써 지나가 버렸습니다. 참 나...

 

이렇게 콩쿠르나 상과는 별로 인연이 없는 삶을 살았던 스타니슬라브 네이가우스. 사실 러시아 피아니스트 중에 이굼노프라든지, 소프로니츠키 같은 사람도 훌륭한 피아니스트이면서 콩쿠르 경력은 없는 사람들이죠. 아무래도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려면 강한 정신력, 야심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하는데, 소프로니츠키가 그랬듯이 스타니슬라브 네이가우스도 여리고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었죠. 인터뷰를 싫어하고, 성공적인 연주를 마친 후에도 “그냥 재미있게 쳤어” 라든지, 키에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연주 후에도 “사람들한테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8번을 들려주었습니다” 정도로 간단하게 말을 마치는 정도였죠. 아버지 겐리흐 네이가우스는 사교적이고 적극적이고 강인한 성격이었다는데 아들은 완전 반대의 성격을 지녔죠. 어려서 외롭게 커서 그랬을까요?

 

음악 듣겠습니다.

슈만의 Kreisleriana 중에서 제1,2번을 스타니슬라브 네이가우스의 1979년 10월 리사이틀 실황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2:10+8:2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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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들은 스타니슬라브 네이가우스의 연주를 많이 사랑했습니다. 특히나 여성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데요, youtube 같은 곳에 가시면 이 분의 동영상으로 스크리아빈의 에튀드 같은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매력있는 분인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하하..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사람들이 타니슬라브 네이가우스를 “스타씩 Stasik"이라는 애칭으로 불렀겠어요. 만일 백건우를 전국민이 그저 “우리 건이”라고 부른다고 상상한다면? 푸하하... 우리나라에서는 스포츠 스타에게는 애칭을 붙이긴 하죠.

 

아무튼, 수 년 동안 모스트바 음악원에서는 매년 음악 씨즌을 시작할 때 스타니슬라브 네이가우스의 연주로 시작하곤 했다죠. 그리고는 1961년 소프로니츠키가 세상을 뜬 후에는 본격적으로 청중들의 우상이 되었다고 하네요.

스타니슬라브 네이가우스는 신경이 예민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라 그런지, 무대에 나서기 전에는 극도로 예민해있었고 연주도 기복이 많았다고 하죠. 악보를 잊는 적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런 중에도 그런 일이 대수롭지 않을 만큼 최고의 음악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이 분의 특징이라면? 아름다운 피아노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분이 하는 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대요. “왜 우리들은 피아니스트라고 불리는 거지? piano-ists 는 정말 몇 명 안되는데 말야. 일반적으로는 forte-ists 들이잖아? 크게는 잘 치지만, 작게 치는 사람은 없는데 왜 피아니스트야? 포르테스트지! ”

그 말처럼, 스타니슬라브 네이가우스는 음악에서 정적 (silence) 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항상 강조했다고 하죠. 또 정말 아름다운 작은 소리를 낼 수 있었고요. 스크리아빈의 소나타 4번 7번, Vers laflamme (불꽃을 향하여), Fragility 같은 곡에서 정말 강하면서 흔들리고 무너지고 꺼지기 쉬운 불꽃을 절묘하게 표현했다고 하죠.

 

스타니슬라브 네이가우스는 테크닉으로 압도하는 비르투오조 같은 곡들보다는 마음 속으로 파고드는 작품을 연주하기를 즐겨했다는데,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1번이나 라흐마니노프 3번 같은 곡은 집에서 제자의 반주로 가끔씩 연주했지만, 공식적인 연주에서는 하지 않았죠.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라두 루푸, 라울 소사 같은 피아니스트들을 길러내었고요, 스타니슬라브 네이가우스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은... 바로 아들인 스타니슬라브 부닌입니다. 아들인데 왜 성이 아버지랑 다르냐구요? 그것은 부닌이 태어나기 전에 스타니슬라브 네이가우스가 부닌의 엄마와 헤어졌기 때문입니다. 쫌 슬픈 이야기죠...

 

에고 에고 아무튼... 이 슬픈 아버지, 스타니슬라브 네이가우스는 1957년 모스크바 음악원 겐리흐 네이가우스의 클래스의 조교를 거쳐 1966년에 교수가 된 후 수많은 연주회와 가르침으로 러시아 인민 예술가의 칭호를 받으며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재직하다가 1980년 1월 마지막 연주회를 마치고 1주일 후인 1월 24일 향년 52세의 안타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스크리아빈의 피아노 협주곡 F sharp 단조 op.20 중에서 1악장Allegro와 2악장Andante. 스타니슬라브 네이가우스의 피아노, 블라디미르 두브로브스키 (Vladimir Doubrovsky)가 지휘하는 USSR State Symphony orchestra 의 연주입니다. (연주시간 7:06+8:08=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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