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다락에 감추어 둔...\"...얼 와일드 3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8-03-01
2008-03-03 23:57:45
허원숙 조회수 2611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8년 03월 01일 원고....Earl Wild (3) “ 다락에 감추어둔.... ”

(1915.11.26.피츠버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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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중에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화>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요,

어떤 화가가 도리안 그레이라는 사람의 초상화를 그립니다. 그림의 주인공이 된 도리안 그레이는 초상화에 그려진 자신의 모습은 세월이 흘러가도 젊은 모습 그대로일텐데, 현실의 자신의 모습은 늙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요. 그리고 자신은 젊은 모습 그대로이고 대신 그림이 늙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그림 속의 자신의 모습이 변해가는 것을 발견합니다. 대신 자신은 젊은 그대로, 나쁜 일을 하더라도 자신은 아름답고 젊은 모습 그대로이고, 대신 그림 속의 자신의 모습만 흉측한 모습으로 바뀌어갑니다. 그림이 무서워진 도리안 그레이는 드디어 자신의 초상화를 다락방에 감추어버립니다. 그리고 어쩌구 저쩌구.....

 

왜 갑자기 소설이야기를 하냐구요?

얼 와일드가 1986년에 71세의 나이로 리스트 서거 100주년 기념 독주회를 했는데요, 어떤 평론가의 리뷰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대요.

“ 정말 믿을 수 없지만, 그는 70년이나 된 오래된 손가락으로 수백만 개도 넘는 음들을 너무나도 신선하고 정확하게 연주하였다. 마치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화>처럼, 혹시 얼 와일드도 자신의 낡아빠진 몸은 지붕 밑 다락에 숨겨둔 것은 아닐까...”

70이 넘은 얼 와일드의 젊고 활기있고 신선하며 정확한 연주를 들은 평론가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믿어지지 않아서 고작 생각해낸 말이, 늙은 몸은 다락에 숨겨두고, 젊은 몸이 어디서 나와서 연주를 하는구나... 최고의 찬사라고 할 수 있겠죠.^^

 

평론가도 할 말을 잃은 그 연주회는 카네기 홀에서 열린 리스트 서거 100주년 기념 3개의 독주회 시리즈였는데요, 각 연주회의 부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 연주회는 <시인 리스트>, 두 번째 연주회는 <트랜스크라이버 리스트>, 세 번째 연주회는 <비르투오조 리스트>라는 타이틀이었죠. 물론 세 연주회 모두 전석 매진이었습니다.

물론 얼 와일드의 All-Liszt 프로그램으로 가진 독주회는 1986년 뿐만 아니라, 1961년에 뉴욕에서 리스트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적인 리사이틀을 했었고요, 그 외에도 리스트 프로그램만으로 40년을 넘게 연주생활을 해 왔었죠. 1986년에는 텔레비전 다큐 <Wild about Liszt> 에 참여했는데, 이 프로그램이 그 해의 최고의 음악 다큐프로그램으로 선정되어서 British Petroleum Award를 받았고요, 헝가리 정부로부터는 헝가리가 낳은 위대한 작곡가 리스트의 음악에 오랜 세월동안 헌신한 공로로 리스트 메달도 받게 됩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 중에서 <에스테 별장의 분수>, 그리고 <사랑의 꿈 제3번>.

얼 와일드의 1985년 (70세) 녹음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7:41+4:26=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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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생이니까 현재 만으로 93세. 피아노를 세 살 때부터 쳤다니까 90년을 피아노와 함께 사신 분이네요. 오랜 세월 음악과 함께 하다보니 자연 신기록도 많은데요.

1939년에 텔레비전이 생기면서 이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서 리사이틀을 하였던 첫 번째 클래식 피아니스트입니다.

미국 역사상 여섯 명의 대통령의 초청으로 연주회를 가진 피아니스트이죠. 그 첫 번 초청은 1931년 후버 대통령이었고요, 1961년에는 케네디 대통령도 있었고요.

 

얼 와일드는 오늘날의 가장 많은 음반을 낸 피아니스트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데, 1939년에 RCA에서 첫 녹음을 한 후에 20개 회사에서 음반을 제작하였고요, 그 중에는 35개의 피아노 협주곡, 26개의 실내악곡, 그리고 700곡이 넘는 피아노 솔로곡이 있습니다.

그의 연주는 리스트가 압도적으로 많기는 하지만, 메트너, 파데레브스키, 샤르벤카, 타우지히, 발라키레프, 달베르, 모스코브스키 같은 작곡가들의 곡도 많고요, 1944년에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트리오 E 단조를 서유럽에서 초연했고요, 1949년에는 폴 크레스턴의 피아노 협주곡의 세계 초연을 담당했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 편곡자로서, 작곡자로서, 지휘자로서 무대 위에서 수많은 활동을 하면서도 줄리아드, 이스트만, 펜실바니아 주립대학교, 맨하탄, 오하이오 대학교의 교수를 역임하고 세계 각국에서 매스터 클래스를 개최하고, 재능 있는 젊은 예술가들과 거장들을 함께 묶어 연주회를 가지는 등 젊은 예술가들을 배려하고 키우는 프로그램도 만들었습니다.

이 많은 일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 오랜 세월 음악과 함께 살았기 때문이죠. ^^

 

1997년에 Earl Wild -The Romantic Master 라는 타이틀로 자신의 80세 기념 음반을 발매했고요.

2003년 5월 88세의 나이에 이전에 녹음하지 않았던 곡으로 새로운 음반을 발매했습니다.

2004년 9월 응급으로 심장에 bypass 수술을 받고 1년 뒤인 2005년에는 자신의 90회 생일 기념 음악회를 7월부터 11월까지 미국 전역과 암스테르담에서 가졌습니다. 2006년 자서전을 쓰고 2008년 얼 와일드는 아직도 살아계십니다.

그러니, 이분더러,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화>에서 처럼, 다락에 늙은 몸은 감추어두고 젊은 몸으로 연주한다고 할 만 하지 않습니까?

 

음악 듣겠습니다.

얼 와일드의 트랜스크립션으로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중에서 Pas de Quatre ( 빠 드 꽈뜨르 4인무), (1976 녹음)

도흐나니의 카프리치오 F 단조 op.28-6, B 단조, op.2-4입니다. (1976, 1968 녹음)

얼 와일드의 피아노입니다. (연주시간 1:26+2:30+6:0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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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 와일드는 종종 “라흐마니노프, 요셉 레빈, 모리츠 로젠탈이 한 몸으로 환생한 것 같다”고 평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