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무인도에서도 내 음악을\"...무라 림파니 4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8-01-26
2008-01-27 01:21:42
허원숙 조회수 2499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8년 01월 26일 원고....Dame Moura Lympany (4) “ 무인도에서도 내 음악을”

(b. August 18, 1916, Saltash, Cornwall, UK - d. March 28, 2005,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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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하차투리안의 피아노 협주곡 영국 초연으로 스승으로부터 Best concerto since Liszt 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은 무라 림파니.

 

한 때 이자이 콩쿠르의 2등상을 수상하면서 영국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전쟁 중에도 영국 전역의 공장과 부두에서 노동자들을 위해서 연주회를 하고, 또한 국립 미술관의 런치타임 주회 등으로 영국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무라 림파니.

 

1961년 미국에서의 결혼 생활의 실패를 등지고 다시 영국으로 가려는 무라 림파니에게 매니저는 말합니다. “이제 영국에서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거긴 이제 새롭게 붕붕 하늘을 나는 젊은 애들이 꽉 잡고 있어요.”

그 말에 기죽을 림파니가 아니죠.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 림파니는 열정적으로 다시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개척해나갑니다.

 

하지만, 유방암으로 시련을 맞고 1970년에 두 번째 유방절제술을 하였습니다. 이 때야말로 림파니에게는 가장 큰 시련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는데, 수술 후 회복된 후에 다시 열심히 연주활동을 하였다고 해요. 그런데, 유방절제술을 하고 나면 아무래도 몸의 균형이 깨지고 또 팔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태로 되기 때문에 피아노를 친다면 아무래도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됩니다. 림파니의 경우도 연주할 때 굉장히 많은 음을 틀리게 칠 수 밖에 없었다고 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알프레드 코르토의 연주를 즐겨듣게 되었다는데, 아시다시피 알프레드 코르토는 아주 유명한 피아니스트이면서 교육자로서 클라라 하스킬의 선생님이기도 했는데요, 코르토의 또 한가지 특징은 틀린 음이 많은 피아니스트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많이 틀리면서 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연주자였던 코르토의 연주가 그 당시 림파니에게는 아주 큰 위안이 된 것 이해가 가시죠?

 

그래서 하루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림파니가 이런 맥락에서 말을 했었대요. 음을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알프레드 코르토 같은 틀린 음이 있어도 훌륭한 연주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요.

하지만 카라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죠, 이제는 맞는 음으로 쳐야 하는 시대입니다. 레코딩 시대란 말이죠. 사람들이 맞는 음을 기대하고 있단 말이죠. 당신이 틀린 음을 연주한다면 더 이상은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답니다.”

과연 카라얀다운 말이었지만, 림파니는 정확한 연주에 대한 강박관념으로부터 오히려 자유로울 수있었나봐요. 평론가들도 더 이상 림파니의 연주에 대해서 비관적인 말을 하지 않게 되었고요, 1979년에는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데뷔 50주년 기념 연주회를 가졌고, 이 자리에는 찰스 황태자가 참석했다고 하죠.

 

음악 듣겠습니다.

Henry Litolff의 Concerto Symphonique (교향적 협주곡) no.4 , op.102 중에서 Scherzo.

무라 림파니의 피아노, Sir Malcolm Sargent 이 지휘하는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보내드립니다. 1964년 녹음. (연주시간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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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에 무라 림파니는 요양차 방문했던 와인의 고장 Rasieguères 에 목양장을 사고, 그것을 조그만 집으로 개조해서 생활을 하면서 1년에 포도주 15,000 병을 생산하는 포도밭을 경영을 했는데요, 음악과 와인이 어우러진 목가적인 축제 (Rasieguères 음악과 와인 축제/ the annual Rasiguères Festival of Music and Wine)를 만들어 1992년까지 10년동안 이끌어나갔습니다. 이 곳에는 Manchester Camerata, Victoria de Los Angeles, Elizabeth Harwood, 피아니스트로는 Cecile Ousset, 하모니카 연주자로는 Larry Adler 가 그 곳에서 연주했다고 하죠. 그밖에 Prince Louis de Polignac (루이 드 폴리냑 왕자)를 후원하여 1986년 the Festival des Sept Chapelles in Guidel, Brittany도 만들었다고 하죠.

 

이렇게 무라 림파니는 젊은 시절에서부터의 예술과 사회 문화에 끼친 공적으로 1979년에 CBE(Commander of the British Empire 대영제국 커멘더 훈장)을, 1980년에는 벨기에 정부로부터 Commander or the Order of the Crown을, 1992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학기사훈장을, 그리고 같은 해 가장 영예로운 Dame (Dame of the British Empire 여성에게 수여되는 대영제국 2등 훈장)칭호를 수여받게 됩니다.

 

림파니는 70대의 나이에 미국을 여행하면서 많은 연주회를 가졌고, 젊은 시절에 녹음한 쇼팽의 프렐류드를 다시 녹음했고, 1991년에는 Peter Owen 출판사에서 자서전을 출판했고요, 1996년 80세 생일에는 일본에서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장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무라 림파니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젊은 시절 나는 굉장한 끼(Temperament)와 기교(Virtuosity)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물론 나도 놀라는 바이지만, 그것들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클라라 슈만이 50살을 지내면서 말했지요. ‘이제는 브람스 파가니니 변주곡의 연주를 그만두어야 할 때’라고. 그런데 나에게는 아직 그 시점이 오지 않았습니다. ”

 

2005년 88세를 일기로 런던에서 세상을 뜨기까지, 무라 림파니는 전 생애를 통해서 60개가 넘는 협주곡을 연주했고, 50개가 넘는 음반을 출반했는데요,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전곡을 세계 최초로 녹음하기도 했죠. 처음으로 전주곡을 녹음한 1940년대에는 라흐마니노프가 살아있던 시절이었는데 모두 78s 으로 녹음했고요, 10년 후에 1951년에 Mono LP 로 다시 한번, 그 이후에 1993년 Erato에서 또 한 번 더 녹음이 되었습니다.

 

림파니가 이렇게 많은 연주회를 갖고 많은 음반을 제작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결은 바로, 그런 작업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하죠.

 

연주자로서 또 한 여인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수많은 어려움들, 전쟁, 두 번의 유산, 두 번의 이혼, 아기의 죽음, 두 번의 유방절제수술.... 이런 많은 어려움을 통해서도 좌절하지 않고 68년 동안이나 끊임없이 연주자의 길을 걸어갔던 림파니는 그 많은 연주회를 하면서도, 연주 시작하기 전에는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죠.

“내가 도대체 이 힘들 일을 왜 하는 거지? 오늘이 마지막이야.”

하지만 연주회의 마지막 곡이 끝나고 좋은 평을 받으면 다시 기운이 샘솟으면서 다음 연주회를 할 용기가 생긴다고 해요.

 

음악 듣겠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작품 32 가운데, 5,6,7,8,12번입니다.

무라 림파니의 1993년 세 번째 라흐마니노프 전주곡전곡 앨범 중에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3:03+1:29+2:20+1:47+2:37 =약 11분 30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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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BBC 방송의 프로그램 중에 Desert Island Discs 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그 프로그램은 무인도에 갈 경우를 설정해서 그런 경우 어떤 디스크를 가지고 갈 것인지?를 묻는 프로그램인데요, 거기 무라 림파니가 출연했대요. 진행자가 물었다죠. 8장의 디스크를 무엇을 가지고 가시겠습니까?

무라 림파니의 대답은... “8장 모두 자신의 디스크를 가지고 가겠다.” 나 스스로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삶을 산 사람이죠.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이면서 전설이었던 피아니스트, 무라 림파니의 삶과 음악.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