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5기니는 받을테지?\"...무라 림파니 3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8-01-19
2008-01-20 20:08:25
허원숙 조회수 2482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8년 01월 19일 원고....Dame Moura Lympany (3) “ 5기니는 받을테지? ”

(b. August 18, 1916, Saltash, Cornwall, UK - d. March 28, 2005,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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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만 18세의 나이로 런던의 Wigmore Hall에서 데뷔연주회를 가졌고, 1938년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전신인 벨기에의 이자이 콩쿠르에서 2등을 수상한 무라 림파니는 2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 때에는 파리, 로마, 밀라노 등등 모두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예측불허의 상황에 돌입했을 때인데, 그 후에 Myra Hess 가 런던의 국립 미술관의 런치타임 콘서트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음악을 제공해주고 있었지요. 당시는 클래식 음악 부문 중에서도 특히 피아노 협주곡이 유행하던 시기였다고 하는데, 전쟁 중이라 그 연주여행길이 고생스럽고 위험한 경우가 많았었다고 합니다.

무라 림파니는 국립 미술관의 런치타임 콘서트와, 런던의 캠브리지 극장에서 브람스 2번과 라흐마니노프 3번을 협연하는 한 편, 영국 전역에 걸쳐 많은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었고, 또 영국 전역의 공장이나 부두 노동자들을 위한 연주회를 계속하였는데, 거의 미친 것처럼 열심히 연주를 하면서 살았다고 해요.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연주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드디어 Myra Hess, Moiseiwitsch 같은 피아니스트들과 함께 비중있는 피아니스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지요.

 

그 많은 연주회 중에도 림파니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연주회가 있었는데, 그것은 1940년 영국에서 최초로 하차투리안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게 된 사건이었죠.

원래는 이 곡은 Clifford Curzon에게 연주해달라고 제의가 갔었대요.

Clifford Curzon은 Tobias Matthay의 몇 안 되는 남자 제자 중 한 명으로 베를린에 슈나벨의 제자로 가기 전인 17살에 이미 영국 왕립음악원의 교수가 되었던 사람인데, 이 연주 제의가 갔던 당시에는 47살의 비르투오조로 명성을 떨치던 때였고, 본인의 연주 일정이 너무 바빠서 하차투리안의 제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요.

영국과 소련의 문화교류를 담당했던 Clark 라는 사람은 이 곡의 연주날이 1달 밖에 남지 않았는데,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을 찾다가, 무라 림파니는 음악을 빨리 익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제의를 해 왔대요.

 

림파니는 천성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인데요, 전혀 듣지 못했던 모르는 곡이지만, 자신의 능력을 믿고 연주회 제의를 받아들여서, 연습할 테니 악보를 갖다 달라고 했대요. 그 때가 미장원에서 머리를 하고 있는 동안이었는데, 바로 그 미장원으로 배달해 온 악보를 그 순간부터 공부하기 시작해서 1달 후 연주를 하게 되었지요.

이 공연이 1940년 봄 퀸즈 홀에서 Alan Bush의 지휘로 열렸는데, 이 날 연주된 곡은 림파니가 협연한 하차투리안 피아노 협주곡 외에 Miaskovsky의 교향곡 제 16번과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4번이었는데, 이 곡들을 모두 제치고 하차투리안의 협주곡이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되었지요.

작품과 연주 모두 훌륭하기 때문이었는데요, 새롭고 모던하고 환상적이며 전율이 감도는 작품과, 또 그 작품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연주력이 합쳐진 결과였지요.

사람들은 ‘이런 전시에 연주회를 간 청중들에게 마치 기분 좋은 불꽃놀이를 선사한 것 같은 연주였다’라고 칭찬했고요, 당시 선생님이던 Tobias Matthay는 연로하시고 몸이 약하셔서 음악회에 직접 오지 못하고 방송으로 연주회를 들었는데, 다음 날 림파니에게 전보를 보냈지요. “Best concerto since Liszt"라고.

 

하차투리안의 피아노 협주곡 D flat 장조 중에서 제1악장 Allegro ma non troppo e maestoso를 무라 림파니의 피아노, Anatole Fistoulari 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보내드립니다. 1952년 연주 (연주시간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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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영국 전역에 걸쳐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된 순간, 그녀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이 연주의 댓가로 5기니는 받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15기니를 받게 되어서 무척 기뻤다죠. 그런데 실제로는 그 액수의 천 배나 많은 보상을 해 준 최고의 기회가 된 음악회였습니다.

 

무라 림파니의 자서전에 보면, 전쟁의 참혹하고 급박함이 잘 나와있는데요, 예를 들면, 1940년 5월, 밤새도록 공습이 계속 되어서 폭탄 터지는 소리에 점을 설치고, 다음 날 아침에 연주 리허설이 있어서 공연장 (퀸즈홀)에 갔는데, 홀이 폭격으로 없어진 거예요. 연주하는 곡은 그 전에는 연주한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곡이었는데, 리허설 없이 연주는 전혀 불가능한 곡이었지만, 리허설은 취소되고 본 연주는 오후 2시 30분에 왕립음악원의 홀에서 개최되었다고 하죠.

그 후에 무라 림파니는 전쟁이 끝난 후에서야 연주를 계속할 수 있었는데, 하차투리안 협주곡을 가지고 브뤼셀, 밀라노, 파리 등지에서 성공하고, 그 곡과의 인연으로 2차대전 이후 소련을 연주여행한 첫 외국 연주자가 되었고 특히 파리에서는 전후에 처음으로 파리에서 연주한 영국 사람이 되었는데, 무라 림파니가 Alan Rawsthorne 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할 동안, 밖에서는 시 외곽에서 독일군 총포소리가 들렸다고 하죠.

그리고 그 외에도 프라하에서 그리고 남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 등지에서 여러 가지 음악활동으로 영국의 음악 대사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고 합니다.

 

무라 림파니는 두 번 결혼하고 그 두 번 다 이혼으로 끝났는데, 첫 번 결혼은 1940년대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공장이나 부두 노동자들을 위한 연주회를 영국 전역에서 개최하고 다닐 때였어요.

바로 그 때 1944년 나이 많은 군인과 결혼을 했는데, 거의 아버지와 딸의 나이 차이가 나는 결혼이었다고 하죠. 글쎄, 림파니의 집나간 아버지도 군인이었고, 또 그 또래의 남자와 결혼하게 된 것을 보면, 남편이 아니라 아버지가 필요했었던 것 같아요.

결혼의 조건이 궁금하죠?

“내가 나이 젊은 사람과 만나게 되면 이혼해 주실 거예요?”

그렇게 시작한 결혼, 결국 1950년에 헤어지게 되고, 1951년에 뉴욕의 라디오 광고회사 대표와 결혼했다가 아기를 두 번이나 유산하고, 또 그 후에 한 명을 낳았지만, 그 아기가 태어난 지 35시간만에 사망하는 어려움을 겪고, 여러 가지로 결혼생활과 음악을 병행하기가 힘들어 다시 이혼하게 됩니다.

결혼이 끝이 나자, 1961년 미국에서 다시 영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는데, 로마에 있는 매니저가 절망적인 이야기를 하지요.

“이제 영국에서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거긴 이제 새롭게 붕붕 하늘을 나는 젊은 애들이 꽉 잡고 있어요.” ....

이 상황에 어떻게 다시 시작한다는 말이냐는 말이겠죠?

이제 다시 어떻게 시작한다지?

하지만, 거기에서 중도하차한다면 무라 림파니가 아니죠.

68년동안 쉬지 않고 현역에서 연주자로 활동한 피아니스트 무라 림파니의 연주.

 

음악 듣겠습니다.

Anton Rubinstein의 Melody op.3-1

Schumann의 숲의 정경 중에서 제7곡 예언하는 새,

Louis-Claude Daquin 의 뻐꾸기를 무라 림파니의 연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3:48+3:34+2:0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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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