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이름도 고치고\"...무라 림파니 Dame Moura Lympany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8-01-05
2008-01-06 13:59:58
허원숙 조회수 2338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8년 01월 05일 원고....Dame Moura Lympany (1) “ 이름도 고치고 ”

(England Aug,18.1916~ March 28.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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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이면서 68년 동안 피아니스트로서 쉬지 않고 연주생활을 했던, 화려함과 음색의 절묘한 조화가 경의로운 피아니스트라는 찬사를 받은 분을 소개합니다.

모르시겠죠? (너무 평범해서?)

이 분도 영재로 시작하고 유명한 콩쿠르에 입상하고 피아니스트로서 화려한 데뷔와 계속되는 연주회 등으로 얼핏 보면 순탄한 피아니스트의 삶을 살았지만, 사실은 두 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두 번의 유산, 그리고 어렵게 얻은 아이가 태어난 지 35시간 만에 숨지는 일, 유방절제수술 등등으로 정말 어려움을 많이 겪은 피아니스트이죠.

아, 여자이구나... (조금 아셨죠?)

영국 사람으로 작위를 받은 피아니스트죠. Dame 이 이름 앞에 들어가는 분을 생각해보세요.

네! 바로 Dame Moura Lympany (무라 림파니)입니다.

이 분이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도 피아노를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천부적인 재능과 또 천부적인 낙천적 성격 덕분인 것 같아요. Lympany의 매니저가 말하기로는, “늦지 않고, 기질도 안 부리고, 항상 멋진 생동감이 넘치는 사람이고, 어떤 경우에도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는 사람”이고요, 또 림파니 자신도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 칠 수 있냐는 말에, “글세, 푹 잘 자고 연주 전에 고기 잘 먹고 힘내면 잘 칠 수 있지요!” 라고 말했다니까요.

그런 힘이 도대체 어디서 나올까....

림파니는 런던과 모나코에서 생활을 하면서, 또 프랑스 남부의 랑그도크 지역의 와인고장인 Rasieguères의 전원 집에서 생활을 하였는데요, 사실 이 곳에 살게 된 것은 1973년에 계속되는 피곤한 생활에 지쳐서 (목소리를 잃은 후에 ) 따뜻하고 건조한 곳을 찾아서 이 곳에 쉬러 왔다가, 거기에서 양을 기르는 목양장을 사고, 또 그것을 조그만 집으로 개조해서 생활을 했다고 하죠. 그리고 또 1년에 포도주 15,000 병을 생산하는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고요. 와인 검색을 하시면 Rasieguères의 Moura 라는 와인이 있더라구요. 아마 이 밭에서 나는 와인인 것 같은데?....

아무튼,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그래도 푹 잘 자고 고기 한 점 잘 먹고 나면 흔들리지 않고 연주 잘 할 수 있다는 아줌마. Moura Lympany 의 음악을 듣겠습니다.

쇼팽의 전주곡 op.28 중에서 제1-7곡까지, 그리고 제15곡 빗방울 전주곡입니다. Moura Lympany 의 79세 때의 연주입니다. (연주시간 약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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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ra Lympany는 1916년 8월 18일 영국의 Cornwall의 Saltash에서 태어났는데요, Moura Lympany라는 이름으로서가 아니라, Mary Johnstone 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이 Mary의 아버지는 장교였었는데, 1차 대전에 참전한 이후로 다시 민간인으로 돌아오는 상황을 적응을 하지 못하시고 자주 집을 비우셨다고 해요. 그러니 결국은 이 딸의 양육은 엄마가 전담해야 할 지경이었는데, Mary의 어머니는 7개국어에 능통하고 피아노와 첼로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이 딸 Mary의 첫 피아노 선생님이 되어주셨고요.

Mary는 6살이 되자 벨기에의 수도원학교에 보내졌는데, 타고난 재능이 눈에 띄어서 Liége에서 공부를 하다가, 13살 때 런던으로 가서 Royal Academy의 장학생으로 음악을 공부하는 한편, Kensington의 시온의 성모 수도원학교 (the convent school of Our Lady of Sion)에서 일반 학과교육도 병행해서 받게 되죠. 그리고 런던의 왕립음악원 재학당시 여러 가지 상과 금메달을 받기도 했고요.

이 Mary에게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왕립음악원으로 가기 전의 일입니다.

1929년 Mary의 어머니는 Mary를 데리고 연주회에 갔었는데요, Basil Cameron 이 지휘로 어떤 영재소년이 협연하는 무대였었죠. 그 연주회가 끝나고 Mary가 하는 말.“엄마, 나도 오케스트라랑 협연할 수 없을까?”

딸의 말 한마디에 이 엄마, 편지를 보냅니다. 바로 이 연주회를 지휘했던 지휘자 Cameron 에게, 우리 딸을 위해서 오디션을 해 주십사는 내용으로요.

그 모든 일은 잘 성사되었고, Mary는 만 13살 생일 직전에 Harrogate에서 Cameron 의 지휘로 멘델스존의 G 단조 협주곡을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휘자... 뭔가 이 세계에 대해서 많이 알고 계신 분처럼 한 말씀 하십니다.

“너. 이름이 개성이 없어. 더 매력적인 이름 없을까?”

Mary의 엄마. 난리났습니다.

Mary Johnstone. 조상 대대로 내려온 가문의 이름. 이걸 어떡하지?

드디어 이름을 고치게 되었는데 그렇게 해서 고친 이름은...

Mary 를 바꾸어서 Moura 로 ... 뭔가 신비스럽죠?

그리고 Johnstone 도 바꾸어야겠는데... 그 엄마의 처녀적 이름이 Limpenny 였대요. 그걸 조금 바꾸어서 Lympany! 팀파니와 운도 같으니 부르기도 좋고, 기억도 잘 되고....

뭔가 매력이 있어보이는 이름, Moura Lympany 의 탄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새 이름을 받은 Moura Lympany는 빈으로 가서 Paul Weingarten 교수에게 지도를 받았는데,au pair 라고 입주하면서 언어를 익히고 그 집 일도 도와주는 그런 생활을 하면서 (말하자면 고학?) 있다가, 런던의 로얄 아카데미에서 장학생으로 오라는 제의를 받고 런던으로 가게 된 거죠.

거기서 Tobias Matthay 와 Mathilede Verne 라는 선생님께 지도를 받는데 특히 Mathilde Verne 라는 선생님은 클라라 슈만의 제자여서, Moura Lympany는 그분에게서 클라라 슈만의 스타일의 요소를 배울 수 있었다고 해요.

클라라 슈만의 연주 스타일 궁금하시죠?

“요란하거나 질척거림 없이 straight로 연주하는 것.”

Lympany는 요란하고 질척거리게 연주하는 것을 화장분을 바른 루바토라고 불렀는데, 이렇게 자연스럽지 않고 너무 많은 표현, 이런 것을 삼가고 스트레이트로 연주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요즘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많이 하는, 건반을 후려치지 절대 않기”

스트레이트로 연주하지만, 건반을 후려치지 않기...

림파니가 Mathilde Verne 에게서 배운 클라라 슈만의 연주스타일이었습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쇼팽의 연습곡 op.25-1,2, op.10-4,5.

Moura Lympany 의 79세 때의 연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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