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느리게, 머릿속으로\"...호르헤 볼레트 3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12-22
2007-12-22 22:21:10
허원숙 조회수 2412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12월 22일 원고....호르헤 볼레트 Jorge Bolet (3) “느리게, 머릿속으로”

(November 15, 1914–October 16,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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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볼레트를 생각하면 재능만 믿지 않고 항상 어느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며, 구스타프 말러가 말한 것처럼, “나의 때가 올 것이다” 라는 신조를 가지고 살았던 인물이지요.

1960년에 Columbia 영화사에서는 리스트에 대한 영화 <Song Without End / 끝없는 노래>를 만들면서 사운드트랙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를 가지고 고심했는데요, 그 당시 미국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던 피아니스트 Van Cliburn에게 맡기자는 의견이 대세였다고 하죠. 반 클라이번은 1958년에 당시에 적국인 소련의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면서 국가적인 영웅으로 떠올라서 색종이를 휘날리며 카 퍼레이드까지 한 피아니스트이고, 또 그 콩쿠르 우승 소식은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1면기사로 대서특필되었던 대대적인 사건이었죠. 그러니 미국의 모든 사람들 머리 속에 피아니스트라 하면 당연히 반 클라이번이었을 때였는데요. 콜럼비아 영화사의 영향력 있는 분들도 리스트 영화의 사운드트랙 작업을 반 클라이번과 함께 하면 영화도 성공할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었다는데요.

그런데, 피아니스트이면서 뉴욕의 WQXR 클래식방송의 음악감독인 아브람 체이슨스 Abram Chasins (57세) 라는 분이 이 말을 듣고 한 말씀 하시기를... “글쎄요, 내 생각에는 반 클라이번도 좋기는 한데, 아마 반 클라이번이 그 영화에 필요한 음악을 다 공부하려면 우리 3년은 기다려야 하겠네?” 라고 했대요. 이렇게 그 말 한마디로 반 클라이번을 뻥~ 차버리고... 그러니 콜럼비아 영화사의 음악감독이었던 Morris Stoloff는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Chasins는 “내가 추천할 사람은 딱 한 명인데, 호르헤 볼레트라는 피아니스트이다. 그 사람이라면 레퍼토리도 충분하고, 리스트 스타일도 있고, 아마 당신이 찾는 것을 그 사람은 다 가지고 있을걸....” 라고 말했대요. 그 확신에 찬 한 마디에 콜럼비아 영화사에서는 볼레트의 연주를 들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계약을 하고,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맡기게 되었다고 하죠.

46살의 중견무명인 피아니스트 볼레트는 과연 어땠을까?...

본인은 너무 좋았다고 해요. 극장 스크린 한 가득하게 <피아노 솔로이스트, 호르헤 볼레트> 이렇게 쓰여진 것을 보는 것은 너무 좋았다고.. 그리고 정말 예상했던 것처럼, 유명해졌지만, 제대로 평가되면서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그저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한 기교파 피아니스트 정도로만 유명해졌다는 것.... 그렇지만, 그래서 더 연주계약은 많이 들어오고.... 희비의 쌍곡선이라고나 할까요....


음악 듣겠습니다.

멘델스존의 무언가 중에서 사냥꾼의 노래 Jaegerlied op.19-3 과 Rondo Capriccioso, op.14 를 호르헤 볼레트의 연주로 보내드립니다. 1985년 녹음입니다.

(연주시간 2:38+6:54= 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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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비아 영화사의 음악감독이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피아니스트인데도 Chasins의 이야기 한 마디에 바로 볼레트와 계약을 체결하는 장면을 보면, 생각할 게 참 많아요.

1. 거품이 아니라, 실력으로 승부한다.

2. 세계적인 인물이라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3. 무명의 세월이 아무리 길어도 끈기있게 최선을 다하면 기회가 생긴다. ^^


호르헤 볼레트는 어떤 방법으로 연습을 할까...

궁금하시죠? 

답은 간단하죠.

느-리-게!

처음 곡을 접하게 되면 아주 느리게 연습을 한대요. 느리게 연습하면서 내 안에 모든 정보를 입력을 시키는데, 예를 들면 손가락은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악보에 씌여있는 것을 놓치는 것은 없는지, 테크닉에 문제점은 없는지... 하는 것들을 느리게 연습하면서 모두 체크를 하고, 악보에 있는 모든 세밀한 뉘앙스 같은 것들도 놓치지 않게 하고요.

그 다음에는 95-98%는 피아노를 떠나서 악보만 가지고 머리로 연습한대요. 연구하고 머리 속으로 집어넣고 그 모든 것을 머릿속에서 조합하고.... (하지만 사진 찍는 것 같은 기억력은 없다고 해요.) 잠시동안은 피아노에서 연습을 하고 피아노에서 떨어져서 머릿속에 음악이 돌아가도록 만들고..... 말하자면 정신적으로 연습을 한다고 하죠.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머리로 연습하다가 힘든 부분에서 막히면 마치 피아노에서 반복연습을 하듯이 머릿속으로 반복연습을 한대요.

그리고, 왼손으로 치도록 쓰여 있는 것을 오른손으로 치는 연습을 한다고 해요. 물론 머릿속으로. 그 방법이 자신만의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볼레트에게는 효과 있는 방법이라고 하네요. 설명으로는 간단하지만, 머릿속에서 이런 연습을 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집중력과 집요함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상상할 수 있나요? 예를 들어서 피겨스케이팅의 3회전 동작을 얼음 위에서가 아니라 머릿속으로만 연습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런지, 볼레트의 연주는 탁월한 테크닉에도 불구하고 세련되고 귀족적인 품격을 지녔죠. 182cm의 좋은 체격에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호로비츠를 능가할 큰 소리로 연주회장을 압도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이었지만, 본인은 화려한 기교파 피아니스트로 알려지는 것을 전혀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억제하고 음색과 해석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기품 있는 연주를 남겨주었습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Isaac Albeniz/Godowsky Tango

Godowsky의 Elegie (왼손을 위한)

Richard Strauss/Godowsky Staendchen (세레나데)

호르헤 볼레트의 1985년 녹음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3:28+3:25+3:07=약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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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