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다시 찾아온 낭만주의\"...호르헤 볼레트 2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12-15
2007-12-15 23:41:07
허원숙 조회수 2516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12월 15일 원고....호르헤 볼레트 Jorge Bolet (2) “다시 찾아온 낭만주의”

(November 15, 1914–October 16,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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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인생의 황금기는 언제일까? 아니, 도대체 인생의 시작은 어디일까?

호르헤 볼레트는 오래도록 무명의 세월로 그저 그런 피아니스트로 지내다가, 60세에 카네기홀에서의 성공적인 독주회로 비로소 새로운 인생의 황금기를 시작한 분이죠. 그리고 그 연주회의 성공 덕분에 드디어 메이저 음반회사인 데카 음반과 처음으로 계약을 맺었는데 그 때 나이가 63세. 그 후로 70 대 중반의 나이로 연 90-95회의 연주회를 거뜬히 소화해내는 저력을 보여준 분이었는데요, 그 모습을 보면 정말 고개가 진심으로 저절로 숙여지는 존경스러운 피아니스트이죠.


그렇다면 이 분은 대기만성형일까? ...

아~니죠. 

볼레트는 6남매 중에서 5째였는데, 11살 많은 큰 누나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죠. 처음부터 피아노를 배우려고 작정한 것은 아니었고, 누나가 피아노 치는 소리를 그저 많이 듣다보니, 자연스레 피아노와 친숙해진 거겠죠. 볼레트 말로는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나의 피아노 연습 소리를 듣고 자랐다고 했는데, 부모도 음악과는 무관하시고, 가족 친척 중 아무도 피아노와 상관있는 사람은 없었고, 볼레트에게 처음 피아노를 가르쳐 준 누나도 사실은 나중에는 피아노를 치지 않게 되었으니까 가족의 재능을 물려받은 것도 아니라고 하네요.

아무튼 누나에게 다섯 살 때부터 커티스 음악원에 들어간 12살 때까지 피아노를 배웠는데, 9살에는 공개연주회, 10살에는 하바나 필하모닉과 협연, 그리고 12살에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원에 들어가서, 16살에는 카네기홀에서 프리츠 라이너가 지휘하는 커티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연주했는데요, 커티스 음악원에서 볼레트는 스타였다고 해요. 어떤 곡이든 칠 수 있었고, 읽을 수 있었고, 힘들이지 않고 외울 수 있었고, 그 때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테크닉도 갖추고 있었는데, 아마도 바로 이 테크닉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볼레트는 스타일도 내용도 없는 테크닉의 명수’라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1934년에 커티스를 졸업하고 유럽으로 건너가서 연주활동을 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와서 1937년 나움버그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커티스 음악원에서 루돌프 제르킨의 조교로 일하다가 군에 입대하고 또 군대에서 일본으로 보내지고...

이렇게 젊은 시절 최고의 인정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볼레트였는데... 그렇게 잘 나가시던 이 분에게도 슬럼프는 시작되었습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리스트의 메피스토 왈츠 no.1 을 호르헤 볼레트의 1982년의 연주(68세)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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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50년대 때의 10여년은 볼레트에게 아주 힘든 시기였다고 해요. 왜냐면 볼레트의 연주스타일이 완전 구식이었기 때문인데요, 여기서 구식이라는 말은, 낭만주의 스타일을 말하는 것인데요, 말하자면 악보에 충실하기 보다는 직감에 충실하고 개인적인 연주성향이라는 말이죠. 리스트 시대의 연주방법이라고나 할까.... 클래식에 있어서도 스타일이 변하기 때문에 옛 스타일로 연주를 하는 볼레트를 매니저도 청중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죠....

피아니스트로 성공의 길을 걷는 듯, 잘 나가다가 갑자기 청중과 매니저가 외면하는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왜? 구식이라서?

황당한 일이죠. 왜냐면 그 분은 잘못한 게 전혀 없으니까요. 다만 시대가 그 분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이 볼레트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볼레트는 묵묵히 생각하고 경험하고 많은 레퍼토리를 공부할 시간을 가졌고 자신을 더 잘 갈고 닦았다고 하죠. 언제까지? 사람들이 다시 자기를 찾아 줄 때까지....

참 재주 많은 사람이었는데, 기회는 찾아오지 않고...

한 번은 지휘자 쿠세비츠키를 연주여행 중에 만나게 되었는데, 쿠세비츠키가 즉석에서 피아노를 쳐보라고 했대요. 그 곳에 있었던 피아노 상태가 너무 나쁘고 해서 큰 곡을 치지는 못하겠고 하이든의 F 장조 변주곡을 쳤는데, 연주가 끝나고 난 후에 쿠세비츠키가 “광채가 나는 피아니스트”라면서 협주곡 레퍼토리가 뭐가 있냐고 물어봤대요.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에프2번... 이라고 말을 하니까 “난, 프로코피에프 2번을 프로코피에프랑 1926년에 연주했지. 이번 여름에 탱글우드 페스티벌에서 우리 함께 연주합시다. 8월 4일 어때?” 그렇게 구두로 약속을 했는데, 사실 공연 스케줄이 그렇게 금방 잡혀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 날짜는 이미 다른 연주자에게 예약이 되어있는 날이었고요... 아무튼 힘들게 애를 써봤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쿠세비츠키는 볼레트에게 ‘그럼 우리 다음 기회에 꼭 같이 연주합시다’ 라고 말을 했는데... 그 다음해(1951)에 돌아가시고 말았다죠. 그렇게 기회를 놓치고...

그리고 1937년 나움버그 콩쿠르 우승을 하면서 뉴욕에 데뷔를 하게 된 좋은 계기가 있었는데요, 그 때에도 뉴욕타임즈에 대비평가 Howard Taubmann의 리뷰가 실렸고, 또 Herald-Tribune과 뉴욕의 6가지 신문에 동시에 대단한 리뷰가 실렸었는데... 그걸로 무엇이 더 이루어진 것은 없고 그냥 그 기사로 끝이었다고 하죠. 볼레트는 그 때를 회상하면서 ‘내가 그 때 뭔가를 더 했어야 하는데, 사람들의 문을 두드리면서 뭔가 했었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내 문제점이지....’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시키고 성사되게 만드는 힘은 없지만, 볼레트에게는 정말로 귀한 능력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묵묵히 연습하는 것, 묵묵히 공부하고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이었다죠. ^.^

그런 볼레트에게 다시 좋은 기회가 찾아오게 된 것은 1974년. 카네기홀에서의 독주회인데요, 그 독주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분석하면, 다시 낭만주의가 각광을 받는 시기가 되었고, 볼레트도 그 동안 한결같이 묵묵히 갈고 닦은 실력으로 훨씬 더 좋은 기량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 (첫번째 해- 스위스편) 중 제4곡 샘가에서, 제5곡 소나기 를 호르헤 볼레트의 연주로 보내드립니다. 1983년 (69세) (연주시간 3:51+4:4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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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