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인간이자 예술가\"...아르투르 슈나벨 3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12-01
2007-12-03 08:22:14
허원숙 조회수 3130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12월 01일 원고....아르투르 슈나벨 (3) “ 인간이자 예술가 ”

(1882.4.17 ~ 195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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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나치당이 집권하자, 나치에 대한 혐오감으로 베를린 음악원의 교수직을 사임하고 런던으로 옮긴 슈나벨. 영국과 이태리를 중심으로 연주와 매스터 클래스를 열면서 음악활동을 계속했지만, 유럽이 점점 전쟁의 흉흉한 물결에 휘말리면서 유대인이었던 슈나벨은 유럽에 머물 수 없게 되지요. 결국 1939년 미국으로 망명의 길에 오르는데.....

슈나벨은 미국의 시카고 대학과 또 Ann Arbor의 미시건대학교에서 강의와 피아니스트로서 활동을 하며1944년에 미국 국적을 취득하게 됩니다.

그런데, 유럽에서의 명성처럼 승승장구할 것 같은 슈나벨의 미국에서의 위상 확립은 예상처럼 쉽지 않네요. 

일단, 음악회를 주최하는 매니지먼트 측에서는 슈나벨에게 다른 프로그램으로 연주회를 하기를 원했어요. 베토벤과 슈베르트로 정평이 나있는 훌륭한 연주자에게 그야말로 레세티츠키 선생님도 원하지 않았던 레퍼토리로 연주회를 하라는 것이지요. 왜냐면 그 시절, 유럽에서 또 러시아에서 건너간 많은 비르투오조들이 미국에서 활약이 대단하던 때였거든요. 또 유럽사람들과 달리 미국인들은 좀 더 화려하고 가볍고 그런 음악을 좋아했고요. 그러니 흥행을 위해서라도 매니지먼트 측에서는 슈나벨에게 다른 프로그램으로 연주하기를 원했고, 비르투오조가 아닌 슈나벨이 그런 프로그램으로 좋은 평을 받았을 리도 없고요... ㅠ.ㅠ.

게다가 비평가들은 슈나벨의 베토벤은 노래하는 멜로디와 그 멜로디를 받쳐주는 반주부분의 음색의 차이를 느낄 수 없다는 둥 혹평을 했고요.... 이래저래 힘든 그의 생애 8년을 그렇게 미국에서 지내지요.

그래서 또 얻은 교훈이 있지요.

“사람은 제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위대한 사람도 위대하지만, 그 위대함을 알아주는 사람들도 사실은 위대하다” ^^.


음악 듣겠습니다.

슈베르트의 소나타 A 장조, D.959 중에서 제2악장 Andantino. 아르투르 슈나벨의 1939년 런던에서의 녹음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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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슈베르트의 음악은 정말 연주하기가 어렵지요. 베토벤 같으면 확고한 논리와 구성이 있어서 제대로 파악되면 음악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겠는데, (물론 정말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슈베르트 같은 경우는 너무 즉흥적인 요소가 많아, 논리나 구성과는 좀 괴리감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잘 연주할 수 없는 작곡가로 알려져 있죠. 특히나 악기의 특색을 전혀 무시한 표현들이 많아서 더욱 어려움이 많습니다. 좋게 말한다면 독일어로 Urmusik 그러니까 악기로 표현되기 이전의 음악 자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요, 얼마 전에 제자가 저보고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어떻게 해야 잘 연주할 수 있냐고 물어보길래, 규모가 큰 곡이라고 생각지 말고 가곡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해라 라고 말해준 적이 있어요.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슈나벨은 슈베르트의 해석에 아주 독보적인 존재였는데요, 그 분의 스승 레세티츠키

선생님의 도움도 컸겠고, 또 슈베르트 전문가이면서 슈나벨의 부인이었던 콘트랄토 가수 테레제 베르 (Therese Behr)와의 공동 연주작 업을 통한 경험들도 큰 작용을 했을 것 같고요, 또 같은 독일어권이면서도 독일인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오스트리아 사람이었다는 것도 커다란 역할을 했을 것 같고요.... 또 슈나벨의 성격이 아주 기질이 강해서 즉흥적인 성격이 강한 슈베르트와 잘 맞게 된 것이 아닌가... 물론 저의 추측이긴 하지만요.

슈나벨은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미국에서 활동을 하다가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다시 유럽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베를린으로 돌아가지 않고 스위스의 악센슈타인 (Axenstein)에서 마지막 생애를 보내고 1951년 8월 숨지게 됩니다.


슈나벨은 피아니스트이면서 교육자이면서 또 작곡가라고 첫 시간에 말씀드렸는데, 슈나벨이 작곡한 작품은요, 현악 4중주 5곡, 교향곡 3곡, 19세때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1곡, 또 같은 시기에 작곡한 가곡 몇 곡,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위한 랩소디, 현악 트리오 등등이 있고, 현재 잘 연주되는 곡들은 아니지만, 이렇게 작곡을 하면서 생긴 작품을 보는 관점이 그의 연주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죠. 연주자의 관점에서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의 시각으로 작품을 파악하는 능력. 본질에 접근하는 능력이죠.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생명력과 심오한 통찰력이 넘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K.365 중에서 제1악장 Allegro입니다.

아드리안 볼트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피아노에는 아르투르 슈나벨과 그의 아들 칼 울리히 슈나벨입니다. (연주시간 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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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칼 울리히 슈나벨은 베를린에서 태어나서 2차 대전 중에 나치를 피해서 미국으로 이주한 피아니스트이고요, 어머니인 테레제 베르와 슈베르트 가곡 연주, 아버지인 아르투르 슈나벨과 듀오 연주로 활동을 했고요, <피아노 페달의 현대적 기술> 이라는 저서를 출판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만큼 큰 이름은 남기지 못했지요.


끝으로 슈나벨이 세상을 뜨자 그 분을 추억하면서 클라우디오 아라우가 했던 말을 소개해드립니다.

“예술가로서의 슈나벨의 중요성은 베토벤 음악의 중요성에서 나온다. 베토벤은 그의 32개의 소나타에 온 우주를 담았으며, 슈나벨만이 유일하게 천재가 뿜어내는 엄청난 요구사항을 직면할 수 있는 인간이자 예술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