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피아니스트가 되려 하지 마라\"...아르투르 슈나벨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11-17
2007-11-28 13:00:32
허원숙 조회수 3138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11월 17일 원고....아르투르 슈나벨 (1) “피아니스트가 되려 하지마라.”

(1882.4.17 ~ 195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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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해 드릴 피아니스트는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 브람스 음악의 해석에 탁월한 진가를 발휘한 분인데요, 특히나 이 분이 편집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의 에디션은 베토벤 연주의 모범 사례로 돋보일만큼 아주 정격적이며 또 세밀하고 정확한 해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주 기교가 탁월한 분은 아니었지만, 이 분이 녹음한 베토벤 소나타를 들은 라흐마니노프는 이 분을 “위대한 아다지오 피아니스트”라고 불렀습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이면서 작곡가이면서 교육자인 아르트루 슈나벨입니다.

아르투르 슈나벨은 1882년 폴란드의 Lipnik (리프닉)에서 태어나서 일곱 살 때부터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이사를 가서 Theodor Leschetizky (1830-1915) 의 제자가 되었는데요, 레세티츠키 선생님은 예전에도 소개해드렸지만, 체르니의 제자이면서 당시 프란츠 리스트와 함께 피아노 교육계를 주름잡았던 선생님이고요, 이 시간에 소개해 드린 Paderewski 의 스승이기도 했죠. 파데레브스키한테는 가망없다는 말도 서슴치 않고 했고, 또 파데레브스키가 정말 피아노를 잘 치게 된 후에도 “어디 가서 내 수제자라는 둥 그런 말은 절대 하지마라”고 하셨는데요, 글쎄요, 그런 레세티츠키 선생님이 이 슈나벨에게는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너는 피아니스트가 되려 하지마라. 이미 너는 음악가이다.”

병 주고.... 약 주고....ㅋㅋ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가 되기에 테크닉은 부족하지만, 이미 음악적으로 높은 경지에 올라있다는 말이겠죠? 이 예리하면서도 직설적인 선생님의 판단에 슈나벨은 속상해하거나 반항하지 않고 이 선생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겼다고 해요. 그리고 레세티츠키 선생님은 슈나벨에게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 같은 곡은 치지 말고 대신 당시에는 사람들이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던 슈베르트의 소나타 같은 곡을 공부하자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하죠.

비르투오조의 작품을 피하고 대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의 작품에 몰두하면서 한편으로 슈나벨은 브람스의 친구였던 Eusebius Mandyczewski (오이제비우스 만디크제프스키)로부터 음악 이론을 배워서 음악적 소양과 창작력을 키워가기 시작했지요.

 


음악 듣겠습니다.

베토벤의 바가텔 작품 126 중에서 no.5 Quasi allegretto와 no.6 Presto-Andante amabile e con moto입니다. Artur Schnabel의 연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1:41 + 5:29 = 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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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선생님과 훌륭한 제자의 모습.

선생님은 제자의 장점을 보고, 제자는 선생님의 판단에서 사랑과 가능성을 깨닫고 노력하는 것.... 우리 시대에서도 정말 본받아야 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900년, 18살이 된 슈나벨은 본격적으로 피아니스트로서 활동을 하기 위해서 빈에서 베를린으로 거주지를 옮깁니다. 그리고 실내악단 활동과 또 지휘자 아르투르 니키쉬와 함께 협연을 하면서 점차 유명해지기 시작하죠.

1905년에는 아주 중요한 일이 일어나는데요, 바로 결혼입니다. 슈나벨은 어린 시절 아주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서 음악적으로 많이 성장했지만, 또 결혼을 하면서 더 음악적으로 발전하게 되는데요. 도대체 누구랑 결혼했길래.... 슈나벨의 부인이 된 사람은 당시에 유명한 콘트랄토 Therese Behr 라는 여성인데요, 이 분은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의 해석에 능통한 연주자여서 슈나벨은 음악적으로도 부인의 내조를 많이 받은 셈이 되었죠. 특히나 슈베르트가 서거한지 100주년이 되던 1928년에 베를린에서 부인과 함께 연주한 슈베르트 연주회 시리즈는 역사적인 연주회로 길이 기억되는 연주회였다고 하죠.

슈나벨이 쓴 <나의 삶과 음악>이라는 자서전에 보면 슈나벨은 1919년부터 1924년까지 베를린에서 바이올리니스트인 Carl Flesch, Joseph Szigeti, 첼리스트인 Pablo Casals, Pierre Fournier, 비올리스트인 Paul Hindemith 같은 연주자들과 함께 실내악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으로 가장 자극도 많이 받고 또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고 해요. 그 시절에 이 분들과 함께 연주한 곡은 예를 들면,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삐에로 같은 곡이 있었고요, 연주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인 현악 4중주곡을 세 곡 작곡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내가 이제 베토벤 소나타를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깨달았다고 말한 시기도 바로 이 때이고요.

1925년 슈나벨은 연주가에서 교육자로 변신을 하게 되는데요, 바로 베를린 국립 음악 아카데미에서 교수직을 맡으면서 이후에 훌륭한 피아니스트들을 많이 배출해내게 됩니다. 그 중 클리포드 커즌이나 클로드 프랑크, 레온 플라이셔, 야샤 스피바코브스키 같은 피아니스트들도 나왔지요.

슈나벨은 1927년 베토벤 서거 100주년 기념 해에 베를린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했고, 1932년과 34년 사이에 다시 한 번 베를린과 런던에서 전곡을 연주했는데, 바로 이 시기가 슈나벨의 일생에 있어서 클라이맥스였다고 해요.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베를린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1933년 독일에 나치당이 집권하면서 히틀러가 세력을 과시하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죠. 그 때 슈나벨이 독일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자신의 몸 속에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참 우습죠? 지난 8월에 일간지에 나온 기사를 보면, 히틀러가 몰래 즐겨 듣던 연주자 중에 바로 이 아르투르 슈나벨이 있었다는데, 그 이야기부터는 다음 시간에...

 


음악 듣겠습니다.

베토벤의 바가텔 A 단조, 일명 엘리제를 위하여. 슈베르트의 소나타 D.960 중에서 제3악장 Scherzo 와 Trio. 아르투르 슈나벨의 연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2:45 + 4:14 = 6: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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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