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음악 본연의 모습\"...에드빈 피셔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10-27
2007-11-28 12:59:50
허원숙 조회수 3165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10월 27일 원고....에드빈 피셔 (1) “음악 본연의 모습”

* 6. Oktober 1886 in Basel, † 24. Januar 1960 in Zü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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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피아니스트는요, 스위스의 피아니스트이면서, 지휘자이면서, 교육자이고요, 특히나 바흐와 베토벤의 해석에 권위가 있으신 분인데, 지난 시간 클라우디오 아라우처럼,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였던 마르틴 크라우제 선생님의 제자인 분입니다.

모르시겠다구요? 그렇다면 힌트 한 가지 더 드리겠습니다.

알프레드 브렌델, 파울 바두라-스코다, 다니엘 바렌보임의 스승인 분.

아셨죠? 바로, 에드빈 피셔입니다.

에드빈 피셔는 1886년 10월 6일에 바젤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음악가이고 또 작곡을 했는데, 그 조상은 독일계와 또 보헤미안계가 섞인 프라하의 악기제작을 하는 가문의 후예라고 하죠.

에드빈 피셔는 바젤 콘서바토리에서 Hans Huber에게, 베를린의 슈테른 음악원에서 마르틴 크라우제를 사사하고 1905년부터 9년간 그 학교에서 가르쳤는데요, 그 당시에 베를린이라는 도시는 피아니스트에게는 최고의 도시였다고 해요. 페루치오 부조니도 그 곳에 있었고요, 또 베토벤의 해석으로 유명한 아르투르 슈나벨, 빌헬름 켐프도 그 곳에서 활동을 했었고, 오페라 분야에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에리히 클라이버, 지휘자로는 소리의 마술사로 불리는 아르투르 니키쉬가 있었고요, 또 베토벤 전문가로 알려진 유진 달베르, 오르가니스트인 카를 슈트라우베....등등  에드빈 피셔가 영향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살고 활동하고 있었던 베를린의 풍경화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좋은 곳에 있으면 어린 나이에 활동을 시작할 것 같은데, 에드빈 피셔는 1914년까지 슈테른 음악원에서 가르치다가, 서른살이던 1916년에서야 비로소 피아니스트로 데뷔하게 됩니다. 신기하죠? 이렇게 늦은 나이에 데뷔라니... 그리고나서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하면서 뤼벡 음악협회의 지휘자로서, 또 뮌헨의 바흐 협회의 지휘자로서 활동을 하다가 다시 1931년 (45세) 베를린으로 돌아와 베를린 음대의 교수직을 맡게 되지요. 그러니, 사실 피아니스트로 활동한 것 보다는 지휘자, 교육자로서의 음악활동이 더 많은 분이었죠.

음악을 듣겠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중에서 제2악장 Adagio un poco mosso입니다. 에드빈 피셔의 피아노, 빌헬름 푸르트뱅글러가 지휘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1951년도 연주입니다. (연주시간 7:50....49초까지만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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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의 에드빈 피셔, 그리고 또 같은 나이의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이 두 분의 인연은 우선, 1886년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라는 것이겠구요, 1923년 아르투르 니키쉬 대신 푸르트뱅글러가 지휘대에 올랐을 때, 협연 파트너로 바로 이 에드빈 피셔가 함께 무대에 오른 것, 그리고 이후로도 평생을 함께 활동해 온 것, 그리고 1954년 푸르트뱅글러가 사망하고 그해에 에드빈 피셔도 중풍으로 쓰러진 것.... 을 들 수 있겠죠.

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문제. 

다음 중 20세기 전반기의 베토벤해석가로 가장 정평이 나있는 피아니스트 중에서 두 명이 스케일과 아르페지오 시험에 떨어진다면 그 둘은 누구일까?

답. 

아르투르 슈나벨과 에드빈 피셔 :)

이 농담은, 아르투르 슈나벨과 에드빈 피셔를 폄하하려는 말이 아니고요, 음악이란 음계나 아르페지오를 잘 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잘 말해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피셔는 슈나벨과 함께 musician-pianist 음악가이면서 피아니스트인 분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피아니스트이면서 음악가가 아닌 사람 많잖아요!)

에드빈 피셔의 사진을 보면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예리한 눈빛이 마치 베토벤이 환생한 것 같은 모습인데, 건반의 사자라고도 불리지만 앞발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되어있지 않고 부드러운 velvet으로 되어있는 사자라고 합니다. 따뜻함과 훈훈한 인간미가 넘치는 분이라는 뜻이겠죠. 실제로 에드빈 피셔는 말년에 중풍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그의 연주에 지성과 감성이 적절한 균형을 갖추고 있으며 그 바탕에는 고전 양식에 대한 깊은 이해가 깔려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피셔는 항상, 나의 아버지는 베토벤과 같은 시대를 살았고, 나의 할아버지는 바흐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고 말했다는데요, 이것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니 인정해 달라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베토벤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나의 아버지는, 나와 세대가 다르고, 또 바흐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나의 할아버지와 나는 세대가 또 다르니, 이제 바흐와 베토벤은 나와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같은 시대 사람이 아니듯이, 다르게 현실에 맞게 연주되어야 한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연주에는 전통을 그대로 답습, 계승하는 것도 있겠지만, 직간접적으로 세기가 변하면서 해석에는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에드빈 피셔가 아주 개인적인 해석을 해서 음악이 너무 자유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시겠지만, 피셔가 항상 학생들에게 당부하는 말은, 위대한 음악의 얼굴에 너 자신의 자존감을 집어넣지 말 것, 표피적인 물질주의를 배격할 것이었다고 합니다. 19세기에 만연했던 과다한 표현, 과다한 해석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음악에 있어서의 자정노력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당시 신고전주의를 부르짖었던 부조니, 힌데미트, 스트라빈스키, 또 토스카니니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뜻을 같이 하던 음악 본연으로 돌아가자는 운동. 바로 그 반열에 서 있었던 음악가였죠.

음악 듣겠습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331 중에서 제3악장 Alla Turca (터키 풍으로)와, 슈베르트의 즉흥곡 D.899 중에서 제2번 E flat 장조입니다. 에드빈 피셔의 연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2:57+4:18=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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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란 영원한 존재인 신과 인간 사이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 에드빈 피셔가 한 이 말처럼, 이 분의 음악에 피셔는 없고, 모차르트만, 슈베르트만 존재하는군요.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