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피아노도, 오르간도, 작곡도\"...빌헬름 켐프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9-08
2007-11-28 12:57:36
허원숙 조회수 2667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09월 08일 원고....빌헬름 켐프 (1) “  피아노도, 오르간도, 작곡도 ”

(1895.11.25 Jueterbog - 199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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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피아니스트이면서 오르가니스트이면서 또 작곡가인 분인데요, 50이 넘은 나이에 피아니스트의 반열에 올랐고 또 50대에서부터 그의 전성기가 시작되어서 87세에 은퇴를 한, 베토벤의 제1인자입니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을 자그마치 3번이나 했고요.

누군지 짐작하시죠?

바로 독일이 자랑하는 정통 독일음악, 특히 베토벤의 해석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입니다.

빌헬름 켐프는 1895년 11월 25일 베를린 근처의 위터보그에서 태어났는데요, 할아버지도 오르가니스트, 아버지도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이며 성가대 지휘자이셨고요, 또 그의 형도 후에 Erlangen 대학의 교회음악 감독을 지낼 만큼, 모든 가족이 음악가족이었지요.

빌헬름 켐프가 4살 때  켐프의 가족은 프로이센의 궁정이 있는 포츠담으로 이사를 갑니다. 왜냐면 아버지가 포츠담의 니콜라이 교회의 궁정악장 겸 오르가니스트로 취직이 되었기 때문이죠. 켐프는 음악적인 가정 환경으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숙하게 되었고요,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어릴 적부터 감수성이 너무 예민했던지, 아버지의 연주를 회상하는 말이 있어요.

“아버지는 무거운 악보를 들고 피아노 앞에 가시더니 연주를 시작했다. 피아노 위에 올려진 악보에 쓰여진 갖가지 악상기호는 마법의 기호처럼 느껴졌다.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이건 누가 쓴 거죠?’ 나는 하느님이 이 곡을 썼다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대답하셨다. ‘베토벤이 썼단다’.”

이렇게 감수성이 예민했던 켐프는 여섯 살 때 첫 피아노 소품을 작곡하면서 신동으로서의 소질을 보이기 시작했다는데요, 1904년 아홉 살 때에는 베를린 음대의 예비학교의 입학허가를 받아서 피아노와 작곡을 복수전공을 하면서 피아노는 하인리히 바르트, 작곡은 로베르트 칸에게 수업을 받기 시작했는데 어린 나이에 이렇게 피아노와 작곡을 두 가지 다 복수 전공을 하는 어린이들은 당시에 꽤 많았다는데요,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작곡을 할까 아니면 피아노를 할까 정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둘 다 해 보는 거였는데, 켐프는 그런 사람들과는 다르게 두 가지다 완벽하게 전공으로 선택한 상태였다고 해요. 게다가 아버지를 닮아서 1905년 그러니까 열 살 때에는 오르가니스트로 아버지가 시무하시는 니콜라이 교회에서 연주를 하고, 때로는 아버지 대신 연주를 하기도 했답니다.

피아니스트로 데뷔한 것은 1907년 그러니까 12살 때였는데요, 포츠담의 Palast Barberini에서 데뷔 연주회를 한 것이었죠. 그 날 연주된 곡은 자기 자신이 작곡한 작품과 또 청중들이 준 주제 두 개를 가지고 즉흥연주를 한 것이었다고 하죠.

 


음악 듣겠습니다.

슈만의 아라베스크 op.18 을 빌헬름 켐프의 1973년 (78세) 녹음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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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에 아버지를 대신해서 니콜라이 교회의 오르간도 연주하고 또 12살에는 청중들이 던져 준 주제를 가지고 즉흥연주를 하는 켐프의 모습... 상상이 가세요? 이렇게 어릴 적부터 천재성이 돋보였던 음악가가 나이 50에서야 비로소 인정받는 피아니스트로 탄생했다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켐프는 피아노나 오르간도 물론 소질이 많았지만 사실은 작곡에도 열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16살에 피아노 트리오와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해서 발표하고, 17살에는 페루치오 부조니 앞에서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함으로서 부조니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고, 또 자신의 음악에 부조니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베를린 음대의 예비학교에서 작곡과 피아노를 복수 전공하고, 또 오르가니스트로도 활동을 하던 켐프는 1914년에 독일의 수능시험이라 할 수 있는 Abitur에 합격합니다. 그게 뭐 대수냐고 하겠지만 사실은 켐프가 수학에 약했다고 해요. 그래서 수학시험을 백지로 낼 수 밖에 없었고 수학 점수는 당연히 낙제 점수를 받았는데도 다른 과목이 월등히 점수가 높은 바람에 Abitur에 합격을 하고 드디어 베를린 음대에 무사히 진학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예비과정에서부터 배우기 시작했던 선생님, 하인리히 바르트 기억나세요?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의 선생님이기도 했는데요.

이 하인리히 바르트는 한스 폰 뷜로의 수제자였는데, 한스 폰 뷜로는 리스트의 제자였죠. 또 이 리스트는 체르니의 제자였고, 체르니의 선생님은 바로 루드비히 반 베토벤입니다. 그러니 베토벤에서 체르니로, 또 리스트로, 그리고 한스 폰 뷜로를 거쳐서 하인리히 바르트,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에는 빌헬름 켐프로 이어지는 이 음악의 계보는 켐프를 베토벤을 포함한 독일 음악의 정통파, 원조의 부담과 긍지를 한껏 심어준 셈이 되었죠.

그런 긍지는 켐프가 1916년에 베를린 음대를 졸업할 때 결실로 나타났는데 피아노 부문과 작곡부문 모두에서 최고의 상인 영예로운 멘델스존 메달을 받고 졸업을 하게 된 것이었고요, 학위도 없는 오르간 연주자로서도 많은 인정을 받아서 피아노와 오르간 두 분야에서 모두 연주 제의를 받기 시작했는데, 졸업 후 연주자로 데뷔한 것은 피아노가 아니라 사실은 오르가니스트로 스웨덴에서 연주회를 가진 것이었다고 해요.

그 후 같은 해에 베를린 필하모니 홀에서 아르투르 니키쉬가 지휘하는 베토벤의 협주곡 4번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연주함으로써 피아니스트로 데뷔하게 되었고요.

그 후에는 1924년 (29세) 슈투트가르트의 뷔템베르크 음대의 학장직을 맡으면서 교직에 몸담고, 또 1926년에는 이제부터 60년을 함께 하며 7명의 자녀를 낳아줄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27번, op.90의 2악장 <너무 빠르지 않게, 노래하듯이> 입니다.

빌헬름 켐프의 1965년 녹음 연주입니다. (70세) (연주시간 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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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