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이발사와 아인슈타인\"...레오폴드 고도브스키 5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9-01
2007-11-28 12:57:10
허원숙 조회수 2398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09월 01일 원고....레오폴드 고도브스키 (5) “ 이발사와 아인슈타인”

1870.2.13-193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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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브스키는 부인과 네 자녀를 두었는데요,

첫째 딸 바니타는 피아니스트 David Saperton과 결혼을 했는데, 이 Saperton은 Abbey Simon, Jorge Bolet, Shura Cherkassky의 선생님으로 유명하죠.

둘째 딸 다그마 고도브스키는 영화쪽에 관심이 많아서 배우가 되었는데, 당시 무성영화시절에 유명한 배우였다네요. 그녀의 주요 역할은 흡혈귀였다고 하죠. ~~~~

첫째 아들 레오폴드 주니어 고도브스키는 사진에 관심이 많아서 취미가 직업이 된 사람인데, 자신의 친구 레오폴드 매니스와 함께 칼라사진의 과정을 발명을 했고, 이것은 1935년 코다크롬, 그러니까 코닥 최초의 외형 발색 컬러 필름이 되었죠. 사진 역사에 나오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또 조지 거쉬인의 사위가 되었고요.

둘째 아들, 고든 고도브스키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쇼 댄서와 결혼하겠다고 공부를 접었다고 해요. 그래서 아버지 고도브스키는 자식과의 연을 끊었다고 하네요.

 


1929년부터 고도브스키의 집에는 좋지 않은 일이 끊이지 않았는데요.

고도브스키에게 있었던 첫 번째 좋지 않은 일은 증시가 폭락하면서 재정적으로 다시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된 일이었고요, 두 번째는 1930년 60회의 생일과 결혼 39주년을 맞으면서 쇼팽의 연습곡과 스케르초 녹음을 마치고는 중풍에 걸려서 오른손을 못 쓰게 되고 공개 연주를 못하게 되면서 절망에 빠진 일. 그리고 세 번째 일은 부자간의 인연을 끊었던 둘째 아들이 1932년 12월 가스로 자살하게 된 사건이었죠.

게다가 부인 프리다는 당뇨병으로 시력, 신장 나빠지고 고혈압.. 병원 신세를 지는 때가 많았는데 결국은 건강이 너무 나빠져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고요. 흡혈귀 배우로 유명한 둘째 딸은 사회적으로는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두 번 결혼하고 결국 이혼했고요....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고도브스키는 이혼한 둘째 딸과 함께 살면서 조촐하게 지인들과 함께 모이면 아픈 손으로 즉석 연주회도 하고 매스터 클래스도 하고 온천에도 가고, 자신이 생각했던 <세계 음악과 음악인집회>와 협회를 만들려고 열심히 살았는데... 사실은 중풍과 함께 모든 일에 젊은 시절의 생기와 의욕을 잃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1937년의 대부분은 심장과 통풍 때문에 자리에 누워서 지내다가 1938 11월 68세를 일기로 위암으로 세상을 뜨고 Temple Israel Cemetry에 부인과 둘째아들 곁에 묻힙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쇼팽의 에튀드, 고도브스키의 편곡으로 보내드립니다.

쇼팽의 에튀드 op.10-5 일곱가지 편곡입니다. 연주에는 마르크-안드레 아물렝입니다.

(연주시간 1:40+1:49+2:28+2:09+1:57+1:49+2:19=약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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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다그마가 회상하는 아버지의 추억 에피소드.

고도브스키의 단골 이발사 카루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아인슈타인을 숭배하는 사람이었다고 해요. 고도브스키와 친하게 된 이발사는 어느 날 고도브스키와 아인슈타인이 친한 친구인 것을 알고 부탁했다고 해요. 아인슈타인을 한 번 만나게 해 달라고...

고도브스키는 아인슈타인에게 그 말을 했고, 아인슈타인은 언젠가 그 이발사를 만나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하지만 그 말은 건성이었고, 거의 잊어버렸다고 하죠.

고도브스키가 이발하러 갈 때마다 이발사는 “아인슈타인씨가 정말 약속을 지키실까요? 하고 물었고, 고도브스키는 “걱정 마, 언젠가 아인슈타인은 올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죠. 세월이 지났고 고도브스키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프린스턴의 아인슈타인 박사에게 전해졌는데....

고도브스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아인슈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자와 목도리를 집어들더니 뉴욕행 첫 기차를 타고, 고도브스키의 단골 이발소로 향했다고 합니다.....

 

 

 

고도브스키는 자신의 묘비명을 죽기 5년전에 써놓았는데요, 그 내용은...

“나는 내가 선택한 예술과 사랑하는 악기를 위해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일했습니다. 나는 나의 분야에서 많은 것을 이루었고 내 동년배보다 많은 것들을 해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인정과 물질적인 축복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를 돌아보건대, 나의 시절은 지나갔고, 지금 내가 발견하는 내 모습은 아프고 불쌍한 모습입니다. 소수의 사람들은 내가 살아온 삶의 중요성을 알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단지 옛 기억이 일부가 될 때 비로소 내가 이루었던 일들과 나의 영향력은 살아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쇼팽의 녹턴 no.14, F # 단조, op.48-2와 no.15 F 단조 op.55-1을  레오폴드 고도브스키의 연주로 보내드립니다. (4:17+4:14= 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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