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편곡의 귀재\"...레오폴드 고도브스키 3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8-18
2007-11-28 12:56:23
허원숙 조회수 2592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08월 18일 원고....레오폴드 고도브스키 (3) “편곡의 귀재”

1870.2.13-193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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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브스키의 세 번째 시간입니다. 다섯 살이 된 때부터는 아무의 도움도 필요없이 피아노를 칠 수 있었고, 베를린 음대에 단 석 달간 다닌 것이 음악공부의 전부였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아니스트 중의 피아니스트라는 별명을 가진 피아니스트이면서 작곡가라고 말씀드렸죠.

그런 고도브스키는 1891년 스물 한 살이 되던 해부터 뉴욕과 필라델피아, 시카고의 음악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또 피아노과 과장으로 재직하게 되었는데요, 학교에 있으면서 1892년에 피아노 연주의 기술적 방법에 대해 연구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 연구는 팔의 무게, 이완, 동작의 절약을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바로 이 연구가 피아노 연주해석의 방법과 메커니즘을 발전시키는 초석이 되었다고 하죠.

이 연구는 테레사 카레뇨라는 피아니스트와 함께 공동연구를 했던 것인데, 카레뇨는 안톤 루빈슈타인이 피아노를 연습하는 것을 잘 관찰했던 것을 기초로 삼아 고도브스키와 비슷한 연구와 이론을 개발했던 사람이었어요. 이 연구로 말미암아 고도브스키는 당시에 널리 퍼져있던 피아노 연주 방법인 근육의 원동력을 사용하는 방법이 아닌, 무게를 이완하는 법칙을 받아들이고 가르치는 최초의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었죠.

1890년대에 고도브스키는 다른 작곡가들의 곡을 편곡하기 시작해요. 편곡을 잘 하는 작곡가라면 일단 프란츠 리스트를 들 수 있겠죠? 베토벤의 교향곡에서부터 모차르트, 바그너의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편곡을 많이 했던 작곡가였는데요. 리스트같은 사람과는 좀 다르게 고도브스키는 오케스트라 곡이 아닌 원래 피아노곡이었던 그것도 원곡 자체로도 충분히 어려운 작품을 편곡하기 시작합니다. 첫 번에는 쇼팽의 론도 op.16을 가지고 시작했다가, 또 쇼팽의 화려한 대 왈츠 op.18 그리고 아돌프 폰 헨젤트의 에튀드 op.2-6 같은 곡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1893-1914년까지 아주 괴물같은 작품을 탄생시킵니다. 그 작품은 바로 쇼팽의 에튀드에 위한 54개의 작품인데요. 이미 충분히 어려운 에튀드인데, 그 곡을 왼손만으로 치게 만들어놓는다던지, 아니면 엄청 어려운 테크닉을 추가해 놓는다던지, 아니면 그것도 모자라면 두 개의 연습곡을 한꺼번에 포개어서 치게 만들어놓는다던지 해서 피아니스트로서 테크닉의 극한점까지 몰고 가도록 만들어 놓은 작품이었죠. 이 곡으로 인해서 고도브스키는 피아노를 위한 중요한 작곡가라는 명성을 쌓는 기초를 닦았고요.

 


음악을 듣겠습니다.

쇼팽의 에튀드를 가지고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라고 말하는 바로 그 곡들 중에서 몇 곡을 듣겠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고도브스키의 연주는 아니고요, 마르크-안드레 아믈렝이 연주하는 음반에서 골랐습니다.

Etude 25: 쇼팽 에튀드 op.25-1

Etude 34 :쇼팽 에튀드 op.25-5를 마주르카로 편곡한 작품,

Etude 39와 40 : op.25-9를 양손으로 또는 왼손만을 위해 편곡한 작품,

그리고 마지막으로 Etude 47 : op.10-5와 25-9를 합쳐놓은 작품입니다.

(연주시간 2:45+ 3:36+ 1:03+1:32+1:34 = 약 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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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브스키는 1890년대 초부터 한 10년 동안에 미국과 캐나다의 전지역을 돌며 연주를 했는데요, 시카고에서는 피아노 선생으로서 존경받고, 작곡가로서 특히 조금 전에 들으신 쇼팽-고도브스키로 명성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1897-1898 시즌에는 19세기의 모든 피아노 문헌을 총망라하는 8개의 프로그램으로 된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당시로서는 이런 방대한 콘서트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하고, 아무도 그런 프로그램을 들고 나오는 일이 없었다고 하네요.

고도브스키는 1900년 7월 시카고 콘서바토리에서 안식년을 받아 다시 유럽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프랑스로 떠납니다. 이제는 딸린 가족이 많이 늘어났는데요, 부인과 6살 2살 그리고 0살짜리 이렇게 세 자녀와 함께 유럽으로 떠납니다.

유럽에 도착한 처음 몇 달 사이에 유럽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롤드 바우어, 구스타프 말러, 카를 라이네케, 아르투르 니키쉬, 블라디미르 데 파흐만, 유진 달베르, 모리스 로젠탈, 페루치오 부조니, 에드바르드 리슬러, 테레사 카레뇨, 에밀 폰 사우어, 또 알프레드 라이제나우어...... 같은 음악가들이었고요.

1900년 12월 6일 고도브스키는 서른 살의 나이로 베를린의 베토벤 홀에서 데뷔공연을 합니다. 이미 미국에서 또 캐나다에서 쌓아올렸던 그의 명성이 이미 유럽에도 널리 알려진 터라 그의 연주를 들으러 온 청중들이 정말 많았는데요, 다행인 것은 비판적인 청중들은 오지않았다고 하죠. 그 날 그 연주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는데요 연주회 평을 보면 ‘피아니스트의 역사에서 가장 기억될 만한 일이 될 것이다. 살아있는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의 하나’라는 평과 함께 대단한 환호를 받았다고 하네요. 밤이 새도록...

그런데 참 고도브스키는 자기 자신도 자기가 건반악기 연주가 중에서 한 자리 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고요, 악기하는 사람 중에 가장 높이 평가받는 사람 중의 한명이 되었다도 해요. 그때가 30살 때. 기다림의 시기는 끝났고 이제 다음 30년은 그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최고의 자리만큼 또 최고로 바쁘게.... 그야말로 강행군의 스케줄로 꽉 찬 나날들이었고요, 항상 16개 또는 20개 정도의 프로그램을 한 곡도 겹치지 않게 가지고 있었다고 하고요, 그 각각의 프로그램에는 음악적으로 아주 중요하고 굵직한 레퍼토리가 들어있었다고 하죠. 1907년에는 유럽에서만 70회가 넘는 연주회를 가졌고요, 1910년이 되니까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연주한 셈이 되었다고 해요, 오스트리아, 헝가리, 영국,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벨기에, 스칸디나비아반도, 러시아, 발칸제국들.... 어쩜 좋아!

 


음악 들어요.

 


고도브스키의 작품 Alt-Wien (=Old Vienna)와 고도브스키가 편곡한 쇼팽의 왈츠 op.64-1입니다. 연주에는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입니다. (연주시간 2:01+3:2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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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