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피아노의 셰헤라자데? 흠흠...\"...레오폴드 고도브스키 2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8-11
2007-11-28 12:56:01
허원숙 조회수 2455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08월 11일 원고....레오폴드 고도브스키 (2) “피아노의 셰헤라자데? 흠흠...”

1870.2.13-193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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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의 요약입니다.

태어난지 1년 6개월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워진 가정살림에 동부서주하신 어머니의 친구부부에게 양자로 들어가서 피아노를 시작한 고도브스키. 이미 5살 때에는 아무의 도움도 필요없었다는 독학파 피아니스트. 9살에 데뷔연주회를 하고 연주여행을 다닐 정도의 뛰어난 재능을 키워주려고 양아버지의 주선과 또 독지가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성사시킨 베를린 유학. 하지만 3개월 만에 “이제 충분해”라는 말과 함께 학교를 그만두고 친엄마와 양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떠난 고도브스키. 그 때 나이 열네 살. 몇 차례의 작은 연주회를 가졌지만 남겨진 것은 빈 호주머니와 캄캄한 나날, 그리고 새로운 결심.....“뉴욕으로 가야한다.”

기억 되살리셨죠?

1886년 열 여섯 살이 된 고도브스키의 인생에 그의 친엄마와 양아버지 파시노크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게 됩니다. 그 이유는 양아버지의 운명은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정기적으로 편지를 주고 받던 친엄마는 1차대전 직전에 사망하였기 때문인데요, 자세한 내용은 밝혀진 게 없네요.

하지만 이제 고도브스키 옆에는 새로운 후원가가 나타납니다. 바로 Leon Saxe 라는 부자인데요, 자신의 6명의 친자녀와 동등하게 고도브스키를 받아들이고 양육하고 후원하게 되었죠.

어느 날 Leon Saxe는 고도브스키에게 제안합니다. “너 바이마르에 가면 어떻겠니? 거기서 프란츠 리스트와 공부하면 좋을텐데... 네 생각도 그렇지? 그래, 가자 한 4년 정도 거기 머물면서 공부하는 거야.”

리스트와 공부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1886년 7월 (이 날짜가 중요함) 고도브스키는 이제 그의 새로운 삼촌이 된 Leon Saxe와 함께 프랑스로 배를 타고 떠납니다. 그런데 배가 프랑스에 도착하자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프란츠 리스트가 사망했다네요. 7월 31에.... 배로 가는 여행이 길긴 긴가봐요.

리스트에게 배울 수 있다는 커다란 꿈을 접게 된 고도브스키는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카미유 생상의 문하생으로 들어갑니다.

카미유 생상(Camille Saint-Saens) 은 고도브스키에게 정기적인 레슨은 하지 않았지만, 고도브스키의 대단한 능력을 알아보고, 특별한 조건을 제시합니다. 그 조건이라 함은, 위대한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와서 위대한 나에게 피아노를 쳐 달라는 것이었죠. (가르쳐주지는 않고 듣기만 해 -.-) ‘얼~마든지 쳐 줄 수 있어...’ 고도브스키는 매주 일요일 생상의 집에 찾아가서 연주를 해 줍니다.

전설의 고향 이야기 같아요~! 아무튼, 일단 음악이나 들읍시다.

 


베르디의 오페라를 리스트가 편곡한 작품입니다. 리골레토-패러프레이즈. 레오폴드 고도브스키의 연주인데요, 편곡의 대가가 연주하니 리스트 편곡에 또 덧붙이기가 계속되는군요. 1926년 녹음으로 보내드립니다. (음질이 조금...) (연주시간 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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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일요일마다 고도브스키의 연주를 듣게 된 생상.

사실 그 당시 생상이라하면 자신이 스스로 위대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음악계에서 중요한 사람이었죠. 알프레드 코르토가 파리 음악원 다닐 때 거기의 원장이었고요. 코르토에게 ‘꼬마야 네 전공이 무엇이냐?’ 하고 물었는데 코르토가 ‘저는 피아니스트입니다.’ 하니까 ‘꼬마야, 우리 너무 과장하지는 말자! ’라고 했던 바로 그 인물. 작곡가이면서 피아니스트였던 프랑스의 자존심.

그런 사람이 매주 일요일 시간을 내어서 고도브스키의 음악을 들어주고, 또 고도브스키는 매주 기꺼이 생상에게 피아노를 연주해주고...

생상은 어린 아들을 잃었는데, 그 대신 이 새로운 아들이 자기의 죽은 아들을 대신하러 보내졌다고 믿었대요. 그리고 고도브스키에게 제안을 했죠. 양자로 들어오라고.

그런데, 그 조건이 하나 있었어요. 성을 갈으라는 것이었죠. 레오폴드 고도브스키에서 레오폴드 생상으로 바꾸라는 것이었죠. 고도브스키는 단호하게 거절했고, 그 사실은 생상을 매우 화나게 했습니다.

고도브스키는 파리에 열 여섯에 가서 스무살이 될 때까지 있었는데, 차이코프스키, 구노, 마스테, 토마, 포레, 피에르네 들리브 같은 작곡가들을 그 당시에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새로운 삼촌이 되어주었던 후견인 Leon Saxe 가 처음에 고도브스키를 파리에 데리고 오면서 한 4년쯤 여기 머물자고 했었는데, 1890년 딱 4년이 되자, 이 아저씨 Leon Saxe가 돌아가신 거예요. 고도브스키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고 그 해 10월에 미국에 도착합니다.

미국에 도착한 지 6개월이 지난 후에 고도브스키는 카네기홀에서 리사이틀을 개최했는데요, 당시는 카네기 홀이 아직 개관하지 않았을 때라고 해요. 개관을 2주 앞두고 연주의 초년병들은 모두들 거기에서 한 번씩 연주회를 했다는데, 고도브스키도 거기서 한 판 연주회를 시작한 것이었죠. 그리고 곧 이어 자신의 삼촌이라고 자처한 Leon Saxe의 딸과 결혼을 한 후에 뉴욕과 필라델피아, 시카고의 음악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피아노 과장으로 재직합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쇼팽의 소나타 제2번 B flat minor, op.35 중에서 제1악장 Grave, doppio movimento입니다. 레오폴드 고도브스키의 1930년 영국 Westminster의 Central hall 에서의 녹음입니다. (연주시간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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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