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피아니스트 중의 피아니스트\"...레오폴드 고도브스키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8-04
2007-11-28 12:55:40
허원숙 조회수 2850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08월 04일 원고....레오폴드 고도브스키 (1) “피아니스트 중의 피아니스트”

1870.2.13-193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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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요, 정식으로는 단 석 달 밖에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지만, “피아니스트 중의 피아니스트”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대단한 연주가인 동시에, 또한 기교파 연주가들이 선호하는 편곡작품을 많이 남긴 작곡가이기도 한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베레조프스키가 내한했을 때, 이분이 편곡한 쇼팽의 연습곡을 연주하기도 했죠.

누군지 아셨죠?

바로 레오폴드 고도브스키입니다.

고도브스키는 폴란드에서 출생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유태인 피아니스트인데요, 1870년 2월 13일 Sosly(소즈이?)에서 태어났는데, 이곳은 리투아니아의 옛 수도인 Vilna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대요. 아버지는 존경받는 물리학자였다고 하는데, 콜레라로 세상을 뜨셨죠. 그 때 이 레오폴드 고도브스키의 나이가 겨우 1살 반 (18개월)이었다는데,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고도브스키의 엄마는 먹고 사는 일이 정말 너무 힘겨워서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가 친구부부가 사는 Vilna로 옮겨가게 됩니다.

이 친구부부 Louis & Minna Passinock 중의 남편은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스스로 아마츄어 바이올리니스트였고 또 피아노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는데,  그 부부사이에는 안타깝게도 아이가 없었다고 해요. 이 부부는 어린 고도브스키를 제2의 파가니니로 만들어보려고 바이올린을 가르치기 시작했대요. 이 재주 많은 어린 고도브스키는 바이올린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서 멘델스존의 E minor 협주곡을 너무 잘 연주했다는데... 바이올린을 가르쳐준 엄마의 친구부부의 보람도 소용없이 이 어린 꼬마에게는 본능적으로 피아노에 끌려가는 무엇이 있었다고 하네요.

고도브스키가 쓴 자서전의 한 구절을 읽어 드릴께요.

“...나는 프란츠 리스트나 그런 아주 위대한 음악가의 제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내 생애에 레슨을 단지 석 달만 받았을 뿐이다. 사람들이 말하길, 나는 두 살이 되기 전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는데, 글쎄... 그것은 어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지어낸 것 같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너무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또 기억나지 않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나에게 음표 길이에 대해서, 그리고 건반 위에서 손가락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 준 사람이 있었는지, 아니면 내가 스스로 독학으로 깨우쳤는지에 대한 점이다. 하지만 기억나는 일이 딱 하나 있기는 한데, 그것은 내가 다섯 살이 된 때부터는 아무런 도움이 필요치 않았다는 점이다....”

어때요? 이 마지막 말, 다섯 살이 된 때부터 피아노치는 데 아무런 도움이 필요치 않았다는 점....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눈 앞에 벽이 탁 막히는 것 같아요.

그래, 어디 5살 때부터 그냥 피아노 쳤다는 이 분 솜씨 한 번 볼까요?

Godowsky 가 편곡한 Schubert 의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중에서 아침인사 (Morgengruss) 와 겨울나그네 중 밤인사 (Gute Nacht) 를 고도브스키의 1926년 9월 연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4:27+ 4:43=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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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브스키는 5살 때 첫 작품을 작곡하는데요, 미뉴엣입니다. 이 분이 회상하는 말이 또 있는데요, 정말 숨 막힙니다. 들어보세요.

“..내가 작곡한 첫 작품 미뉴엣의 중간 부분은 완벽한 캐논이다. 이 곡이 정말 가치있는 이유는 내가 그 곡을 작곡한 때에는 나는 단 한 번도 캐논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캐논을 23년이나 지난 다음에 다른 내 작품에 인용하였다...”

할. 말. 없. 음.....

도고브스키는 9살 때 Vilna에서 첫  공개연주회를 하고, 이제 양아버지가 된 Louis Passinock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피아노 신동으로 연주여행을 떠납니다.

11살이 되자 고도브스키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고도브스키의 양아버지는 이 어린 신동을 밀어주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많이 필요했는데요, 고도브스키의 연주를 듣고 Feinberg 라는 은행가가 고도브스키의 꿈을 실현해 줍니다.

바로 베를린 음대의 입학시험을 보러 갈 수 있게 해 준 것인데, 그 시험의 감독관 중에는  모리스 모스코프스키, 요셉 요아힘이 있었고요, 또 슈만의 매형인 Woldemar Bargiel 이 있었다죠. 시험을 잘 치른 고도브스키는 은행가인 Feinberg의 재정보증으로 베를린 음대에서 Ernst Rudorff의 문하로 들어가게 되죠.

야, 이제 제대로 공부를 시작했구나! 잘 됐다 !하시겠지만, 이 고도브스키는 3개월이 지나자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도 그렇고 또 고도브스키의 친엄마는 편지를 너무 자주 보내셨는데, 그 편지마다 애써 감추려고는 하지만 당신이 외롭고 또 아들이 걱정된다는 말이 쓰여있었지요. 게다가 양어머니 Minna 는 돌아가시고, 양아버지 Louis 는 고도브스키를 너무 보고 싶어하고.... 13살 어린 고도브스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일들이었죠. 드디어 짐을 싸고 돌아갈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기차역에서 친엄마와 양아버지를 만나서 함부르크행 기차를 탑니다. 왜? 배를 타려고요..... 어디로? 미국으로요....

1884년 11월. 고도브스키는 친엄마와 또 양아버지와 함께 미국에 도착해서 12월 7일에 보스톤에서 데뷔를 하고, 85 년에는 뉴욕 카지노에서 연주회를 하기도 하고 vilna에서 신동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함께 연주하자는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공연 여행을 하기도 했는데, 그 후에는 서부에 남겨져서 돈도 떨어지고 앞날도 캄캄한 나날을 보내게 되죠. 그러면서 항상 머릿속에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데, “뉴욕으로 가야한다. 뉴욕으로...”

 


음악 듣겠습니다.

Chopin의 녹턴 op.72-1 (E 단조)와 op.9-1 (Bb 단조)를 고도브스키의 1928년 6월 녹음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3:38+4:10= 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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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