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마비되어도 연주는 끝까지\"...이그나츠 프리드만 2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7-28
2007-11-28 12:55:17
허원숙 조회수 2966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07월 28일 원고....이그나츠 프리드만 (2)  “마비되어도 연주는 끝까지”

1882.2.14-1948.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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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이그나츠 프리드만을 소개하면서 3천회에 육박하는 연주회를 가졌다고 말씀드렸죠. 게다가 800개의 서로 다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고, 그 프로그램은 매주 두 번씩 10년 동안 겹치지 않는 프로그램으로 연주회를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분의 일과는 어떨까...

프리드만은 아침에 일어나면 피아노를 치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예를 들면 쇼팽의 에튀드 흑건과 나비를 혼합한 고도브스키의 곡을 치면서 피아노의 보면대에는 조간신문을 올려놓고 신문을 읽거나 아니면 수학책을 보던가 했다고 하죠. 그러니 이런 가공할 만한 테크닉은 연습을 통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는데, 이그나츠 프리드만의 연주를 들으면 단지 손가락의 테크닉만 훌륭한 것이 아니라, 페달효과도 아주 탁월해서 반페달, 4분의 1 페달 같은 예민한 귀만이 창조할 수 있는 음향과 음색, 루바토, 액센트, 또 프레이징 같은 것들은 아주 신축성이 있으면서 때로는 압축된 것처럼 고밀도의 음악을 표현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프리드만 고유의 음악적 특징을 알 수 있죠.

프리드만이 살았던 시대는 피아노의 황금시대라도 불릴 정도로 기라성같은 피아니스트들이 많았던 시대였는데, 당대의 피아니스트들은 피아노 연주 뿐 아니라 작곡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는 시대였습니다.

프리드만도 그 많은 연주를 다 소화해내면서 작곡가로서도 바쁜 일정을 보냈고 또 악보를 편집하고 작품에 광택을 내고 디테일한 것들을 보강하는 일도 많이 했는데요, (악보를 편집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 쇼팽이 작곡한 악보에 손가락번호를 첨가하고 페달 기호와 프레이징, 분명치 않은 연주방법 지시사항 같은 것을 확실하게 보강해주는 것들을 말하죠!) 슈만과 리스트의 작품을 편집해서 에디션을 만들었고, 특히 쇼팽은 브라이트코프 운트 해르텔 출판사에서 전곡 에디션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프리드만의 쇼팽 에디션을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이 있는데요, 바로 러시아의 피아니스트이면서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의 스승이었던 겐리흐 네이가우스죠. 네이가우스가 쓴 “피아노 연주 기법”이란 책에 보면, 프리드만의 손가락번호에 대해서, “연주자로서뿐만 아니라 교사로서의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프리드만처럼 재주가 뛰어나고 힘이 넘치는 피아니스트가 어떻게 그런 무의미한 일에 빠지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가 편집한 쇼팽의 악보집에는 무의미한 것들이 남발하고 있다...”고 되어있는데, 프리드만의 손가락번호가 정말 특이한 것은 사실이지만, 곡에서 원하는 확실한 표현을 하기 위해서 프리드만이 특별히 신경을 쓴 번호였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 말 생각나네요.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닌데, 남이 나와 다르면 우리는 틀렸다고 생각한다.... 누가 한 말인가...제가 한 건가? 으악!

 


음악 듣겠습니다.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14번을 이그나츠 프리드만의 1924년 11월 피아노 롤 녹음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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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번호가 다르면 좀 어때요. 작곡가의 의도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또한 연주자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으면 된 거 아닌가요? >.<

1940년 이그나츠 프리드만은 호주에서 연주회를 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는데, 그 당시 프리드만은 프랑스에 머물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 초청을 받아들여 프랑스를 떠나 호주로 가게 됩니다. 호주로 떠나자마자 프랑스에는 독일군이 쳐들어오고, 2차 대전이 시작되었죠. 전쟁의 기미를 미리 알고 떠난 것 같은데, 유태인이었던 프리드만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호주에서의 초청 연주를 마치고나서도 프리드만은 계속 호주에 정착해서 연주활동을 하다가 1943년 여름 연주회에서 왼손에 경련을 일으키게 되죠. 그 날 연주 프로그램은 모두 쇼팽의 작품이었는데, 쇼팽 소나타 2번과 3번, 24개의 전주곡, 마주르카 몇 곡, 폴로네즈, 연습곡 등이 포함된 프로그램이었다고 해요. 굉장히 무리가 많이 되는 프로그램인데, 이렇게 손에 경련을 일으키면서도 연주는 끝까지 다 했고요, 그 다음날 아쉽게도 프리드만의 왼손은 마비되어서 더 이상 공개 연주회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단지 학생을 가르칠 때 그 학생을 위해서 조금 쳐 주는 정도였는데, 그래도 예전의 기량은 남아 있어서, 쇼팽의 소나타 2번의 4악장을 오른손만으로 연주해 주었다고 하죠. 양손으로 옥타브 간격으로 같은 음을 치는 곡인데, 오른손으로 옥타브로 이 곡을 연주했다고 하니... 놀랍죠. 그렇게 5년을 더 사시다가 1948년 1월 26일 66세를 일기로 시드니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3000회에 육박하는 이그나츠 프리드만이 남긴 실내악 연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비엔나에서 있었던 1927년 베토벤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연주회로, 바이올리니스트 브로니슬라브 후버만,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와 함께 연주한 것이었고요.

작곡가로서 남긴 작품은 90점이 있는데, 대부분 피아노를 위한 소품이고, 첼로를 위한 곡도 있고, 피아노 5중주를 위한 곡도 있는데, 다른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들이 남긴 작품보다는 한 수 위라는 평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연주는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1940년 이후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활동하면서 라디오 방송용으로 연주하면서 녹음한 음원들은 상당수 분실되었다고 하네요.

허무하죠?

그래도 천재이면서도 열심히 평생을 연주에 바치고, 마지막 그의 왼손이 마비되는 순간에도 무대 위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한 피아노의 타이탄, 프리드만에게 감동의 박수를 보냅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쇼팽의 왈츠 작품 64의 1과 리스트의 파가니니 연습곡 3번 라 캄파넬라를 이그나츠 프리드만의 1924년과 1923년  피아노 롤 녹음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1:46+5:5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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