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피아노의 타이탄\"...이그나츠 프리드만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7-21
2007-11-28 12:54:53
허원숙 조회수 2582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07월 21일 원고....이그나츠 프리드만 (1)  “ 피아노의 타이탄”

1882.2.14-1948.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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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피아니스트는요, 3천회에 육박하는 연주회를 개최하며 전 세계를 누볐던 피아노의 타이탄! 고민하거나 애쓴 흔적이 없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피아니스트!  자유분방한 연주 스타일!

누굴까~요?

이그나츠 프리드만입니다.

이렇게 3천회 연주를 하려면, 1년에 75회씩 연주회를 40년간 꾸준히 했다는 말인데요, 연주횟수도 물론 놀랍지만, 똑같은 프로그램을 장소만 바꾸어서 연주하고 다닌 것이 아니고, 이분의 연주회 프로그램은 자그마치 800가지가 있었다고 하죠. 그러니, 말하자면 10년 동안 매번 다른 프로그램으로 1주에 두 번 정도 연주회를 했다는 말인데요...

이그나츠 프리드만(Ignaz Friedman)은 폴란드의 크라쿠프(Cracow) 근교의 작은 도시, 포드고르제 (Podgorze)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름에서 벌써 풍기듯이 프리드만은 폴랜드 유태인인데요, 태어난 곳인 포드고르제라면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유태인 게토이죠.

프리드만은 음악가였던 아버지에게 첫 피아노 레슨을 받고 대부분의 음악 영재답게, 8살에 공개연주회를 가지죠. 그리고 크라쿠프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Flora Grzwinska 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고 18살이 되어서는 라이프치히로 가서 이론가로 유명한 Hugo Riemann에게 수업을 받습니다. 그리고 1년 후에 비엔나로 가서 음악학자인 Guido Adler에게 이론을 배우고, 피아니스트이면서 최고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레세티츠키 선생님 (Theodor Leschetizky(1830-1915)) 의 조교로 들어가서 피아노를 배우게 됩니다.

당시 레세티츠키 선생님이라면 파데레브스키, 가브릴로비치, 슈나벨, 모이세이비치, 호르초브스키 등 등 당대의 쟁쟁한 피아니스트들이 배웠던 스승이죠. 이렇게 내로라 하는 피아니스트가 다 모인 클래스인 것을 보면, 당시는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다들 비엔나로 와서 레세티츠키 선생님에게 배웠다는 일종의 인증을 받아야 하는 시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생님에게는 <레세티츠키 메소드>라는 뭔가 특별한 가르침의 방법이 있다는 말이 있었다는데요, 하지만 정작 레세티츠키 선생님은 ‘나는, 나의 선생님인 체르니가 나를 가르친 대로 가르칠 뿐, 달리 새로운 방법은 없다’고 말씀하셨다죠. 어쨌든, 프리드만은 매일 레세티츠키 선생님과 만나면서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또 가르침을 보면서 연주자로서 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능력도 함께 키워가게 되어서, 4년 후 그 문하에서 가장 각광받는 피아니스트가 됩니다. 피아니스트의 계보로 본다면, 베토벤에서 체르니로, 체르니에서 레세티츠키, 레세티츠키에서 프리드만으로 이어지는 혈통좋은 (?) 피아니스트가 탄생하게 된 거죠....

 


음악 듣겠습니다.

리스트의 Don Juan Fantasia (돈 후앙 환상곡)입니다. 이그나츠 프리드만의 1922년 4월 피아노 롤 녹음입니다.  (연주시간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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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대단한 피아니스트이지요?

이렇게 만능의 테크닉을 가졌고, 아름다운 음색과 시적인 감성, 견고한 구성력과 함께 큰 콘서트홀을 장악할 만한 큰 사운드를 가진 이 대단한 피아니스트.

이그나츠 프리드만은 레세티츠키 선생님께 4년간 수업을 받은 후에 바로 이 곳, 비엔나에서 1904년 데뷔를 합니다. 그 데뷔 연주회를 하기 위해 준비한 작품은 리스트 협주곡 1번,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1번, 그리고 브람스 협주곡 1번 이렇게 3곡과, 몇 곡의 앵콜용 소품이었다고 합니다. 한 곡도 아니고 이렇게 많은 곡으로 데뷔를 하고... 시작부터 남다릅니다.

이렇게 비엔나에서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가진 후에 솔로 연주곡, 협주곡 뿐만 아니라 실내악곡 등으로 무장을 하고 전 세계를 누비며, 이집트, 아이슬란드, 남미, 중미, 멕시코, 아시아까지 그 활동 무대를 넓혀가게 되죠.

그래서 1907년에는 Lwow에서 매스터클래스를 개최하고 베를린에 살다가 1차대전 때에는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정착해서 교편도 잡고 작곡을 하면서 피아니스트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됩니다.

 


프리드만은 성격이 활달하고 낙천적인 사람이라 주변에 친구들도 많았는데요,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이 쓴 “나의 젊은 시절”이라는 책에 보면 이그나츠 프리드만은 화려하고 우아한 비르투오조의 대명사인 레세티츠키의 클래스에 속한 사람이고, 즐겁고, 위트 넘치고, 쾌활하며, 특히나 포커에 대적할 자가 없다는 말을 남기고 있죠.

라흐마니노프도 이 프리드만의 연주를 좋아했는데, 하지만 따끔한 말을 한 마디 했는데, 그 말은 “he played too much to the gallery”. 관객을 위해 너무 오버하는 연주라는 말이겠죠.

사실, 천재 피아니스트들에게 따르는 고통이라면, 무료함일 것 같아요. 악보에 있는 것을 똑같이 재연하는 것은 실증이 난 상태니까, 뭔가 다르게 나만의 것을 만들어내는 즐거움. 그래서 이 분의 연주 중에서 정말 이건 너무 심하게 왜곡시켜 연주한다고 생각되는 곡을 골라봤습니다. 낭만주의 연주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연주인데, 오늘날의 피아니스트 예를 들어 폴리니같은 피아니스트와는 180도 다른 연주죠.

 


쇼팽의 발라드 제4번 F 단조, 작품 52입니다.

이그나츠 프리드만의 1922년 10월 피아노 롤 녹음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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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너무 하죠?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