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그남자의 연습방법\"...발터 기제킹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6-16
2007-11-28 12:52:55
허원숙 조회수 3301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06월 16일 원고....발터 기제킹 (1)  “ 그 남자의 연습 방법”

1895.11.5~ 195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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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분 나쁜 피아니스트를 한 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분은 연습을 하나도 하지 않습니다. 연습이라고는 오로지 악보를 뚫어져라 묵묵히 쳐다보는 게 고작인데, 그렇게 악보를 보면서 머리 속으로는 피아노를 치는 상상을 합니다. 그리고 무대로 올라가서는 그 곡을 외워서 연주합니다.

아시나요? ... 네 바로 독일의 피아니스트, 발터 기제킹입니다.

이 이야기는 신화처럼 전해지는 발터 기제킹의 실화인데요, 온종일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에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날아가면서 비행기 안에서 이제 연주해야 할 작품을 찬찬히 악보를 들여다보면서 공부를 하고,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곧바로 연주회장으로 가서 바로 무대 위로 올라가 그 곡을 외워서 연주했다고 하지요.

이럴 수가....

기제킹은 20세기 연주사상 가장 빠르게 암기하는 재능을 가진 피아니스트였다고 해요. 보통 하룻밤이면 곡 하나는 외울 수 있었다는데요, 한 번은 이탈리아 작곡가 마리오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Castelnuovo-Tedesco)의 집을 방문했는데, 마침 피아노 위에 조곡 악보가 펼쳐져 있었대요. 기제킹은 피아노에 앉아서 그 곡을 치다가, 악보를 하루만 빌려가서는 , 며칠 후 그 곡을 음악회에서 연주했다고 하죠.

사실, 피아니스트에게는 연습과 특히 암보가 커다란 부담인데요, 이렇게 기제킹은 연습도, 암보하는 수고도 필요 없던 피아니스트였으니 얼마나 편리했을까.... 부럽다 못해 살짝 기분이 나쁘려고 합니다. 게다가 이런 말도 하네요.

“목욕을 해야 하는 사람은 분명 그것이 필요하니까 하는 것이죠. 나는 연습이 필요없습니다. 연습 없이도 그냥 칠 수 있으니까요”.

 


미워요. ㅠ.ㅠ.

 


음악 듣겠습니다.

베토벤의 열정소나타 작품 57 중에서 제1악장 Allegro assai .

발터 기제킹의 1939/40년도의 녹음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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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신 훈련을 통해서 악보를 읽고 외웠던 기제킹은 피아노를 칠 수 없는 기차나, 비행기 여행 중에 이렇게 레파토리를 넓힐 수 있었고 게다가 한 번 익힌 곡은 절대 잊지 않았다고 해요. 하지만 연주 중에 잦은 실수를 하기가 일수였고, 그 실수가 알프레드 코르토나 에드빈 피셔같은 사람에 비교될 만큼 실수로 유명해지기도 했는데요, 그래서 독설가들은 기제킹은 연습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따끔한 말을 하기도 했다죠.

하지만, 자아브뤽켄에서 하루 종일 고된 매스터클래스를 마치고 그 밤에 제자들을 둘러 앉혀놓고 생방송으로 연주회를 녹음을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안 틀릴 수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많네요. 그 만큼 기제킹의 연주는 틀린 음을 초월해서 훌륭한 연주였기 때문이겠죠.

 


이 분은 도대체 어떻게 어린 시절을 보냈을까...

기제킹은 1895년 11월 5일 프랑스의 리용에서 태어났습니다. 양친은 모두 독일인인데 아버지는 곤충학 박사로 곤충을 연구하면서 프랑스에서 살고 있었죠. 이런 부모 덕택에 기제킹은 어린 시절 프랑스의 남부와 이태리를 많이 여행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요. 어릴 때부터 조숙하고, 또 5살 때부터 읽고 쓰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또 한 번 들은 것들은 절대 잊지 않는 기억력으로 인해서 전혀 공부를 따로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어린 시절 학교는 전혀 다니지 않았다고 해요.

피아노는 4살 때에 치기 시작했고요, 기제킹의 정식 음악교육은 1911년에 어머니의 고향인 하노버로 이주하면서 하노버 시립음악원에 입학해서 카를 라이머 교수에게 수업을 받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때가 16살.... 좀 늦은 감이 있죠?

정식 교육의 시작은 늦었지만, 사실은 4살에 동네에서 피아노를 조금 배운 게 전부인데도, 워낙 초견 연주와 암보에 탁월한 능력을 지녀서 6살에는 슈만의 환상곡 작품 17을 연주할 수 있었다네요. 이 이야기는 어린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걸었다는 것 처럼 대단한 일인데요..

도대체 이 엄마 뭘 했길래 이런 천재를 낳았어? 하고 궁금해 하실 분들 계실 텐데...

제가 비법을 알려드리죠.

우선 별자리가 심상치 않답니다. 11월 5일... 전갈 자리인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엄마가 임신 중에 태교를 확실하게 했대요. 그것도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보았다는군요.

아무튼, 이런 천재의 재능을 타고 난 기제킹은  하노버의 카를 라이머 교수를 만나 정식으로 음악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때 이미 바흐의 주요 작품들, 베토벤의 거의 모든 작품들, 쇼팽과 슈만 전부, 멘델스존과 슈베르트 곡을 다 이해하고 연주했다고 하죠.

라이머 교수와 공부하기 시작한 지 1년이 채 못 되어서 기제킹은 드디어 공개연주를 시작했고요, 20살 때에는 벌써 베토벤의 소나타 32곡을 6번의 연주회에서 모두 연주할 수 있었다고 하지요.

이제 연주자의 삶으로 첫 발을 내딛기 시작했는데..... 1차대전이 일어났네요....

기제킹의 부모는 독일사람인데, 기제킹이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남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리비에라였다죠. 그 곳은 당시 독일과 적대관계에 있던 나라였고요. 그러니 그런 곳에서 독일인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기제킹에게 전쟁은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게 했고, 독일군에 지원하도록 만듭니다. 그것도 후방의 비교적 편하고 안전한 곳이 아니라, 힘든 곳에 자원하도록 만드는데요, 군악대로 복무를 하면서 고전파나 낭만파의 음악 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의 곡을 닥치는대로 연주했다고 하죠. 팀파니도 연주하고 또 재즈피아노도 연주하고.... 밖은 폭탄이 쏟아지는 전쟁 중인데, 군악대가 음악을 연주한 곳은 군인들이 가는 카지노. 기제킹은 훗날 군대 시절을 회상하면서 아주 편한 시절이었다고 하죠. 애국심이 발동이 되어 찾아간 군대가 아주 편했다니 좀 의외이긴 한데.... 그 시절의 기억은 기제킹에게 많은 인상을 주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기제킹이 나중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후에도 가끔씩 폭스트로트(Foxtrott)를 발표했다고 해요. 물론 발터 기제킹이라는 이름이 아닌 예명으로 발표했지만....

 


음악 듣겠습니다.

드뷔시의 전주곡 중에서

I-3<들판에 부는 바람>, I-4<소리와 향기는 황혼의 대기를 떠돈다>,

II-3 <비노의 문>을 발터 기제킹의 1953/55년 녹음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1:57+3:31+2:48=약 8분2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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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