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이그나츠 파데레브스키 3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2-09
2007-11-28 12:52:33
허원숙 조회수 2267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06월 09일 원고....이그나츠 파데레브스키 (3)  “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

1860.11.6-194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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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만도 1500회가 넘는 연주회를 개최할 정도로 인기 많은 피아니스트였다가, 1차 대전 중에는 폴란드의 국립위원회의 일원으로, 또 그 대표로 정치활동을 하고 폴란드의 독립을 지지하도록 윌슨 대통령을 설득해서 1918년 윌슨의 평화원칙의 13번째 조항에 폴란드의 재건, 독립을 언급하게 만든 사람.

1919년 1월 17일에 정부가 수립되면서 외무장관직을 겸한 총리가 되었고, 베르사이유 평화 조약으로 폴란드를 되살아나도록 만든 사람.

파데레브스키라고 하면 사람들은 정치인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애국자라는 표현을 자주 쓰곤 하는데요, 비록 총리로 재직한 기간은 1년이 채 안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폴란드의 재건과 독립을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공로로, 1928년 폴란드 독립 10주년 기념식 때에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 Coolidge, Taft, Hoover, Roosevelt 로부터 축하와 감사의 메시지를 받을 정도로 세계를 통해서 인정받고 존경받는 리더였다고 합니다.  브뤼셀에 연주 여행을 갔을 때에는 국왕 부부가 역에까지 나와서 마중을 했다는데, 이런 일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하네요.

 


버나드 쇼우는 파데레브스키를 “살아있는 피아니스트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했다는데요, 그 사실을 증명해 볼까요?

1923년에 파데레브스키는 재정적인 이유로 다시 연주활동을 시작하였는데, 번 돈은 모두  자신의 조국과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썼다고 합니다.

정치가로서 행보를 시작하기 전인 1895년에는 뉴욕에 파데레브스키 기금을 만들고 인종과 종교를 초월한 미국에 사는 작곡가들을 위해서 3년에 한 번 상을 주었고요, 또 라이프치히에서도 1898년에 비슷한 기금을 설립하였고요, 런던에서는 부상자, 미망인, 고아들을 위한 Transvaal 전쟁 기금을 설립하였다고 하죠.

정치가에서 다시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유럽과 미국에서 주로 전쟁의 희생자들을 위한 연주회를 개최했고요, 폴란드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폴란드의 재건과 독립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었던 후버 대통령과 또 폴랜드 구호기금을 마련한 미국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연주회, 1920년대에 미국에 실업자가 속출하자, 미국의 실업자들을 위한 식량 구매를 위한 연속 연주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1932년에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가진 연주회에는 청중이 1만6천명이나 모였는데, 이것은 당시 음악사에 가장 많은 청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연주회도 예사 연주회가 아니었고요, 그 때 만든 5만 달라는 음악 실업자들을 위해 썼다고 합니다. 물론 상징적인 의미이기는 하겠지만 당일 연주자였던 파데레브스키도 티켓을 사서 연주회장에 들어갔다고 하네요.

 


음악 듣겠습니다.

 


쇼팽의 마주르카 중에서 op.59-2, 59-3, 63-3 세 곡을 파데레브스키의 연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2:31+3:26+2:08 = 8분 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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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데레브스키의 자선 공연은 이게 끝이 아닙니다.

영국의 음악 실업자들을 위해서....

극작가를 위한 기금 모금을 위한 콘서트...

폴랜드의 폴랜드 작곡가를 위한 기금 모금을 위한 콘서트....

스위스의  콘서트 홀 건립 기금을 위한 콘서트.....

스위스 로잔의 성당 재건축을 위한 기금 모금을 위한 콘서트....

실업자를 위한 콘서트.....

이태리의 전쟁 고아들을 위한 기금 모금을 위한 콘서트....

프랑스의 음악학교 교사신축과 기숙사 신축을 위한 기금 모금 콘서트....

연합군 병원을 위한 기금마련 콘서트....

또 1933년에는 독일에서 탈출해온 파리의 유태인을 위한 콘서트....

미국의 상이군인 재향군인회를 위한 콘서트....

1924년 벨기에의 군비축소반대를 위한 자선음악회.... 이 음악회에서는 페데레브스키가 무대에 등장할 때 국왕 부부가 청중들과 함께 모두 기립해서 환영하였다고 하네요.

또한 폴란드의 자유를 찾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윌슨 대통령을 기념하는 동상을 건립하였고요.

도무지 끝이 나지 않습니다.


1939년, 폴란드는 2차 세계 대전에 휘말리게 되었는데, 또다시 위기에 빠진 폴란드와 또 동맹국들은 파데레브스키를 다시 그들의 지도자로 모시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 당시 파데레브스키는 79세의 고령인데다가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저 없이 파리로 가서 새 정부를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시코르스키 장군을 총리로 한 폴란드 망명정부의 국립의회 의장직을 맡아 일을 한 것인데, 하지만 총리로 불리는 것은 거절하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다시 자신이 살고 있던 스위스로 돌아갔는데, 스위스에 있는 집은 2차 대전 중에 많은 나라에서 온 망명자로 가득 찼다고 하네요. 개인 도서관은 2차 대전에 참전했던 폴란드 군인들을 위해 내주었고, 자신의 집에 들어온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따뜻한 식사를 대접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서 폴란드를 위한 일들을 계속하였는데, 너무 덥던 1941년 6월의 어느 날 뉴욕에서 어떤 시위운동을 하고 나서 아프게 되었고, 며칠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파데레브스키의 장례식은 뉴욕의 성 패트릭 성당에서 치러졌는데 장례식장 안에 4500명, 장례식장 밖에 35000명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정치가도 있었고 정계, 음악계를 이끌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죠. 그 장례식에서는 미국 역사상 대통령에게만 쓰는 포고가 울렸고, 워싱턴의 앨링턴 묘지에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파데레브스키의 유일한 동영상은 1935년에 월광소나타라는 제목으로 영국의  영화제작자에 위해서 제작되었는데요, 제작하는 동안 모든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그 영화제작에 나온 엑스트라들로부터 감사와 존경의 표시로 꽃 세례를 받았다고 하죠.

 


음악 듣겠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일명 월광 소나타 중에서 제1악장 Adagio sostenuto, 제2악장 Allegretto. 파데레브스키의 1937년 녹음입니다. (연주시간 5:31+2:22=7분 5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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